고의성, 불쾌, 공정함이라는 분노의 기준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끼는 분노(화)는 강력한 감정입니다. 분노라는 감정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잠언에는 분노에 더딘 사람과 성을 잘 내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지 말하고 있습니다. 분노에 더딘 사람은 매우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분노에 더딘 사람은 다툼을 가라앉힙니다. 한편, 성을 잘 내는 사람은 제 미련함만 드러내며, 다툼을 일으키고 싸움을 하며 공동체에 분열을 야기한다고 잠언은 말합니다 (15:18; 14:29).
분노는 항상 나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의로운 분노는 사회의 정의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분노는 대체 어떤 감정일까요? 우리는 분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기쁨이나 슬픔이라는 감정과는 달리 분노는 전이되지 않습니다. 웃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심한 모욕을 당하면 대개 화를 내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모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재수가 없다고 하면서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쉐러 (Scherer)와 월봇 (Walbott)은 다섯 대륙 37개 나라 대학생 2921명에게 다양한 감정이 어떻게 유발되는 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유발된, 불쾌하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분노합니다. 즉, 분노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1. 상황이 고의적인가?
2. 나는 어떻게 불쾌한가?
3. 상황이 어떻게 공정하지 못한가?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고의적인지 아닌지는 분노의 강도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상황이 고의적이라고 판단되면 분노는 더욱 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뛰어가면서 내 어깨를 치고 갔다고 칩시다. 고의로 내 어깨를 치고 갔다고 판단하면 몹시 화가 날 것입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판단하면 화의 강도는 고의적일 때보다는 분명 작을 것입니다.
나에게 어떻게 불쾌한지는 개인의 기준이 모두 다릅니다. 운전을 하다가 옆 차선의 차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끼어드는 차에게 양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몹시 불쾌하게 느껴 욕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기가 다시 앞질러 가기도 하고요.
상황이 공정하지 못한가에 대한 판단 역시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두 아이에게 피자를 나누어준다고 봅시다. 한 아이에게는 피자 한 조각을 다른 아이에게는 피자 두 조각을 주었습니다. 피자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은 상황은 피자를 한 조각받은 아이에게 공평할 수도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조각받은 아이가 두 조각받은 아이보다 적은 양을 먹는 아이라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죠. 혹은, 한 조각받은 아이가 이미 배부른 상태라면 공평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분노(화)는 상황의 고의성, 불쾌함, 공정함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분노(화)를 느낀 후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여 느끼는 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에 대해서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잠언에서 말하는 분노에 더딘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 자체가 올 때에는 분명 그러한 생각을 할 여력이 없을 테지만 감정을 느낀 후에 매 순간 자신을 돌이켜본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 자료
최현석. (2011). 인간의 모든 감정. 서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