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초시현 Dec 13. 2019

서해 무인도에서의 하룻밤

풀 한 포기 훼손되지 않은 무인도는 언제나 사람을 매혹시킨다.

세계에서 4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정답은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세계랭킹 1위로, 무려 15000개나 되는 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2위는 어디일까? 세계 2위는 필리핀이다. 무려 7100개나 되는 수많은 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3위는 어디일까? 세계 3위는 바다 건너면 바로 갈 수 있는 이웃나라 일본이다. 일본도 무려 6800개나 되는 섬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4위는 어디일까? 세계 4위로 많은 섬을 보유한 국가는 바로 태극기가 펄럭이는 우리나라다. 한국에 섬이 이렇게나 많다고? 그렇다. 국토해양부 공식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유인도서는 482개, 무인도서는 2,876개로 우리나라는 총 3358개의 섬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다도국(多島國)으로서 세계랭킹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기관마다 섬의 정의나 여러 부수적인 조사 조건들이 달라서 통계청에선 3170개라고 하고, 행정자치부에선 3339개라고 하고, 해양수산부에선 3358개라고 하고, 국토교통부에선 3677개라고 하면서 각기 다른 수치를 내어서 사람들이 '지금이 고구려 영토확장의 시대냐', '왜 자꾸 섬들이 늘어나는 거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종합하자면 확실한 건 어떤 수치를 봐도 3300개는 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섬' 하면 제주도, 강화도, 울릉도같이 유인도를 떠올리는 게 대다수이다. 하지만 자료에도 나오듯 우리나라에 있는 섬은 대부분이 유인도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인도임을 알 수 있다. 여행을 준비할 무렵, 무인도 여행도 한 번 하고 와야 진짜 우리나라 여행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획에 무인도를 몇 개 넣었다. 무인도인데 어떻게 캠핑을 하냐, 불법이 아니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나 있냐 등의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무인도서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2조·제10조에 따라 무인도는 절대보전 무인도서, 준보전 무인도서, 개발가능 무인도서, 이용 가능 무인도서로 나뉘어 있어서 그것도 섬 나름이었다. 


사승봉도(砂昇鳳島)

오늘의 주인공인 섬,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위치한 섬인 사승봉도는 이용 가능 무인도서에 속하기에 무인도서의 형상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출입 및 활동이 가능했다. 사승봉도는 유인도인 승봉도에서 약 2km 정도 떨어져 있고, 가장 가까운 육지인 충남 서산과는 약 15km 거리에 떨어져 있으며 모래가 많아 사도(沙島)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는 섬인데, 무인도 캠핑으로 꽤나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여객선이 아니라 낚싯배이지만 아무튼 갈 수 있는 배편이 있기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섬에 가기 전, 구글 검색을 통해 사승봉도의 소유주이신 여사장님의 번호로 미리 연락드려서 섬으로 갈 때 필요한 배편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안내를 받은 대로 사승봉도 바로 옆에 있는 승봉도를 경유했고, 승봉도 선착장에서 선창호를 비롯하여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낚싯배들 중 하나를 타고 사승봉도로 들어갔다. 사승봉도로 갈 때 운이 참 좋았던 게, 때마침 승봉도에서 사승봉도로 들어가는 여행객 팀들이 있어서 같은 낚싯배로 함께 이동할 수 있었는 점이다. 혼자서 배를 타면 뱃삯이 왕복 5만 원이지만, 5인이 넘으면 한 사람당 왕복 1만 5천 원만 내면 된다는 정보를 여사장님으로부터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쪽 해변가

