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를 넘나들며
하루하루
여행 출발 전 400만 원을 날린 이후로 생산활동이 없었다. 매일을 주님의 은혜로 살았고,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계란 10구짜리를 사서 한 번에 다 삶고 배고플 때마다 하나씩 까먹으면서 다니고, 500원짜리 생수를 사기가 아까워서 공중화장실 물을 떠서 마시고, 솔잎으로 차를 끓여먹을 수 있나? 싶어서 솔잎을 따다가 솔잎차를 끓여먹고(맛없음), 과자 하나를 살 때도 용량 칼로리 가성비를 따져서 다이제, 옛날 과자 이런 것만 사 먹고, 가끔 5000원짜리 식당밥을 먹으면 좋다고 헤헤거렸다. 그땐 왜 그랬을까, 부모님께 용돈 몇 푼 보내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하고 싫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 아틀라스가 양팔로 하늘을 평생 떠받들고 살듯, 삶의 무게와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짊어지며 눈물의 항문쇼를 했다.
시장
그러던 어느 날, 배가 출출한데 먹을 것도 떨어진 상태였는데 한 시장을 발견했다. 잘 됐다 싶은 마음으로 범죄도시 장첸처럼 꼬릿 꼬릿 한 냄새를 풍기며 자전거를 질질 끌고 시장에 설치된 파라솔들 밑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강한 생선 비린내가 났었는데,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악취였다. 햇볕은 강렬했고, 파라솔들은 하나같이 빛이 바랜 상태였다. 지나가면서 생선 비린내의 근원지 부근을 지나가는데, 노이즈 켄슬링 이어폰을 착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렸다.
"고등어가 2마리에 5천 원!!"
생선을 판매하는 여러 상인들 중 느타리버섯을 닮으신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 그녀가 파는 수산물도 신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자전거를 매대 옆에 세우고 30cm짜리 고등어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사람들은 바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마치 혼자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파라솔 아래에서 고등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잠깐 서있었다. 배가 갈라진 고등어를 보며 많은 고민을 했다. 할머니는 고등어를 가져가라는 말과 함께 애처로운 눈빛을 지었고, 난 파리가 몇 마리 꼬인 고등어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면 볼수록 고등어는 사망선고를 내린 지 꽤 되어 보여서, 잠깐의 묵념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고 등어의 명복을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암튼 빌며 애도의 뜻을 심심하게 표하고,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휙 돌아 매대를 지나쳐서 시장 구경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점점 고파졌고, 마땅히 저렴하게 사 먹을만한 게 눈에 안 들어왔다. 고열량 식품이나 우유 따위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시장 내에 위치한 할인마트에 들어갔다. 그렇게 마트에 들어서자 어머나 세상에.... 초장 한 통이 1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순간 눈이 휙 뒤집혀서 다른 것을 살 생각을 하지 못했고, 초장을 구매해서 마트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까 그 느타리 할머니를 다시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바보짓이었지만 사실 그때 고등어 시세를 잘 몰랐기 때문에 30cm짜리 고등어가 2마리에 5천 원이면 굉장히 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식중독 같은 건 살면서 걸려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파리 몇 마리 꼬였다고 죽기야 하겠어? 하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할머니, 2마리에 5000원이면 한 마리에 2500원인가요?" 했는데 실실 웃으시면서 그건 아니지 시발 새끼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시길래 순간 쫄았다;; 그래서 뭐 싫으면 현피 뜰래? 하려다가(※현피= 현실에서 피자 시켜먹으며 담소 나눔) 노인공경의 마음가짐으로 "허허, 그럼 얼만데요?" 하니까 1 마리면 2500원이 아니라 3천 원이라길래 2500원에 피땀 눈물 섞인 500원을 더 얹어서 3천 원 공손하게 건네고 검은 봉지에 고등어 한 마리를 받아왔다.
기분이 좋아서 엉덩이를 들고 부랄을 덩글 덩글 흔들며 주변 공터로 갔다. 공원 음수대 옆 벤치에 고등어를 눕혀놓으니 왠지 쾡한 눈이 재수 없어서 눈 그렇게 뜨지 마 색꺄 하면서 대가리 한 대 세게 후리고 바로 수술 들어갔다. 일단 고등어 뼈부터 뻰찌로 하나하나 뽑아주시고, 고등어회 검색해보니까 비늘도 같이 먹길래 따라 해 보려고 멀티 툴에서 메스 꺼내서 대충 비늘을 겉 부분만 칼로 삭삭 긁고 살점이랑 비늘을 같이 썰어서 보기 좋게 냄비 뚜껑 위에 플레이팅 했다. 지옥에서 올라온 고등어인지 비린내가 심해서 중간중간 물로 살점을 씻으면서 했는데 와.. 핏물이 뚝뚝 떨어지니 음수대 주변으로 생선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아마 그곳은 아직까지도 저주가 안 풀렸을 것 같은데 암튼.. 마치 영화 속 살인사건에서 증거인멸을 하려는 살인범이 아무리 피를 벅벅 닦아내도 피를 지우지 못하는 장면과 흡사했다. 그래서 결과는?
