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편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웬만한 구기종목은 물론 수영도 참 잘한다. 자유형을 겨우 해내는 나에게 그는 거의 ‘박태환’급의 수영선수다. 처음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봤을 땐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진 느낌이 들 정도였다. 축구장에서 골을 넣는 모습보다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접영 하는 모습이 훨씬 멋있어 보였다.
“초등학생 되고 나서부터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아버지랑 수영 다녔어. 8년 동안.” 결혼 초에 그가 어떻게 ‘박태환’급의 수영인이 되었는지 말해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그렇구나”하고 흘려들었다. 그런데 초등학생 2학년을 키우고 있는 지금 현재, 그 말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참으로 놀라워 잘 믿기지가 않는다.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나 쫓기듯 등교하는 딸을 생각해 보면, 새벽 6시에 일어나 수영장을 다녀오는 초등학생이라니.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보아도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말 그대로야. 매일 아침, 6시, 8년 동안. 그땐 정말 싫었거든.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몸이 뒤틀렸었지. 나도 어렸으니까.” 그는 ‘매일’이라는 말을 크게 강조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아버지는 동이 트면 아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목적지로 향했고 그날 치의 수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매. 일. 매. 일.
“그럼 학교는 언제 갔어? 늦진 않았어?”
6시 수영장에 도착해 1시간 수영을 하고 씻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7시 반. 아버지는 아침을 드시고 바로 출근을 하셨고, 아들도 마찬가지로 아침을 챙겨 먹고 등교를 했다. 오전 8시 40분이라는 등교시간 전, 이미 '운동'이라는 미션을 끝낸 초등학생. 그렇게 매일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학업을 이유로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아침 운동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올해는 우리가 결혼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라 술약속이 잦은데 아무리 술에 취해 집에 와도 아침만 되면 벌떡 일어나는 모습은 봐도 봐도 신기하다. 회식을 가면 꼭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인지라 자정을 넘어서 집에 오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새벽에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침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묵묵히 출근했다. (그와 같은) 회사를 다니면서 거나한 회식 다음 날이면, 오전 반차를 쓰거나 지각하는 직원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지난 10년 동안 남편은 과음, 숙취 등의 이유로 단 한 번도 반차, 연차를 사용한 적이 없다. 물론 지각 한 번을 한 적도 없다.
그에게 출석, 출근은 기본값이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기 싫다고, 출근하기 싫다고 이상한 노래를 지어 불러도 결국엔 툴툴 털고 일어나 꾸역꾸역 집을 나서는 게 당연한 일.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지키는 건 아마도 몸이 기억하는 습관 아닐까. 단련된 체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힘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완성된 기본 체력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라도 해내는 힘”이다. 그 무엇으로도 절대 무너져 내리지 않을 힘이란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 것만 같다.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때 그 시절 밀려오는 잠을 꾹 참아내고 아버지와 함께 수영장으로 향하던 그 시절일 것이다.
“가끔 당신이 말하는 ‘잘 나가는 부모’ 덕 보는 친구들 있잖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외제차를 탈 수 있고, 사업체를 물려받을 수 있는 그들이 사실은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잖아. 있지, 난 당신이 더 부러워.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해온 당신은 그 자체로 ‘무기’야. 그건 돈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거잖아. 그 어떤 재능 있는 사람도, 매일 꾸준히 해온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야. 잠이 쏟아지는 그 새벽에 매일 수영장 나가서 운동했던 그 시절, 그게 당신이 부모님께 건네받은 최고의 유산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 아침마다 거뜬히 일어날 수 있는 체력, 정직하게 시간을 지켜내는 성실함을 장착한 당신은 이미,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