승봉도 선착장에서 푸른 바다를 거침없이 가르며 출발한 통통배는 10여 분 만에 사승봉도의 동쪽 해안에 도착했다. 배는 보통 대이작도와 승봉도가 보이는 북쪽 해안에 접안을 하지만, 오늘은 함께 배에 탄 분들 중 노인분들이 계셨는데 짐을 많이 챙겨 오셨고, 그분들이 섬 동쪽에 있는 빈집에서 묵을 예정이셔서 동쪽 해안가로 접안을 했다. 사승봉도엔 선착장이 없는 관계로 배는 동쪽 해안가 모래톱에 뱃머리를 쭉 밀고 들어가면서 접안을 했는데, 선수 쪽 하단부가 모래에 그르륵하며 긁히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리더니 갑판에서 다리로 미세한 진동이 전달되었다. 그렇게 멈춘 배는 배 길이의 반만큼 모래에 파묻힌 상태였다. 신기했다. 전국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하선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가 무슨 물개나 망둥어 새끼도 아니고 모래톱까지 올라왔는데 빠져나갈 수 있나? 싶었다. 잠시 뒤, 처음 보는 접안 방식 때문에 신기해하던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내리나 싶어서 벙쩌있을 때 즈음, 선장님은 구급대원처럼 사다리를 들고 뛰어오셨다. 그리고 마치 올림픽 창던지기 선수처럼 사다리를 내립다 던져서 모래사장에 꽂으셨는데, 배에서 사다리를 하나 던져서 꽂으니 그곳이 바로 간이 선착장이 됐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보며 뭐여 뭐여 하는 표정으로 한 마디씩 하면서 우물쭈물거렸다. 선장님은 친절하게 한 사람씩 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고 설명해주시고는 누가 먼저 내려가 보실래요? 하며 여쭤보셨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뭐지? 하고 주변을 쓱 둘러봤는데 다들 내가 혼자 온 것을 알았는지 나만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니겠는가? 난 고수를 한 입 가득 베어 문듯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숨을 골랐다. 사다리를 붙잡았고, 한 칸 한 칸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도 때문에 배가 앞 뒤로 흔들렸고, 뱃머리에 걸쳐진 사다리가 배의 출렁임에 맞추어서 배와 함께 흔들렸다. 사다리를 반쯤 내려가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다행히 무사하게 모래톱에 도착했다. 모래톱을 발을 딛자 파도가 밀려와서 신발이 모두 젖었다.



등산

다들 배에서 내려서 산길을 올랐다. 왜냐하면 섬의 메인인 북ㆍ서쪽 해변도 그렇고, 빈집으로 가려고 해도 그렇고 계단을 올라서 산을 넘어가야 갈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즉 필연적으로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언덕의 경사도를 보니 상당히 가파랐다. 오지랖에 아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노인분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언덕길을 오르다 다치실 것 같아서 짐을 들어드렸다. 20kg짜리 쌀부터 해서 각종 캠핑도구들, 식자재들을 들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뜨끈한 땀이 소매 안에서 주룩주룩 흘렀다. 또 태양은 어찌나 그리도 뜨겁던지, 시력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잠시 뒤 짐 옮기기를 끝내고 맥이 빠진 채로 며칠간 노인분들의 처소이자 이 섬 통틀어 딱 한 채 있는 섬 주인의 빈 집 앞마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는 빨간색이었으나 색이 바랠 대로 바래서 더 이상 무슨 색인지 알아볼 수가 없게 된 그 의자는 아직 부러질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굉장히 약해 보였다. 그 의자에 앉아서 흰머리의 노인이 건네준 물 한 잔을 쭉 들이켜면서 콧등을 스쳐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폐로 들어오는 짜가운 바다 공기, 저 멀리 지나다니는 낚싯배의 풍경을 즐겼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옆에 앉아서 계속 고맙다며 구시렁거렸다. 그 장면은 영화 속에서나 누릴법한 호사였다.  



서쪽 해변가

집에서 산을 넘으니 명사십리처럼 규모가 큰 서쪽 해변이 나왔다. 해안가 모래에 앉아서 경치 구경을 하다 보니 다른 배를 타고 온 경찰대 학생들이 보여서 인사를 나눴다. 이 섬에 온 사람들은 함께 고립되어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마치 외국에서 한국인들끼리 만난 것처럼 서로 반갑다며 인사도 잘 나눴고, 아까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짐을 들어준 것처럼 서로 불편한 것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려고 했다. 물어보니 경찰대 학생들은 우정여행을 와서 사승봉도에서 이틀간 비박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삽으로 땅굴을 파고 바다에서 떠밀려온 쓰레기들을 주워서 서쪽 해변에서 임시 쉘터를 만들어 잘 것이라고 했다. 음식 또한 낚시를 해서 잡아먹을 거라서 과자랑 물밖에 안 챙겨 왔단다. 그렇다. 비닐을 나뭇잎이 무성히 자란 활엽수 가지에 둘둘 감고, 나무의 광합성과 증산작용을 이용하여 물을 확보할 순 있지만 이마트에선 500원이면 쉽게 2L의 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모른척하긴 싫었던 것이었다.


