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건 돈보다 환경
코로나19로 뒤숭숭하던 시기가 끝날 무렵 얼렁뚱땅 이사를 하게 되었다. 같은 동네의 신축아파트였다. 다소 낡은 소형 아파트에 살면서 바로 맞은 편의 가까운 곳에 젊은 사람들이 참 많이도 이사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한 번?’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구경만 하러 왔다가 대단지의 탁 트인 전경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 아파트의 가장 특별한 점은 축구장 3개 크기의 중앙공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넓어진 집 평수보다 거대한 공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평지에서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이라니!”
아파트에서 첫째 유치원을 함께 보내며 친해진 동갑내기 친구의 말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도 나처럼 아이를 외동으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사를 오고 난 후 아이를 키우기 더없이 좋은 환경 덕분에 마음을 슬며시 바꾸어 둘째를 곧 가지게 되었다. ‘평지에서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우리가 7년 정도 살았던 신혼집도 나름의 대단지에 속한 아파트였다. 다만 주차장이 턱없이 작아서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자동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서 여유로움이란 없었다. 작은 공간까지 비집고 들어선 자동차 때문에 아이의 손을 잡지 않고서는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던 환경이었다. 놀이터를 가려고 해도 자동차 눈치를 보며 힘들게 가야 했고, 그나마도 오래되어 부식된 놀이기구들, 아무도 찾지 않는 놀이터에서 아이는 쓸쓸하게 혼자 놀았다. 그 아파트에 살 때에는 유아차를 밀어본 경험이 한 번밖에 없다. 도저히 유아차를 끌고 다닐만한 곳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환경에서만 아이를 키워봤기에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잠깐 구경하러 온 아파트는 축구장 세배 크기의 공원뿐만 아니라 형형색색의 어여쁜 놀이터가 일곱 군데나 있었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공원이 있었고 크고 작은 산책로도 마련되어 있었다. 꽃으로만 꾸며진 꽃 정원, 메타세쿼이아처럼 길쭉한 나무로만 꾸며진 곳과 같이 자연친화적인 조경도 멋졌다. 이곳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더라면 덜 외롭고 덜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추웠던 2월의 겨울날, 이사를 했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짐을 실어 올리는 동안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기다렸다.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아이는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언니, 오빠, 친구, 동생 가리지 않고 만나자마자 놀이와 규칙을 만들어냈다. 나는 벤치에서 아이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문득 여유로웠다.
그날부터였나 보다. 아이의 에너지는 가히 폭발하듯 역동적인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지상에 자동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 아이는 앞으로 마구 뛰어갔고 옆길로 새기도 했으며 뒤로 다시 돌아와 나의 손을 잡고 걷기도 했다. 걷다가 다른 놀이터가 나오면 한참을 놀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 얼굴과 이름을 익혔다.
밖에서 에너지를 쏟아내면서도 다시금 에너지를 주워 담기도 했다. 하늘에 걸린 달 조각을 보며 감탄도 하고, 슈퍼문이 뜬다는 뉴스를 보면 아무 때나 뛰쳐 내려와 씽씽카를 타고 슈퍼문을 좇으러 다녔다. 자전거나 씽씽카가 짐짝처럼 느껴지지 않아 산책을 포기하는 일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친구 엄마 핸드폰 번호를 몰라도 놀이터에만 가면 항상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거기서 또 놀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이마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어떤 만족감으로 꽉 차 들었다. 우리가 사기로 한 것은 더 큰 집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위한 환경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내 속에 들어차 있었던 불안감 같은 건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해소되었다. 아이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를 토닥여주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고 소문이 난 이곳에는 참 많은 어린이와 아기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언제고 아파트를 나설 때마다 꼭 한두 명씩의 어린이와 아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유아차를 탄 영유아,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거니는 아기들, 놀이터에서 종횡무진하는 아이들, 풋살장이나 배드민턴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청소년. 아이들은 때때로 소란스럽지만 언제나 명랑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아이들이 주는 에너지. 세상에서 가장 맑고 순수하지만 또 생생하고 힘이 느껴지는 그 에너지가 나는 이제 너무나 귀하게 느껴진다.
그 귀한 생명력은 내 몸에 흐르고 흘러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내 속에 오래 들끓던 그 고민, 둘째를 낳아 이런 환경 속에서라면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자신감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자연 속에서 걸음마를 배울 수 있다면, 사계절이 흐르는 모습을 함께 구경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고, 아이가 걷고 뛰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어린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밀고 가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다. 오르막에 살며 집 앞의 모든 도로가 울퉁불퉁하고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오는 곳에 살았던 예전의 나처럼. 많은 것을 새롭게 정리하고 공간이 주는 변화를 맞이한 나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지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 도저히 용기가 없어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것에, 한 번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갖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