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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Oct 18. 2023

외동도 둘도 괜찮습니다

생명을 걸고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저보다 어리신데 벌써 두 아이의 엄마시네요. 부러워요.”

 

 둘째를 태운 유아차를 끌고 걷던 중 첫째 유치원 친구 엄마를 만났다. 아기가 귀엽다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은근슬쩍 나의 나이를 물어왔다. 그리고는 본인의 나이보다 두 살이 어린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나도 둘도 다 괜찮아요."라고 말이다. 둘째를 향한 부러운 눈빛과 두 아이를 낳은 자의 나이를 궁금해하는 마음, 나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건 예전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가 하나였을 때, 둘째를 낳아야 하는 걸까 고민하던 그 무렵의 나 또한 아이 둘을 낳은 엄마가 나보다 어려 보일 때 왠지 시무룩해졌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출산이라는 숙제를 해결한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거다.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엄마가 예쁘게 꾸미고 날씬하기까지 하면 또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아이가 한 명인데도 삶이 이렇게 엉성한데 두 명을 키운다면 아마도 엉망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은 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은 당연하게 둘은 낳아야지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지만 여전히 하나만으로 충분한지 아닌지 고민하는 엄마들 또한 많은 것 같다. 내가 임신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도 “나도 둘을 낳고 싶은데 ~ ”로 시작하는 고백이었다. 뒤이어 경제적인 이유, 이미 늦었다고 판단되는 나이, 성치 않은 아픈 몸, 배우자의 단호함 등 둘째를 낳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단연코 외동을 고집하던 지인이 내 임신 소식을 듣고는 “정말 잘한 선택이야. 실은 나도 많이 고민스러워.”라고 말해와서 놀란 적이 있다. 무 자르듯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결정. 그러고 보면 엄마의 삶은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다. 결정과 고민의 사이클이 쉴 틈 없다.


 외동으로 키우겠다는 선택과 둘을 낳겠다는 결정을 둘 다 겪은 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바로, 하나도 너무 좋고, 둘도 너무 좋다 것이다. 외동은 외동 나름의 장점이 있고, 둘 이상을 키우는 건 또 그 나름의 장점이 존재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모두 저마다의 의미가 담겨있을 테다. 남편과 내가 함께 내린 결정만이 우리 가정의 최선책이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마음은 소중히 존중받아야 한다.



 “둘 낳으니까 어때요?”라고 누군가 물어올 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이렇게 좋을 줄 알고 미련을 갖고 있었나 봐요.”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나의 삶 전체가 충분하다. 하지만 자녀의 수는 인생에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 여전한 나의 생각이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으니 적어도 둘은 낳아야 해.”라는 말을 대체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이지 모두에게 당연한 정답이 아니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올 때, 아주 희박한 가능성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를 제왕절개로 낳기로 하고 출산 전날 만난 집도의는 수술 중 다량의 피를 흘려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고, 나는 묵묵히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나는, 아이를 낳던 중에 죽지 않았지만,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수술 직후 수면 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났을 때, 그리고 아이를 가슴에 품고 병원 밖을 나왔을 때, 나는 죽지 않고 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구나 안도했다. 


출산은 예전에도 지금도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다. 한 명을 낳든 두 명을 낳든 산모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깊은 관계에 놓여있더라도, 생명을 걸고 아이를 낳으라고 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남편에게조차 그럴 권리는 없다.      

 


오늘도 누군가는 고민에 빠진 채 밤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둘째를 낳아야 하는 게 아닐까? 짧게 끝나는 고민도,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섬세한 고민도 충분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어떤 선택이 뒤따르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나는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정말이지 모두 다 괜찮다.  



하나도 둘도 다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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