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초시현 Jan 02. 2020

지리산에서 스님한테 동냥한 이야기

금화 스님 감사합니다. 

금기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의도치 않게 끼니를 거를 때가 종종 발생한다. 체력이나 날씨 등의 요인에 의해 변수가 많은 여행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이럴 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음 끼니때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무조건 뭐라도 먹어야 한다. 공복으로 다음 끼니까지 기다린다면 몸은 마치 기름이 바닥난 차량이 나아가려고 하듯 힘들어할 것이고, 그 정신적 육체적 폐해는 여행에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늘 비상식량을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놓고, 의식적으로 몸에 힘이나 당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 간식류로 에너지를 공급하여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내 패니어엔 초코바나 견과류, 육포 등 에너지를 채울 식품들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남원

남원에 도착해서 바래봉에 오르기 전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고열로 인해 끙끙 앓으면서 이동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식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도 못했고, 감기약을 복용해서 몸이 나른해진 나머지 이른 저녁부터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아침이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될 핫팩은 밤새도록 제 한 몸 다 바쳐 나에게 온기를 전달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찬바람이 잠자리를 뒤흔들 때 핫팩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고 나는 그 녀석의 주검을 챙겨 해먹에서 내려왔다. 해먹에서 내려오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폐에 훅 치고 들어오는데 폐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자전거로 곧장 뛰어가서 패니어에 들어있던 핫팩을 하나 더 꺼내어 흔들었다. 한 5분쯤 덜덜 떨다 보니 핫팩이 따뜻해지면서 조금 버틸만해졌다. 추위는 어느 정도 해결됐고, 이제 아침을 먹어야 했는데 먹을 게 없는 건 알고 있었기에, 비상식량인 초코바라도 섭취해서 끼니를 때우려고 패니어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한참을 찾아봐도 비상식량은 나오지 않았다. 순간 무릎을 꿇고 나라 잃은 김구의 표정으로 오열하며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렇다. 전 날 먹었던 닥터유 에너지바 2개가 마지막 잎새였는데.. 전 날 다 먹어버렸던 것이었다. 왜 내가 이걸 체크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는 더 지근거렸고, 피골이 상접했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정박과 엇박을 넘나들며 알 수 없는 음률을 만들어냈다. 


상황은 이미 산 중턱까지 올라와서 잠에서 깬 상태였다. 하산하여 읍내로 내려갔다 온다면 내려간 고도만큼 한참을 또다시 올라와야 했다. 고열에 공복인 상태로 산에 오른다는 건 굉장히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임엔 틀림이 없었지만, 그 보상으로 정상을 찍고 내려와서 맛있는 식당밥을 먹기로 하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그렇게 바래봉 가는 숲길 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뒀고, 등산스틱을 쭉 빼들었다. 양 손을 번갈아 가면서 얼어있는 땅바닥을 쿡쿡 찌르며 숲길을 걸어 들어갔다. 한 5분쯤 뒤엔 개가 왈왈 짖고, 키가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찰이 눈에 들어왔다. 사찰을 그냥 지나려 했는데, 건물 어디선가 구수한 밥 냄새가 나더니 후각세포들이 날이 선 듯이 예민하게 후각정보를 뇌에 전달했다. 밥 냄새를 맡으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다.



스님과 함께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밥 냄새만 맡고 지나가자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한겨울 날씨에 배가 너무 고팠던 것이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염치 불고하고 사찰에 문을 두드렸다. 스님은 몰골이 거의 시체인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셨고, 사정을 들으시곤 금세 식사를 차려주셨다. 스님과 몇몇 불자 분들은 이미 다 드셨다고 하셨다. 음식을 보니 정말 눈이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추접스럽게 허겁지겁, 아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절밥은 남기지 않는 게 예의라는 말이 생각나서 반찬 국물까지 모두 둘러마셨고, 밥을 더 먹겠냐는 말씀에 염치없게도 밥알이 입에 남아서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렇게 사람도 안 오는 사찰에서 밥을 두 그릇 반이나 리필해서 먹었다. 그래도 스님은 끌끌 웃으시면서 잘 먹는다고, 더 먹으라고 하셨다. 식사를 다 마치자 스님이 잠시 기다리라며, 차를 끓여주시겠다며 찬장에서 수동 커피머신을 꺼내셨다.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시면서 커피를 갈기 시작하신 스님은 내가 어떤 여행을 얼마나 어떻게 다니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하셨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학교 건축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렇게 오래 여행을 다니는 이유가 뭔가?"

