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미 Dec 28. 2022

공은 누구에게?

며칠 전 남편의 겨울 패딩 두 벌을 손으로 세탁했다. 욕조에 담그고 발로 밟고 몇 번이고 헹구느라 기진맥진했다. 

  “패딩 물 빼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남편의 이 말에 열받았다.

  “아니? 세탁하느라 힘든 사람도 있는데, 다 세탁한 패딩 물 좀 조금 뺐기로 그걸 생색을 내면 어떻게 해요?”

  기가 차서 대꾸했다.  

    

  남편은 요리할 때도 다 해놓은 국이나, 찌개에 마지막 양념을 조금 가미해 놓고는 자신이 다 요리한 것처럼, 공을 자기에게 돌려 치켜세운다.

  “이렇게 양념을 넣으니, 맛이 괜찮네.”

  “갖은 재료를 깨끗이 씻어서 이것저것 넣어 조리를 다 한 나는 뭐요? 양념 조금 넣은 것 갖고 다 자신이 한 것처럼 말도 잘하는구려.”

  씩씩거리며 얘기해봤자 소귀에 경 읽기다.   나만 약이 바짝 오른다.

  

  막내동서는 시댁에 가면 자신은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형님들을 잘 부려 먹는다.

  “형님, 이것 좀 해줘요.”

  “형님, 이것도 좀 갖다 줘요.”

  막내가 부탁하니 웬만한 건 다 해준다. 동서는 실컷 부려 먹고는 시어머님을 부른다.

  “어머니, 제가 이것 다 했어요. 어때요? 좋지요?”

  한 거라곤 입으로 형님들 부려 먹은 것밖에 없는데, 자신이 다 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그래서 미움을 받는다.      


  얼마 전 친정으로 온 딸에게 밑반찬을 싸주며,

  “맛있게 먹어라. 며칠 전에 너 온다고 엄마가 만들어 놓았어.”

  “엄마가 이런 거 만드느라 어깨가 아팠구나. 이젠 만들지 말아요. 오늘은 멋진 카페로 데이트가요. 엄마 고생한 거 싹 날려드리어 왔지.”

  비행하느라 쉬지도 못한 딸이 더 고생했을 텐데 이렇게 엄마의 수고를 치하한다.  그러니 더 잘해주고 싶고, 뭐라도 더 만들어 보내고 싶다.

  

  연구학교를 운영할 때, 열심히 하는 후배 교사가 예뻐서 칭찬했다.

  “학생들이 잘 따라주었어요.”

  “동학년 선생님들이 다 해주었어요. 저는 한 게 없습니다.”

  ‘어쩜 저렇게 공을 남에게 넘길까?’

  더 예뻐 보여서 밥을 사주었다. 항상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지난 11월 계간지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친정어머니께 전했다.

  “걔가 날 닮아서 그래. 내가 고등학교 때 문학소녀라고 주변에 칭송이 자자했어.”

  남편은 장모님이 당신 DNA로, 당신 덕에 딸이 글재주가 있다고 하는 말에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글재주는 없는데, 당신이 서재 만들어 주어서 책도 읽고 그런 행운도 온 거야.”

  남편을 띄워주자 너무나 좋아한다.  

    

  연말이다. 이제까지 지내 온 것이 누구의 공인가 생각해볼 시간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감사할 사람 천지다. 감사할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공을 돌리면 서로에게 좋을 것을, 그렇게 좋은 걸 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린 부부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