*서쪽 해안은 퇴적 지형으로, 간물 때는 약 54만 2000 m2(16만 4000평)나 되는 모래사막이 펼쳐지나 밀물 때는 21만 1500m 2(6만 4000평) 가량만 육지로 남는다. 밀물과 썰물이 존재하는 서해안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백사장의 층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특히 음력 보름과 그믐 사이에 밀/썰물에 의해 섬의 넓이가 곱절이 넘게 차이 난다. 여담으로,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여긴 누드비치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라서 사람들이 알몸으로 피서를 즐긴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벗고 놀긴 하지만, 대부분은 개방적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왔을 때 누드비치가 활성화된단다.



북쪽 해변가에서

섬의 동쪽은 거칠고 경사가 급한 갯바위 해변이었는데, 섬의 북쪽과 서쪽 해안은 모래 해변이었다. 그중 서쪽 해안은 햇빛을 가릴만한 곳이 거의 없어서 캠핑은 사실상 북쪽 모래 해변에서만 가능했다. 염분기 없이 깨끗한 암반수가 샘솟는 우물과 간이화장실도 모두 북쪽 해변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북쪽 해변가에 하나 둘 자리를 깔았다. 나 또한 서쪽 해안에서 북쪽 해안으로 넘어와서 모래 해변가를 탐색하다가 나무 그늘이 있는 곳을 발견해서 해먹을 설치했다. 평소 늦잠을 즐 겨자는 편이라 아침에 해가 들어오지 않는 곳을 선호하기에 해먹을 걸 수 있는 나무와 나무 그늘이 있는 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고른 자리는 에이스침대처럼 바닥이 푹신해서 걸어 다니는데 발바닥 느낌이 푹신해서 좋았다. 해먹에 잠시 누워 머리 위에 소나무 이파리들과 저 앞에 보이는 탁 트인 해안가를 바라봤는데 사람도 없고 바람까지 솔솔 불어오는 게 금상첨화였다.   


해먹을 설치한 뒤 잠시 경치 구경을 하다 보니 아까 흘린 땀방울이 금세 말랐고, 어느덧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짠 하고 먹을 걸 꺼냈는데 아마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내놓을 때의 기분이 흡사 이랬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감기몸살 탓에 전 날 구입한 본죽이었다. 그래, 몸 아플 땐 이거라도 먹어야지 하면서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아뿔싸, 뚜껑을 열다가 그만 힘 조절을 못해서 플라스틱 용기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대부분의 죽은 바닥에 쏟아졌고, 나머지는 가방과 옷 위로 밥알들이 흩뿌려졌다. 모래에 떨어진 대부분의 죽이 너무 아까웠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식량이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먹지 못한다면 내일 오전까지 쫄쫄 굶어야 하는데 12시간 이상 굶는다면 매우 힘들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아직 모래 위로 떨어진 죽의 반 정도가 모래에 묻지 않은 상태여서, 이대로 굶을 순 없다며 손을 국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모래가 묻지 않은 부분을 퍼내어 먹기 시작했다. 한 10초쯤 뒤부턴 바로 옆 개미집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섬 개미들도 나와서 죽을 먹었다. 개미들은 모래가 묻은 아랫부분, 난 모래가 묻지 않은 윗부분을 먹었다. 결국 열심히 먹는다고 먹었는데 모래 묻은 부분이 많아서 얼마 먹지도 못하고 피골이 상접해버렸다.



