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씨 때문에 앞으론 삼겹살집에 회식 못가는 거야?”
회사를 다니면서 채식을 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저도 회사원인지라 남일 같지 않은데요.
# 첫 직장, 첫 회식
회식 메뉴로 '삼겹살집' 대신에
'채식' 어때요?
제 첫 직장은 중소기업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소기업이라 좋았던 점도 있었어요. 회식을 하기 전 회식 담당자가 회식 메뉴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는 곳이었거든요.
제 주변 한 채식인인 지인(회사원)은
“뻔히 내가 못 먹을걸 알면서 소고기 집을 회식 장소로 잡더라니까, 00 씨는 채식하니까 된장 찌개면 됐지? 라면서 말이야, 에휴…”
라고 하더군요. 그 회사에 비교하면 그래도 좀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제가 속했던 팀 직원들과는 매일 같이 점심을 먹던 사이이다 보니 제가 채식인이란 것을 알았지만 다른 팀 직원들은 전혀 그 사실을 몰랐었어요. 굳이 제 식성이 어떤지 제가 먼저 찾아가서 알릴 필욘 없으니까요. 그런데 회식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알려지더라고요.
“봉봉 씨는 양식, 중식, 한식 중에 어떤 게 좋아요?”
회식 담당자는 아마 저 세 가지 중에 한 가지 답이면 됐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아 제가 육고기를 안 먹어서요. 고기만 아니면 되는데…"
“아…??!!”
회사에는 제가 첫 채식인이었나 보더군요. 그 날 이후로 저는 회사에서 채식인으로서 주목을 받았었어요.
회식 메뉴가 한식 뷔페로 정해졌고, 몇몇 분들이 저를 배려해 메뉴를 정했다고 지나가며 한 말씀씩 하시더라고요. 뭐, 괜찮았어요. 그런데 옆팀 팀장이 그러더라고요.
봉봉 씨가 고기를 안 먹는 바람에 우리 앞으론 회식 때 삼겹살집은 못 가겠네.
그 말을 듣자 순간 제 머릿속엔 몇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썩 듣기 괜찮은 소리는 아니군.’
‘모든 사람의 식단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니 공동체에 채식인이 있는 한 채식인을 배려한 식단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사람은 왜 이런 얘길 내 앞에서 하지?’
‘나야말로 비 채식인들 때문에 채식음식점에서 식사를 편히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육식이 공존하는 음식점에 ‘가주는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걸까?’
# 점심
나 밥에 김치만 있어도 잘 먹어...
(는 거짓말이야...ㅜ)
이번엔 점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점심식사는 팀원과의 화합을 다질 수 있는 업무 외의 소중한 시간이지요. 저는 밥 먹으면서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긴장도 풀 수 있는 시간이라 무척 좋아한답니다. 제가 채식을 하는 것이 소중한 시간에 장애물이 되는 건 원치 않아요.
그리고 필사적으로 회사 돈으로 지원되는 구내식당을 먹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구내식당의 반찬 5개 중 적어도 2~3개 이상은 육고기 반찬이 나오곤 합니다. 그럴 땐 정말 힘들죠. 밥과 나물 혹은 밥과 김치만 먹게 되는 걸 감수해야 하니까요. (물론 회사 구내식당의 김치엔 젓갈이 들어가지만, 이마저도 먹지 않으면 먹을 것이 정말 없기에 예외로 두고 먹습니다.)
밥과 김치를 먹고 있는 저를 안쓰럽게 보는 팀원에게 괜찮은 척
“괜찮아, 00 씨. 나 밥에 김치만 있어도 잘 먹어. 배만 채우면 됐지.”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습니다. 그런 날엔 집에 돌아와 저녁을 폭식하곤 합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배우자는 “봉봉아, 아무래도 도시락이라도 싸줘야겠어. 배고파서 어떻게 일을 해?”라고 말하지만, “아니야. 점심을 사비로 먹을 순 없지. 회사 돈으로 기필코 배를 채우고야 말겠어.”라며 극구 거절한답니다.
훌륭한 채식 반찬으로만 가득 채워진 구내식당 식판을 바라는 건 너무 큰 꿈일까요...?
# 채식인인 나 때문에 회식에 삼겹살집에 못 가서 힘들어하셨던 00 팀장님께…
00 팀장님, 저 사실 회식이든 점심 식사자리든 어디에서든
고기 냄새 조차 맡기 싫어요.
불편하지만 비 채식인 분들 배려해서 참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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