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보 Mar 30. 2022

예보 일기_11

계획 임신에 대한 오해

비혼, 딩크, 저출산과 같은 단어가 낯설 정도로 내 주변에는 결혼하고 출산한 지인들이 많다. 어떤 달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연이은 결혼식으로 주말 일정이 꽉 차 버릴 정도다. 30대가 흔히 겪는 일인 듯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혼, 임신과 출산 소식은 적극적으로 알리지만 임신 준비 소식을 공유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굳이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알 것도 같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임신 준비 소식을 주변에 공유한 나는 지금 조금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둘 만의 시간도 좋지만 슬슬 아기를 가질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자꾸 2세 계획을 궁금해하는 주변인들 때문에 질문을 자제해달라는 뜻으로 ‘저희 이제 슬슬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던 부분도 있다. 그게 주기적으로 이번 달에는 성공했는지 확인해 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워낙 급한 성격 때문인지 나는 금세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해도 임신할 확률은 약 30%인 사실을 알아도, 1년 이상 자연임신을 시도해도 안 될 경우에야 난임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아도, 조급하면 더 안 되는 것을 알아도 생각과는 달리 한번 급해진 마음은 좀처럼 속도를 늦추려 하지 않았다. 늘 보던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운 지인들의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 사진에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육아 용품으로 바뀐 광고에 간절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창피했다.


한결같이 예민한 내 몸은 조급한 속내를 또 얼마나 잘 알아차리는지 온갖 임신 초기 증상을 다 경험하게 해 주었다. 정작 임테기는 한 줄이었다. 나중에 맘 카페 계신 판을 기웃거리고 나서야 이러한 현상이 ‘증상 놀이’라는 고유 명사가 생길 정도로 흔히 겪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일종의 신기루랄까?


결국 시속 120킬로로 쏘아 올린 조급한 마음은 반복적인 시도 끝에 곤두박질치듯이 다시 내려왔고, 나는 드디어 마음이 조금 정리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동일했다. 임신은 그런 것이었다. 매뉴얼대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칠 수는 있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신의 허락을 기다려야 했다. 노력파인 내 입장에서는 참 답답한 일이었다.


그렇게 불편하던 생리가 제 때 시작하기만 해도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할 무렵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답을 찾았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예쁜 아기를 출산한 남편 친구였다. 남편 친구 부부는 결혼하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성관계를 결코 아이를 가지려는 목적을 위해서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 보니 아이가 조금 더 빨리 찾아와 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죽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도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돌이켜 보면 스트레스는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통제하려고 할 때 찾아온다. 신의 영역인 임신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맘 카페에 들어가 보면 ‘임신 준비방’에는 매일 이른 시간부터 밤 늦게까지 수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대부분 궁금해하는 것은 한 가지다. 바로 어떻게 해야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사실 아이를 갖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다 보면 타이밍이 맞는 날 신의 축복과 함께 아이가 잉태된다. 그런데 ‘계획임신’에 대해 모두가 착각하고 있는 듯한 부분이 보였다. 계획 임신이란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다시 말하자면 피임 여부를) 계획하라는 뜻이지 임신이 되는 날짜를 계획하라는 게 아니다. 언제 아기 천사가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인위적인 노력을 조금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배테기도 임테기도 잠시 잊고 아기 천사가 찾아오기 전인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남편과 누려보기로 했다. 아기는 ‘사랑의 결실’이니 언제 맺힐지 모르는 결실이지만 기대하면서 사랑하는 데 집중해보기로 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정말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예보 일기_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