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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미 Feb 14. 2023

낙원이었나? 하와이는 (3편)

하와이에 취하다


  하와이의 바람은 달콤했다. 그 바람이 다가와 나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 이곳이 네가 상상했던 하와이야. 어때? ’

  ‘그래, 이곳이 하와이야. 춥지도, 숨 막히게 덥지도 않은 곳!’

  왜 하와이를 동경하는가? 40년을 회사생활, 교직 생활을 하면서 늘 앞만 보며 쉼 없이 살아왔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했고 매일 매일 전투처럼 치열하게 살아왔었다. 그런데 하와이의 커다란 팜 트리 밑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은 바로 쉼과 여유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바로 이 공기를 음미하면서 매 순간을 즐기리라.     


  후끈하지도, 후덥지근하지도 않은 하와이의 공기에 익숙한 듯 첫 발걸음을 디뎠다. 싱그러운 공기를 들여 마셨다. 커다란 나무 밑의 산들바람이 상쾌했다. 공항 앞은 몇몇 사람들로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여행사 직원들과 가이드가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가

  “혹시, 000 님이십니까?”

  비슷한 질문을 몇 번 던진 뒤, 우리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딸과 승무원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렸었다. 남편과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고 기장 등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셔틀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컵라면을 주어서 가방에 담고 호텔로 이동했다. 차창 너머로 본 하와이는 푸른 나무가 거대해 보였다. 거리는 한산하고, 붉은 부겐베리아가 탐스럽게 피어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들리는 영어가 낯설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제복을 입은 승무원들 뿐이다. 아시아나 승무원 외에 붉은 옷을 입은 외국회사 승무원들도 보인다. 이 호텔은 각국의 승무원들이 묵는 숙소라고 들었다.      


  체크인하면서 남자 직원이 나에게 뷰티풀을 외치고 호들갑이다. 뜬금없었지만 나도 맞장구치면서 너도 멋지다고 칭찬해주었다. 하와이는 인종차별이 없기로 소문났다. 아시아계 사람이 많아 오히려 백인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본토에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알아들으면서도 무시하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비자카드로 계산하면서, 딸의 ID가 필요한지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며 키를 건넨다. 승무원 가족은 10%할인을 받는다. 딸의 방은 코나 타워, 우리 방은 와이키키 타워인데, 같은 10층으로 배정받았다. 딸 방에 가보니 침대가 하나이고, 조금 좁아 보인다. 우리 부부가 묶는 방은 와이키키 타워에 오션뷰라고 했는데, 바다가 그리 많이 보이진 않았다. 대신 침대가 높고, 크고, 푹신하였다. 비행으로 지친 딸에게 쉬라고 하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호텔을 나섰다. 점심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남편은 한 끼를 굶으면 큰일이 나는 듯 나를 재촉한다.      


  인터넷으로 공부한 덕에 호텔에서 이 층에서 연결된 통로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Macy’s 백화점을 가로지르니 Food court가 나왔다. 버거, 라멘, 무스비, 음료 등 여러 음식을 팔고 가운데 광장에는 커다란 식탁과 동그란 식탁이 여기저기에 즐비하다. 갖가지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과연 다민족 나라답게 피부색도 가지가지다. 무스비를 주문하고, 비자카드를 기계에 넣으니 가격이 나오고, 다음 순서로 팁을 몇 퍼센트로 줄 것인지 고르게 되어있는데, “No Tip”으로 패스를 했다. 서비스도 없는데 무슨 팁? 무스비는 김으로 감싼 주먹밥인데, 소금이나 간장, 설탕, 깨 등으로 양념한 밥에 스팸을 넣어 만든다. 하와이 대표 음식이고, 비교적 저렴하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그리 저렴하지도 않다. 편의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샀는데, 가격이 우리 돈으로 4천 원이 훌쩍 넘는다. 국수한 그릇도 이만 원 정도이다. 역시 섬이라 그런지 물가가 비싸다. 알라모아나 쇼핑 거리를 걸었다. 명품 가게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거리 가운데에는 연못이나 미니 정원을 만들어 쇼핑하다 지친 이들이 앉아서, 유유히 헤엄치는 황금색 금붕어도 구경하고, 음료를 마시고 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하는데, 변기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샤워기도 고정되어 있어서 불편했다. 욕조는 엄청 큼지막했다. 전자레인지도 있고, 커피메이커도 있어서 잘 활용하면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겠다. 딸과 만나서 함께 와이키키로 이동하려고 우버를 불렀다. 백인 운전기사와 이야기해보니,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한국인 최씨 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유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와이키키다.     


  와이키키 해변을 둘러보았다. 상상해 왔던 모습 그대로다. 눈부신 파도를 타고 서핑하는 이들, 바다에서 공놀이하는 아버지와 아들, 은모래 위에서 일광욕하는 이들, 비치 체어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 커다란 보드를 들고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아! 나도 그들과 함께 있구나! 명확하게 들리는 영어가 실감이 났다. 거리를 지나는 여자들은 상반신이 거의 끈으로 된 옷이다. 겨울 나라에서 갑자기 더운 나라로 오니 적응이 되질 않는다. 간간이 비를 뿌렸지만, 우산을 쓰는 사람은 없다. 미스티 정도의 비가 살짝 뿌리기만 하고, 조금 지나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다시 쨍쨍하다. 이럴 때 그 유명한 하와이의 무지개를 봤으면 좋겠다. Lululemon에서 남편의 바지를 하나 샀다. 실용적이고 간절기에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한화로 한 18만 원 정도이다.     


  딸이 예약한 모아나 호텔 Beach Restaurant로 갔다. 테이블에서 바로 해변이 보이고, 식당 가운데에 반얀트리가 있어 더 이국적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조금 지나니 노을이 지면서 나무색이 조명으로 붉게, 푸르게, 연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은, 붉게 물든 노을,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거대한 나무들이 어우러지는 해변의 모습 때문이다. 몇 가지 주문한 코스 요리는 생각보다 많이 짜진 않았지만, 양이 엄청 많았다, 곁들여 마시는 맥주도 시원했다. 저녁이라 그런지 약간 쌀쌀하다. 스카프를 다시 여며 맨다.    

 

  식당에서 나오니 거리가 시끄럽다. 버스킹하는 사람들이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른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대학 시절 많이 불렀던 노래다. 한껏 기분이 좋아져 따라 부르며 몸을 조금씩 흔들었다. 지나가는 백인이 웃으며 다가와 주먹인사를 청한다. 동양 여자가 팝을 부르는 게 신기해 보였는지, 친밀해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Why not? 남편과 딸이 옆에 있으니 두려움도 없다. 딸은

  “엄마 미쳤어? 술 취했어? ”

  하며 못마땅하게 나를 쳐다본다.

  ‘그래! 하와이에 취한다.’

  하와이가 나를 취하게 한다. 아니 흠뻑 취하고 싶다.      

             *     *

  Dark and dusty painted on the sky

  Misty taste of moonshine teardrop in my eyes

  먼지와 어두움으로 채색된 밤하늘에

  촉촉하게 빛나는 달빛을 받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하와이, 많은 인종이 뒤섞어 있지만 친근하게 다가온 하와이! 와이키키 거리를 한참을 걸었다. 이곳저곳 버스킹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뒤섞인다. 중심가인데 대마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마 전부터 대마초가 합법화되었다고 들었다. 마치 뉴요커처럼 이곳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걷는 이들이 많다. 월마트에 들러 바나나도 사고, 몇 가지 간식거리를 들고 호텔로 달빛을 받으며 걸었다. 무작정 더 걷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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