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건 ‘카시트’가 아니라 ‘미련’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 옷장 깊숙이 찔러둔 박스 하나를 꺼냈다. 큰 아이가 입었던 옷중 예쁜 것들만 모아둔 박스다. 하늘하늘 베이지 점프슈트를 둘째에게 입히니 세상에, 6년 전 그 옷을 입고 잔디밭을 뛰어다녔던 그 아기가 되돌아온 것 같다. 어쩜 이렇게 닮았는지, 옆에서 보던 남편도 감동에 젖은 표정이다.
그러다 묻는다. “근데, 뭘 그렇게 많이 모아뒀어?”
힐끗 보아도 옷가지가 한 두벌이 아니다.
“그러게, 뭘 이렇게 많이도 모셔뒀을까.”
나는 짐짓 쑥스럽다. 사실 이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남편은 알까.
둘째를 낳을까 말까 고민을 해소시켜 줄 한 가지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지금 바로 아이의 방에 가서 옷장을 한 번 열어보시라. 작아진 옷들과 신발 장난감 등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속은 둘째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한 것이다. ‘미련’은 둘째를 탄생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한다.)
정리하지 못한 옷가지와 신발 이불, 심지어 베이비 카시트까지 집안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면 당신의 가족계획을 진지하게 한 번 점검해 보는 것이 좋다. 물론 미련을 가진 채 살아도 상관은 없겠다, 나처럼. 그래서 우리 집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아이의 물건들이 자꾸만 나왔다. ‘혹시’ 둘째가 태어나 ‘혹시나’ 같은 성별이면 그때 입고 신기고 쓰면 좋겠다 싶어서 버리지 않았던 물건 앞에서 나는 자꾸만 민망하다.
“아, 이것도 안 버렸구나.”
“어머, 내가 이것도 간직하고 있었네?”
“아, 이 옷 정말 예뻤는데 다행(?)이다. 내가 안 버렸었구나.”
나중에는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입는 한복까지 등장했다. 그것도 사이즈별로 두 벌. 추석에 언니가 입던 한복을 입고 등장한 둘째를 본 친정엄마는 “아이고, 애 안 낳는다고 하더만 미련이 한가득이었네.”라며 이럴 거면 뭐 하러 고민했냐는 말을 기어이 입 밖으로 꺼내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그 말을.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냐는 말도 덧붙여 강조하며.
신발은 말해 무엇하리오. 브랜드 신발은 당연히(?) 보관하고 거기다 큐빅이 박힌 예쁜 구두도 몇 번 안 신었다는 이유로 모두 신발장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둘째가 같은 성별이어서 망정이지 만일 아들이었다면, 성별을 알게 된 그날 바로 모두 헌옷수거함으로 들어갔을 물건들을 내다 버리며 “첫째 아이 물건 보관”은 내 인생에서 해본 가장 허무한 일이었다고 중얼거렸을 거다.
그렇다. 나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라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일본에 정리의 신 ‘곤도 마리에’가 시급한 1인이다. 아이의 ‘첫’ 물건은 아예 박스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첫 보행기 신발, 첫 걸음마 신발, 첫 여름 샌들, 첫 어그부츠.... 심지어 돌 무렵 쓰임을 다한 젖병들도 아이의 체취가 묻었다는 이유로 버리기가 힘들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했지만, 젖병과 이별하는 일은 꽤 힘들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우리가 이사할 때가 생각난다. 이사 가기 전 날, 한켠에 고이 잠들어 있던 베이비 카시트를 꺼내 남편과 나 사이에 두었다. 예전에도 몇 번이고 반복했던 질문을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꺼냈다. “자, 이거 버릴까 말까?” (=둘째, 낳아? 말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우리가 카시트를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썼던 물건들 모두 싹 다 모아 당근마켓에 나눔을 하든, 그린산업에 전화해서 가져가달라고 하든, 어떤 방법으로든 처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쓸모없는 물건과는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맙소사. 남편과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때때묵은 카시트를 새 집까지 이고 지고 왔다. 새 소파와 식탁, 침대,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고, 인테리어로 바쁜 와중에 제 역할을 잃은 카시트를 다시 다용도실에 넣고 아기띠와 아기 이불 같은 것을 다시 켜켜이 집어넣으면서 이제는 정말 결정을 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언젠가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정말 아이를 원한다’가 맞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버리지 못하는 건 ‘카시트’가 아니라 ‘미련’이었던 거다. 미련이 차지한 자리는 분명 공간 낭비이고, 나는 내 인생을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결정을 서둘러야 했다.
곤도 마리에의 말처럼, 설레지 않는 아이의 물건은 미련 없이 처분해 보자. 만일 “아직도 잘 모르겠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진지하게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해 본다. 지나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미련은 너무 컸다. 집이 좁았던 게 아니라, 서랍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버리지 못한 물건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정리정돈이란 ‘물건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남기는 작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리 후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보자. 여전히 물건들이 남아있다면 그건 사랑을 탄생시키는 일로 연결될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고민으로 지금 현재를 흘러 보내지 않기를 하는 마음을 보태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