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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초시현 Jan 10. 2020

CU점장님한테 편의점 음식 얻어먹은 이야기

전남 보성 CU 보성역점 사장님께 감사를


똑같은 맘-KARA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며칠 차냐, 짐 무게가 얼마나 되냐,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하냐, 어디서 왔냐 등, 누군가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면 이렇게 질문해요!'같은 클래스를 열어서 교육이라도 한 건지 열이면 열 다 똑같은 형식의 질문들이다. 뻔한 말 하고 갈 거면 말 걸지 말고 제발 가만히 좀 놔두라고! 솔직히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그렇다. 말을 거는 사람 입장에선 여행자에게 관심을 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걸 1년 이상 반복에 반복을 해서 듣는 사람 입장에선 궁금한 것만 쏙 캐묻고 가고, 일정 소화에 방해만 되고, 본인 여행 감수성만 채우고 떠나는, 그리고 이틀쯤이면 영원히 잊힐 사람으로밖에 생각이 안 든다. 이틀만 지나도 까마득하게 잊힐 사람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운을 떼는 순간 으아아아! 하면서 달려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똑같은 레퍼토리의 대화를 마치면 1회당 1개월씩은 늙는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머릿 털이 빠져서 이마선이 정수리까지 올라갈 것도 재차 확신하게 된다. 이런 일이 가끔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도 한 두 명씩은 꼭 있다 보니 대인기피증까지 도진다. 그럼에도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가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말을 건 게 아니라 응원을 해주고 싶어서, 관심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여행을 다니면서 이 부분은 정말 풀 수 없는 난제였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디서 왔어요?"

"강원도 삼척에서 왔어요"

"저런 자전거는 얼마 정도 해요?"

"75만 원짜리예요."

"저걸로 얼마나 타고 다녔어요?"

"중간에 기변을 한 번 해서 저걸로는 아마 일 년쯤 탔을 거예요."

"총 얼마나 다녔는데요?"

"2년쯤이요."

"우와~ 밥은 어떻게 해 먹고 다녀요?"

"(제기랄....)"


전남 보성을 여행하던 때였다. 평소라면 그냥 빨리 답을 해주고 끝냈을 텐데, 고열 감기에 머리에서 김이 쉬익 쉬익 나가기까지 했던 터라 더 이상은 친절하게 대답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말꼬리를 좀 흐렸다. 그러자 점장님은 눈치를 보시더니 자리로 돌아갔고, 난 계속 묵묵히 먹었다. 그리고 사람이 조금 빠졌을 때 점장님이 카운터에 서셔서 여행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냐, 힘들지 않냐, 배고프지 않냐, 자전거 여행하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위로를 해주셨다. 나를 '강원도 청년'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아 tlqkf 라면 불어요 점장님!' 하면서 원망했다. 그때가 1시 50분인가 그랬다. 그리고 잠시 후, 2시가 됐다. 점장님이 갑자기 매대에 진열된 삼각김밥이며, 빵이며, 도시락이며, 바코드를 삑삑 찍으시면서 나에게 주시는 게 아닌가? 본인 먹을 것들인데 자신은 다른 것을 먹으면 된다고, 챙겨가서 여행하는데 굶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챙겨주셨다. 알고 보니 cu 제품들은 오전 2시, 오후 2시가 유통기한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바코드를 찍어도 카운터 기계에서 삐삐삐삐삐 거리는 소리만 나지 결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편의점을 나갈 때 사장님께서 나긋나긋하게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한 마디 해주시는데, 아까 건성으로 대답한 게 죄송스럽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해서 편의점 문밖을 나갈 때 눈시울이 붉어져서 나갔다. 아직도 유리문 너머에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점장님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전남 보성 CU 보성역점 점장님께 이 짧은 글을 통해서 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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