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기 나아조서 고마워
“동생 생겨서 참 좋겠다!”
내가 임신을 하고 첫째 아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악의 없는 그 익숙한 인사치레에 아이는 늘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둘째의 예정일은 12월이었다. 주위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나이 한 살 더 먹어야 해서 안타깝지 않냐고 했지만, 우리 부부는 큰 아이와 터울이 6살이 아니라 5살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첫째가 6학년이었기에, 1년이라도 같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애석한 일이지만, 큰 아이는 한 번도 동생을 바란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 친구들 대부분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동생을 낳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싫어, 나만 이뻐해야 해’라고 말하던 아이다. 엄마가 임신을 했고 10달 뒤에 동생이 태어난다는 말을 듣더니 ‘동생이 생기면 동생을 더 예뻐할 거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어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동생이 태어나자 아이는 180도 변했다. 동생을 처음 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동생이 너무 귀여워!” 함박미소를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콩순이 만화에 나오는 콩콩이 정도의 동생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신생아는 콩콩이 보다 작아도 너무 작고 그래서 무척 신기하고 귀여웠던 모양이다. 잠옷으로 갈아입다 말고 냅다 동생 보러 달려가고, 티브이를 보다가도 아! 맞다 하며 동생이 있는 방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동생이 있는 방으로 갔다. 나중에는 침대 옆에 퍼질러 앉아 한참이고 동생을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쓰다듬었다가, 혼자 막 웃었다. 드디어 네 가족이 된 첫날은, 그토록 아름다웠다.
한숨 돌린 나에게 아이는 쪼르르 달려와 선물 하나를 안겨 주었다. A4용지를 오리고 붙여서 만든 큰 편지지에는 “엄마 ♥ 아기 나아조서 고마워”라고 적혀 있었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동생을 낳은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자 우리 집에 온 동생을 환영하는 선물이었다. 그간 동생 얘기를 할 때마다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간 아이에게 참 많은 편지를 받아왔지만, 이토록 벅찬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큰 울림을 준 편지.
동생이 집에 온 지 둘째 날. 역시나 깨자마자 동생을 찾았다. “내 동생 진짜 귀엽다!”며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뛴다. “엄마, 마린이(태명)가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란다. 6년을 키우며 내 아이에게서 본 적 없는 언어와 행동이었다. “언제 말할 수 있게 될까? 언니라고 가르쳐주고 싶어.” 얼른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유치원 갈 준비를 하다 말고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토끼가면을 쓰고 나왔다. 동생 앞에 가더니 뜬금없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재롱을 피워댔다. 유치원을 다녀와서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펼치며 우르르 까꿍! 하며 놀아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애교가 흐르고 넘쳤다. 다채로운 사랑 피어나는 현장이었다.
아! 내 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애교를 둘째 덕에 볼 수 있게 되었구나. 왜 나는 동생이 태어나면 사랑을 빼앗길까 걱정하는, 시무룩한 첫째의 모습만을 상상했던 걸까. 동생이 생겨 이토록 좋아하는 모습은 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이건 다행이고도 축복 같은 일이었다.
둘째가 울어서 안아주기 전에 "동생 안아줘도 될까?" 먼저 물었더니, 아이는 뭐 이런 엄마가 다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빨리 안아줘! 내 동생 우는 거 안 보여?" 란다. 나는 아이가 질투를 할 수도 있으니 초반에는 둘째를 안아주기 전에 첫째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새겨 듣고 그렇게 한 것뿐인데. 나는 오히려 첫째의 눈치(?)를 보며 둘째를 케어해야 했다. 엄마, 빨리 기저귀 좀 갈아줘. 엄마, 빨리 분유 좀 타와. 나중에는 엄마, 이유식 만들었어? 엄마, 내 동생 좀 울리지 마! 로까지 발전하며 약간 곤란하기까지 했다.
양가의 첫 손주로 온 가족에게 넘치게 받았던 사랑을 고스란히 동생에게 건네주는 모습. 사랑은 사랑으로 전해지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 실체를 눈앞에서 또렷이 보는 행운을 누렸다. 사랑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현장이 바로 아이들이 있는 곳이자, 내가 바라보는 곳이다. 아이에게는 어쩌면 넘치는 사랑을 나눠줄 어떤 존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어 행복한 아이. 한 번의 육아로, 부모로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사랑은 다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었다.
"마린아, 햇~빛. 하늘에 노오란 거 있지? 그건 바로 햇빛이야."
"마린아, 웃~음. 엄마가 저렇게 푸하하 터트리는 건 바로 웃음이야."
눈만 껌뻑껌뻑하는 신생아에게 햇빛과 웃음을 가르쳐주는 언니. 햇살과 웃음이 존재하는 그 공간을, 그 시간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이 사랑을 알기 전으로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동생을 처음 만난 날 그리고 최초의 일주일. 나는 매 순간이 마법 같았다. 몸은 정녕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더없이 행복했고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