비룡도 울고 갈 회를 만들었다!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서 시향 해보았다. 코에 갖다 댄 순간 삭힌 홍어인가? 소리가 바로 나왔지만 아까워서 초장에 진짜 듬뿍 버무려서 먹기 시작했다. 비린내가 어퍼컷을 훅 치고 들어와서 헛구역질도 했지만 물을 마시면서 다시 가라앉히고 초장 반 고등어 반 이렇게 대략 1:1 비율로 먹으니까 어느 정도 참고 먹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론 햇반도 다 못 먹었는데 초장을 한 통 다 비우고 고등어도 다 먹고 내가 4000원도 안 되는 돈에 회를 맛보다니, 역시 여행 짬밥 헛으로 먹은 게 아니구먼 허허, 노하우란 이런 거지, 이렇게 먹는 방법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행복에 젖었다. 그렇게 그 날, 조금 더 이동하다가 저녁이 되고 나선 잠자리를 찾아서 잠에 빠져들었다.
행복했다. 등 푸른 고등어가 뱃속을 활기차게 헤엄치는 꿈을 꿨다. 그런데 그 행복도 잠시.. 자고 있는 도중에 배가 너무 아파서 새벽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방귀가 나오려길래 똥구멍을 배시시 벌린 상태로 힘을 살짝 풀었고, 곧이어 뿡! 하고 방귀가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갑자기 덩-기덕♪ 쿵 더러러러러러♬ 할 때 더러러러 부분처럼 부르르르르르르르르하고 뒷방구가 따라 나오는데 응..?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방귀소리가 아니었다. 상당히 의심스러운 나머지, 팬티의 겉 부분, 항문 부근에 검지 손가락을 쿡 찔러서 시향을 해보니 이 냄새는 분명 익숙한 그 냄새, 인분(人糞) 냄새였다.... 그렇다. 나이 열여덟 먹고 바지에 똥을 지려버린 것이었다;;;
똥냄새를 맡으니 순간적으로 잠이 확 달아나길래 헐레벌떡 일어나서 바지를 벗었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공원 으슥한 곳에서 바지를 벗고 팬티도 벗어버렸다. 그리고 항문을 물티슈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벅벅 닦았다. 그러던 와중에도 방귀가 피식피식 나와서 혹여나 방귀를 뀌다가 똥까지 쌌을까 싶어서 물티슈로 똥구멍을 수천번을 닦고 또 닦았다. 그 순간에도 항문은 가죽 피리소리를 멈출 줄 몰랐고 계속해서 더러러러~ 부분을 피처링했다. 하.. 이렇게 방귀를 뀔 때마다 똥구멍을 닦고 있으면 날이 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곰돌이 푸마냥 하체노출상태로 어두운 수풀 쪽으로 들어가서 아예 자세 잡고 똥을 싸기 시작했다. 푸세식 변기에 앉아서 싸는 자세로 수그리자 속에서 그르릉 그르릉 하는 준비음이 들렸고, 하복부에서 무하마드 알리가 딸랑이 샌드백 미친 듯이 때리는 것처럼 강력한 통증과 액체의 출렁임이 느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항문에서 거품이 쭉쭉 나오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고등어는 내용물은 안 나오고 뽀글뽀글한 거품만 나오길래 혹시.. 소화가 다 안 되었지 않았을까, 변의 일부에서 내 고등어를 찾아서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휴대폰 후레시를 켜고 나뭇가지로 거품을 휘적휘적거리면서 고등어 살점을 찾아봤는데 살점은 아예 없고 갈색 거품만 한가득이었다. 세상에.. 고등어 셰이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음날
그렇게 죄 없는 빤스와 바지 한 개씩을 모두 폐기 처분한 다음 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새벽부터 발열 두통 복통에, 아침부턴 설사가 또 주룩주룩 나왔다. 어떡하지 싶어서 고민하다가 역시 밥이 보약이라고, 밥을 먹으면 밑에 있는 것들이 내려갈 거고 금방 괜찮아질 거다 싶어서 아침에 식당으로 가서 밥을 제대로 챙겨 먹고 자전거 타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밥을 안 먹었을 때보다 더 메슥거렸다. 어느 순간 속이 역겨워서 욱 하고 길거리에 토했는데 정체모를 핏덩어리가 나왔다. 그것도 피가 완전 연두부처럼 덩어리 진채로... 와 이건 진짜 큰일 났다 이렇게 생을 마감하나? 아니면 밤에 나도 모르게 뱀 새끼를 산채로 먹어서 뱀독 때문에 몸에 있는 피가 굳은 건가? 싶었는데 아침에 먹은 선짓국이었다. 깔깔
그 뒤로 몸에 힘도 없고 상태도 안 좋아서 뻑하면 화장실만 찾았고 하루에 롤 휴지 하나를 다 썼다. 그리고 배가 아무리 고파도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또 먹으면 또 토하고 이래서 뭐라도 마셔야지 하고 음료수를 사다가 마시니까 더 메슥거렸고, 결국 늦은 오후부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을 마시니 오히려 공복감도 사라지고 좋길래 음료수 말고 생수로만 다음날까지 진짜 쉴 새 없이 마셨다. 적어도 이틀간 15L는 먹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이었다. 근데 이게 웃긴 게 물을 많이 마시니 속이 게워졌는지 이틀 뒤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았고, 뽀빠이가 시금치 먹은 것처럼 매우 쌩쌩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는 횟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교훈과, 식중독에 걸리면 물을 많이 마시면 금방 낫는다는 교훈을 얻어서 절대 죽어있는 채로 방치된 날 것들을 회로 안 먹게 됐다. 이 경험은 나의 삶에 있어 어찌 보면 추억이자, 뜻깊은 가르침이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