북서쪽 해안

북서쪽 해안의 특별한 점이라고 한다면 모래사장 중간에 바닷물이 들어차서 물고기나 다양한 수중생물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위에 굴도 붙어있었고, 작은 물고기나 바위게 따위의 생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당시 바닷물이 시원하고, 움직이는 피사체들까지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으면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아까 그 경찰대학생들이 자급자족을 실천하기 위해 반도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잡았냐고 물어보니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단다. 그들은 그래도 물고기가 보이긴 하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며, 괜찮다고 덧붙였다. 그 옆엔 섬 관리를 도와주시는 소장님도 한 아저씨와 함께 조개가 땅에 있나 땅을 파보고 계셨다. 그래서 뭐가 잡히는지 여쭤봤는데 '아직은 물이 다 안 빠져서 안 잡힌다'며, 물이 다 빠져야 뭔가를 잡기가 편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소장님은 한 10여분쯤 땅을 파시다가 육지에 나가서 조개탕에 소주 한 잔 사 먹는 게 빠르겠다며 빠른 포기를 선언하셨다. 소장님 옆엔 사장님과 소장님이 함께 기르시는 닥스훈트 두 마리가 있었는데, 이들은 이 섬을 지키는 숏다리 수호천사 형제들이었다. 한 마리의 이름은 놀쇠인데 다른 한 마리의 이름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꺽쇠? 먹쇠? 석쇠? 돌쇠? 아무튼 쇠자 돌림이었다. 이 닥스훈트들은 사람의 손을 정말 많이 탔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해변가 모래 위를 뛰어다니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능청스레 이것저것 얻어먹기도 했다. 해변에 살다 보니 바닷물에 퐁당 빠져들어서 해수욕을 즐길 줄도 아는 멋진 녀석들이었는데, 좀 놀 줄 아는 녀석들인가? 싶었다.  



고기잡이

오후가 되어서, 소장님이 섬에 있는 사람들을 모으다. 다들 나와서 뭔 일인가 나와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소장님은 큰 목소리로 이제부터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어촌체험활동을 시작했다. 소장님께선 시범을 보여주기 위하여 직접 그물을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셔서 물고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예를 보여주셨다. 시범을 보니 적어도 20미터쯤은 되어 보이는 기다란 그물 끝을 잡고 바닷가로 원을 그리듯이 한 바퀴를 삥 돌아서 해안가로 끌어올리는 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었다. 다만 중요한 팁으로 그물을 해안가로 당길 땐 최대한 밑으로, 최대한 빨리 당겨야 그물 밑으로 도망가는 물고기들까지 깔끔하게 잡힌다고 하셨다. 그렇게 경찰대학생들, 여행 오신 관광객들, 그리고 나. 거의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기다란 그물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그물질을 시작했다. 그물을 들고 바다로 들어가서 한 바퀴를 빙 돌아서 육지 쪽으로 그물을 끌고 가니 물고기들이 그물 밑으로 도망을 쳐서 두어 번은 허탕을 쳤지만, 몇 차례 해보자 감을 잡았는지 다들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물을 물 밑바닥까지 촘촘히 내린 상태로 이동했고, 그물을 건질 때 힘차고 신속하게 건져내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수확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그물질에 익숙해진 우리는 신이 나서 더 열을 올려 그물질을 했다. 그물을 바닷가로 치고, 해변가로 건지고, 또다시 바닷가로 치고, 해변가로 건지고. 그렇게 반복해서 뭔가를 잡을수록 우리는 더욱 의연해지고, 비장해졌다. 그리고 더더욱 강해졌다. 우리의 표정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스파르타 군인들 같았다. 그렇게 해서 전어를 꽤나 많이 잡았고, 새끼 복어와 주꾸미, 꽃게도 잡았다. 이날의 주인공은 전어였다. 가을이 다 되어가는 날씨였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받았다. 다들 전어에 관심이 생겨서 한 마리씩 손에 잡았다. 그리곤 야만인처럼 비늘을 뜯고, 지느러미를 뜯고, 초장을 쭉 뿌려서 한입씩 먹기 시작했다. 와.. 예술이었다. 꽃게도 가위로 대충 자른 뒤 바닷물에 대충 헹궈서 먹었다. 초장을 뿌려먹으니 정말 게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살아있는 게를 바로 먹은 건 살면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입 안에 달콤하게 느껴졌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다 필요 없었다. 이 날 먹었던 이 살아있는 게의 맛은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다들 잡아 올린 수확물들을 손에 쥐고 초장을 가득 찍어서 입에 가득 넣고, 소주를 각 1병씩 잡고 컵도 없이 목구멍으로 그냥 들이부었다. 그리고 물살이 바뀌기 전까지 물고기를 더 잡으러 나가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술기운에 물고기를 조금 더 잡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인과 바다

