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고 설레기, 둘째를 낳고 가장 많이 한 일
나는 다섯 살 터울의 두 딸을 가진 엄마가 되었다. (만 나이가 시행되고부터 여섯 살 터울의 자매가 되었다.) 큰 아이는 제 나이보다 두 살쯤 성장이 더 빠른 편이라 언뜻 보면 정말 터울이 큰 자매 같아 보인다. 온 가족이 외출을 할 때면 “어머, 정말 늦둥이를 낳으셨나 봐요.”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기도 한다. 아이들을 두고 넙죽 들어오는 타인의 말이 싫지만은 않다. 둘째의 탄생 그 자체만으로 재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내 인생이 조금 다이내믹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니까. 나는 어쩐지 미래에 대한 좋은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둘째 낳고 나니 어때?”라고 누가 물으면 “꼭 놀이동산에 와있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한다. 그건 정말 이었다. 앞으로의 내 삶에 빠짐없이 존재할 두 아이와의 매 순간이 너무나 기대되기 시작했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육아에 대한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면 이제는 설렘으로 그 모든 것이 꽉 채워졌다. 함께 누릴 일상과 특별한 경험들 무수한 계획과 약속들이 벌써부터 궁금하고 설레는 거였다.
놀이동산을 가는 날은 눈을 뜨자마자 행복하다. 차가 밀려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심장이 마구 뛴다. 저건 어떨까 저건 또 얼마나 재밌을까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머리에 쓴 머리띠도 좋아 보이고 손에 쥔 솜사탕도 나중에 먹어봐야지. 그곳에서 마주한 모든 것이 나를 들뜨게 한다. 그런데 걷다 보니 슬슬 다리도 아프고 자꾸만 벤치에 앉고만 싶어 지네. 제일 만만한 회전목마 한번 타는 것도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자기가 오자고 해놓고 줄 서야 한다니 자꾸만 징징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회전목마에 태워본다. 재밌다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10분 남짓 모두가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고 자, 다시 어디로 가볼까. 여기도 줄이 길고 저기도 줄이 기네. 날씨가 화창한 날씨는 좋은데 점점 햇볕에 뜨거워지면서 땀이 난다. 아이의 짜증은 점점 길어지고 그럴수록 남편과 나의 피로도도 커진다. 우리 어디 앉아서 간식 좀 먹고 가자. 어라, 핫바 하나에 5천 원이나 한다고? 비싸지만 어쩔 수 없지, 날이 날이니만큼 기분 좋게 돈 쓰자고. 이렇게 좀 내려놓자. 여기, 우리, 지금, 놀이공원이잖아. 자유이용권을 끊어도 인기 많은 놀이기구는 몇 번 타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놀이공원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 은근하게 즐겁다.
두근두근 설레다가 피곤했다가 또 좋았다가 지쳤다가 마음의 굴곡이 마치 아이 둘 키우는 내 마음과 너무나 흡사하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모든 것들이 설렘 그 자체인데 막상 현실에서의 육아 현장은 장밋빛만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그저 예뻤다가도 속수무책으로 힘들고, 또 얼굴에 뽀뽀를 마구 퍼부으며 예뻐했다가 밤이 와서 얼른 육퇴를 바라는 저질 체력의 엄마인 나.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체력도 감정도 널뛰기를 해댄다. 이건 정말이지 출구 없는 놀이공원이 따로 없는 거다.
“엄마, 아기를 키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 근데 가족이 생긴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0.5인분의 보호자 역할을 할 만큼 의젓하게 커준 큰 아이의 말이 가슴에 새겨놓고 싶을 만큼 멋지다. 7살의 눈에도 아기를 키우는 일이 정말 힘들어 보인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기도 하고 내가 느끼는 가족이 생겨서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은 너무 기특했다. 아이의 말은 정말이지 정답처럼 느껴진다. 육아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가족이 생기는 건 행복이니까. 아이에게 되물었다. “힘든 일이 더 큰 것 같아 가족이 생겨서 행복한 마음이 더 큰 것 같아?”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한번 명언을 남긴다. “엄마, 가족이 생긴다는 건 그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 같아.”
꿈꾸고 설레기. 그건 둘째를 낳고 나서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이다.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혼자였다면 가지 않았을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길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지만, 아름답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지금, 여기, 놀이동산에서 흠뻑 놀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