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해리스 부통령 연설
"그래? 어머님이 미국에 계신 거 아니었어?"
"아니, 용인에 사세요."
아는 형이 집을 방문했습니다. 최근에 딸을 낳아서 저희 부부가 아기용 체중계를 준다고 했거든요. 저희 아이는 벌써 18개월이라 스스로 체중계에 올라갈 만큼 컸습니다 (체중계에 올라가는 걸 매우 좋아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아기용 체중계가 전달이 되는 것이죠.
형이 떠나고 아내가 그랬습니다. 지인들 사이에서는 제가 교포인 줄 안다고요. 네, 아닙니다. 전 교포가 아닙니다. 10년을 꼬박 뉴욕에서 살다왔을 뿐입니다. 주로 가는 상담센터가 외국인들이 많다 보니 영어로 상담을 진행 중입니다. 한국에 온 지 6년이 흘렀음에도 한국에 있는 느낌이 들지 않기도 합니다. 퇴근 길 지하철을 타면 밀치는 사람들 덕분에 깨달음이 오긴 합니다. 앗! 여기 한국이었지.
카멜라 해리스 덕분에 미국 정치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2018년도에 한국에 돌아오게 된 것도 일정 부분 트럼프 행정부의 탓도 있었거든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덕분에 제가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갖게 된 부분은, 감사합니다. 돌아올 당시에는 매우 화가 나 있었습니다. 종교비자가 보통 두서너 달이면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다섯 달이 지나서도 발급이 되지 않았거든요.
여하튼, 이번에 트럼프가 나온다고 해서 바이든으로는 아마 이기진 못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카멜라가 등장하는 바람에 오 이기겠는데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DNC (Democratic National Convention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왜 제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는지 썰을 풀어볼게요.
1. 이민자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미국에서 illegal immigrants(불법 이민자)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하게 된 건 트럼프 덕분입니다. 그전에는 그런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들 모두 이민자 거나 적어도 이민자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도 이민자죠.
보통 illegal immigrants라는 단어보다 undocumented (등록되지 않은)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비자라든지, 영주권이라든지, 아니면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든지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인 것이죠.
2001년 9.11 사태가 있기 전에는 이민 와서 그렇게 그냥 살았다고 합니다. 이민 입국에 대한 제재가 시작된 것은 9.11 사태 이후부터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아일랜드에서 이주해 와서 오랜 시간 비자 없이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도 하고 그러다가 영주권을 얻게 되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미국이 건국된 이후로 사람들이 이주하고, 땅을 넓혀가고, 전쟁도 하고, 미국으로 편입되기도 하면서 이루어진 나라니 우리나라의 관념처럼 "불법 이민자"라는 관념이 없을 법도 합니다.
2017년 슈퍼볼을 친구들과 함께 보던 중이었습니다. 슈퍼볼 광고는 그 해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각종 광고들이 자신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투자를 합니다.
Born the Hard Way라는 앤 하이저부쉬(Anheuser-Busch) 회사의 광고를 보았습니다. 앤 하이저부쉬는 버드와이저(Budweiser)를 가지고 있는 회사예요. 광고를 했던 시점은 기가 막힙니다. 트럼프가 무슬림 국가들로부터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행정명령을 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거든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창립자인 아돌프 부쉬가 어떻게 독일로부터 이민을 왔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차별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아래 자막으로 광고는 막을 내립니다.
When nothing stops your dream, this is the beer we drink.
당신의 꿈을 막을 수 없었을 때, 우리가 마시는 맥주가 탄생했습니다.
저는 "와!" 그랬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맥주가 내세운 광고는 아메리칸드림을 좇는 어떤 누구든지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인 셈입니다. 그것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유색인종이든, 아니면 가톨릭 (당시 많은 독일인들이 차별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것 때문이기도 해요)이든 개신교든 무슬림이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나라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어떤 역경과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좇는 것이 아메리칸드림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해서요. 물론, 하이저부쉬는 행정명령에 반해서 그런 광고를 만든 게 아니라고 잘라말하긴 했습니다.
저는 카멜라의 연설을 들으면서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정체성과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 자신도 이민자의 딸이죠. 그러나 카멜라는 차별과 증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더라고요. 여성인 데다가 유색인종이기에 차별을 받았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법도 한데 말이죠. 반은 인도인이고, 반은 자메이칸인 데다가 부모는 별거를 했더라고요. 엄마 밑에서 아빠 없이 자라면서 얼마나 많이 차별을 받았겠어요.
카멜라는 연설에서 그녀의 부모 역시 아메리칸드림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그녀 자신이 아메리칸드림의 수혜자라고 덧붙였죠.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우리의 부모들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삶과 추구했던 가치, 방향성이 어느 나라에서 왔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건 아무 상관없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메리카라고요.
전 그녀의 후보 수락 연설을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카멜라가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