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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Oct 20. 2023

너희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어

아이들 덕분에 부모가 성장한다. 

         

 “나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나도 이런 말을 하고 살았던 시절이 있다. ‘이런 내가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을까?’ 평범한 삶이 불가능하게 느껴지기 기도 했던 막막한 시절. 경험해 보기 전에는 몰랐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고 나니 오히려 더 열심히 살아진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멈춤이 존재하지 않는 프로젝트다. 끊임없이 노를 젓는 심정이라 자꾸만 앞으로 옆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도무지 한 곳에만 정박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왕이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흘러가자는 마음도 생기고 재밌게 한 번 가보자 소리도 질러보게 된다. 나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지만 까짓 껏 너희들도 잘 이끌고 가보마의 심정으로.            


 때는 10년 전, 내 인생에 가장 튼튼한 조언을 선물해 준 지인을 만났다. 스물여덟의 나는 스페인어를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인원이 모였는데, O언니는 이민을 목적으로, C언니는 긴 배낭여행이 목적이었기에 단순한 언어 습득을 위한 나보다 훨씬 열성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두 시간씩 나는 공부도 하면서 언니들 틈에서 어른 세계도 엿보았다. 서로가 조금 가까워졌을 때 나는 고민 하나를 넌지시 내뱉자 C언니는 나에게 눈을 맞추고 말했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사느라 1억이라는 큰 대출을 하고서 풀이 죽어 있을 때였다. 

     

 “사회 초년생 커플이 돈이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앞이 막막할 것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돈은 어떻게든 모이게 마련이다두려워하지 마라걱정을 해야 할 부분은 함께 할 두 사람이 같은 곳을 향해 보고 있느냐이다. 두 사람의 ‘정수(精髓)’가 맞는지 중요하다.”     

 

 


 근사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말보다 지금의 가난이 당연하다는 말은 위로가 되었다. 살다 보면 꼭 괜찮아진다고 말할 때에 언니의 눈빛은 너무 생생해서 나는 그 말이 맞는지 얼른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니는 백화점에서 예쁜 머그컵 세트를 결혼 선물로 사주었는데 사실 그날의 “살다 보면 다 괜찮아진다”는 조언이 나에게는 더 필요한 선물이었다. 언니의 조언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듯 내 주위를 맴돌며 응원해 주었으니까.      




 결혼을 한 지 10년이 지났다. 언니의 말이 다 맞았다.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다. 큰일을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처음보다 지금 더 여유롭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감각보다는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기도 하고 또 갑자기 생기기도 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서 그런 것 같다. 가끔씩 고가의 물건을 한 번씩 사기도 하고 무려 10개월(!) 무이자 할부를 해야할 일도 생기지만 지나고보니 다 괜찮아진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다. 다양한 씀씀이는 결국 내 마음을 훨씬 여유롭게 하는 하나의 공부였던 셈이다.      


 더욱이 아이들이 있다면 충분히 벌고 싶은 게 부모 욕심이 아닌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나와 남편은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여유로울 수 있을까 매일밤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공부했다. 덕분에 남편은 자격증을 따고 이직을 하기도 했고 다각도로 용돈을 벌 기회를 만들었다. 나도 어떻게 하면 내가 흥미 있고 잘하는 일을 수익으로 연계할 수 있을까 틈만 나면 떠올렸다. 아이가 있어서 커리어가 멈출 수 있지만 또 아이들 덕분에 부모가 성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누가 얼마나 버냐고 물으면 딱 두 아이를 키우고 살 만큼 번다고 말할 것 같다. 초등학생인 큰 아이가 학원을 하나 더 다니고 싶다고 하면 헉! 하는 마음이 드는 딱 그만큼 말이다. 물론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그때는 또 다른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 부부가 지난 10년간 함께해오며 배운 방법으로. 우리는 항상 가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왔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쌓아왔다. 아이들 덕분에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해본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조금 더 늘어지고 안일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한다. 나에게는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아이들이 두 명이나 있고 그래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리차를 끓이고 따뜻한 밥을 짓고 반찬을 고민한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무한으로 미루었을 일들. 주말이 오면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리고 가 뛰어놀 장소를 제공하고 깨끗이 씻겨서 푹 재운다. 나는 매 순간 정말 열심히 산다. 엄마로서 하는 모든 일들은 작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실은 나를 앞뒤좌우로 흔들 어제 끼며 크고 넓혀준다. 나는 매일 매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광활한 이 우주에서 우리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 외로움을 버틸 유일한 방법은 사랑뿐이다. 




 나 한몸 건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좋은 반려인과 따뜻한 가정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행운이 있을 수 있는지 나는 매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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