"생뚱맞게 들리실 것 같지만, 그래도 말씀드리자면 자전거 여행을 통해 에티오피아라는 국가에 학교를 선물해줄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면서 모금활동을 하는 중입니다."

"그렇구먼. 그래서, 얼마나 했나?"


사실 그 당시엔 목표액 2000만 원 중 500만 원밖에 모이지 않은 상태였다. 기간도 2년이나 초과되었다. 목표했던 400일에서 훨씬 벗어난 날짜였는데도 저조한 실적이었다. 자존감도 낮아서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많이 수치로 느껴졌다. 그러나 나에게 이렇게 감사한 친절을 베풀어주신 스님께 이야기드리는 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혓바닥으로 이를 쑤셔가며 차근차근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지금 여행 기간도 2년이나 초과되고, 후원금은 500만 원 정도를 모았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제가 근성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포기 안 하고 계속 모금도 해보고 여행도 마무리 짓고 하려고 합니다."

"그걸 그렇게 하고 싶나?"

"예. 모금이 안 되면 여행 끝내고 알바를 뛰어서라도 모자란 부분 채워 넣고 해야죠. 이왕 시작한 건데."

"그렇구먼.. 진짜 재밌는 친구네."


금화 스님은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원래 질문은 더 길었지만 정말 할 수 있겠냐? 정말 하고 싶냐?라는 맥락의,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 지를 여쭤보시는 질문들이었다. 뭐가 그리 궁금해서 몇 번이나 되물으시는 건지, 답변을 드려도 같은 맥락의 질문을 또 하시는 스님이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러시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슬슬 약이 올라서 조금 강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이건 제가 몇 년째 꾸고 있는 꿈이라서, 그만큼 소중하거든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해내야죠. 지켜보셔도 좋습니다."

"그래 이 사람아!! 바로 이거지! 시간이 그만큼 초과되었다면서 그렇게 한 겨울에도 버티고 있다면 이 정도 대답은 당연히 나와야지!"


스님은 갑자기 짧은 대답과 함께 무릎을 탁 치며 이야기를 끝내고 일어나시더니 서랍장에서 5만 원권 2장과 편지봉투를 꺼내어 돈을 편지봉투에 넣어서 건네셨다. 


"그럼 스님도 보시하겠네. 자네가 가진 그 꿈, 내가 조금 이루어주도록 하지. 이거 이렇게 이야기도 나눴고 사정도 알게 됐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보낼 수가 있어야지 말이야."

"감사합니다.. 학교 완공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 됐고. 하던 거나 잘하시게. 연락 안 해도 괜찮아. 자네한테 보시하는 사람들은 말이야,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자네 하는 일이 잘 되라고 하는 거일 걸세. 연락 안 해도 되니, 가던 길이나 잘 살피고, 다치지 말고.. 배짱으로 밀고 가라고. 그 꿈 꼭 이루시길 바라네."


그렇게 밥을 얻어먹고, 후원을 받고, 스님이 노파심에 챙겨주신 과일까지 한 봉지 가득 받았다. 문 밖으로 나와서 마당에서 스님께 배꼽인사를 꾸벅 드렸다. 스님은 점점 멀어지는 나에게 잘 가라고 손을 계속해서 뻗어서 인사해주셨다. 덕분에 난 속이 든든한 상태로 바래봉에 다녀올 수 있었고, 정상에서 내려와서 사찰을 다시 지나친 다음 절 입구 부근으로 되돌아왔다. 앞으로 평생 다시 올 일이 없을 사찰 쪽을 다시 휙 돌아보는데, 마른 솔잎이 쭉 깔려있는 사찰 입구가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스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금화 스님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