내가 썰어먹은 꽃게를 들고 계신 왼쪽 사진의 노인분은 아까 짐 옮기는 걸 도와줘서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계속해서 나를 '김 군'이라고 불렀다. 술 한잔 걸치신 채로 어디 사냐 물어보시기에 강원도 삼척에 산다고 대답했는데, "어머니 아버지 배 있으시고?" 하시길래 어이가 없어서 "배 같은 거 없습니다"하니까 "어허 젠~장, 그런 지방에서 그거 안 하면 먹고살만한 게 뭐가 있나?"며 계속 엉뚱한 질문을 하시길래 스트레스받아서 '그래, 그냥 인정하자' 생각하고는 "사실 저희 집은 벼농사로 생계 연명하고, 감자 캐고 고구마 캐고 나물 캐서 된장에 양념해서 반찬 해서 먹고 삽니다." 하니까 역시 니 새끼가 강원도에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지 하는 표정으로 "그렇겠지! 그 촌구석에서 뭐 먹고살겠어! 하하. 김군네 텃밭에서 자란 감자 맛을 좀 보고 싶구먼 그래~? 나중에 좀 사다 먹을 수 있을까? 요즘 택배로 물건 보내면 빨리빨리 보내지잖아~!" 말하는데 순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은 감정에 욱해서 "형 미안한데 초등학교 야간 나왔어?" 드립을 칠 뻔했다.


저녁이 되자 노인은 자신이 가져온 술이 많으니 함께 먹자며 섬에 있던 사람들을 빈집에 초대했다. 그래서 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빈집으로 모였다. 노인은 테이블에 술을 가득 꺼냈고, 안주거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아까 잡은 전어는 즉석에서 대부분 먹었기 때문에 몇 마리 안 남았는데, 남은 전어라도 사용하려고 부추를 엄청 섞어서 무침을 만들었다. 전어의 양이 상당히 적어서 전어무침인지 부추무침인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다들 무인도의 분위기에 헤롱헤롱 취해버렸는지 부실한 안주로도 술을 대꼬리로 크으으 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들이켰다. 달빛 아래 소주를 열심히 들이켜는데 전어와 김치가 다 떨어지자 노인분이 애들 굶기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같이 온 60대 할머니를 통해 라면을 내오고, 밥도 주고, 유황오리도 구워주어서 무인도의 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가 오고 간 것도 아니었는데 다들 분위기와 술에 무진장 취했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서야 술자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정리를 하고, 술에 취한 상태로 휴대폰 라이트 불빛에 의지하여 산을 넘어갔다. 산에서 내려와 해변가에서 높은 하늘에 펼쳐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데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흥에 겨워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해먹을 찾아서 몸을 던지듯 누웠다. 그 날 따라 술기운이 왜 이리 강하게 오는 건지, 해먹에 눕자마자 드르렁 코를 골며 쌔근쌔근 자연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그거 소시지 아니야!

다음날 아침, 사장님이 배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셔서 같이 해변가를 걸어가는데 놀쇠가 마중을 나왔다. 귀여운 자식. 가다가 사람이 죽었나 싶었는데 더워서 바위에 기댄 것이었다. 놀쇠는 여기저기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그 사람의 가랑이에 코를 박았다. 놀쇠야 그거 소시지 아니야 내려와...



잠시 뒤 배가 도착했고,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 뒤 작별했다.
잘 있어라. 

놀쇠도, 사장님도, 섬에 남은 추억들도.

이전 25화 CU점장님한테 편의점 음식 얻어먹은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