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사진첩에서 동생들과 콜라에 빨대 꽂아 먹는 사진을 발견했다. 엄마와 창경궁에 놀러 간 사진이었는데 다른 사진과는 달리 카메라가 아닌 콜라를 쳐다보며 먹고 있었다. 좋지도 않은 음식을 먹이고 사진을 찍었냐며 농담으로 물었다. 평소에 사주지 않고 소풍이나 놀러 갈 때만 먹는 특별한 음료인 콜라를 돌아가며 마시는 모습이 귀여워서 찍었다고 하셨다. 어릴 적 못 먹어서 인지 지금도 톡 쏘는 탄산음료를 즐겨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마신 술도 맥주보다는 소주였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향이 좋은 중국술을 좋아했다.
30살 즈음, 친한 동생의 권유로 소맥의 신세계를 만나고 차츰 맥주러버로 전향했다. 지금은 맥주의 탄산에 중독되듯 저녁마다 이 노오란 술에 갈증 한다. 하지만 맥주를 마시다 보니 아랫배와 아래턱이 두툼해지는 원치 않는 결과를 만나서 되도록이면 참고 산다. 대신 집에 탄산수를 쟁여놓고 수시로 마신다. 임신과 30개월의 모유수유동안 나를 위로해 준 음료는 탄산수였다.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다른 음료를 마실만도 한데 음용 후의 뻥 뚫리는 시원함은 탄산수만 한 게 없다.
처음 탄산수를 접한 건 대학교 3학년 프랑스 여행할 때였다. 식당에서 돈을 내고 물을 사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외국 나가면 도둑놈 천지고 코 베어가는 사기꾼 조심하라는 말이 떠오르며 물에 돈을 내는 게 말로만 듣던 사기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 홀로 여행객이 말까지 안 되니 다른 테이블에 제일 많이 보이는 물을 시켰다. 세상에, 뭐 이런 물을 돈 내고 사 먹는지 그 후로 식당에 갈 때면, 민박집에서 얻은 팁대로 'Please just water'를 말하며 수돗물로 추정되는 무료 물을 마셨다.
몇 년 후, 스페인을 여행하며 다시 만난 그 음료는 식당 가면 빠질 수 없는 메뉴가 되었다. 세상에! 이런 훌륭한 음료라니, 배 터지게 먹어도 이 음료 한잔이면 소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초록병에 담겨 병뚜껑에 냅킨을 대고 돌려서 여는 그 음료덕에 여행이 더 청량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얼마 후, 한국에서 페리에를 비롯한 탄산수가 유행을 하며 드디어 나의 워너비 음료를 카페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렇게 사악한 금액이라니! 아무리 돈 벌어 혼자 쓰며 산다지만 물 한 병에 몇천 원은 쉬운 소비는 아니었다. 차라리 그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가는 게 현명하다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생각해 보면 아메리카노나 그 음료나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지금은 국내에서 제조한 합리적 금액의 브랜드를 이용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가장 청량한 탄산수는 산펠레그리노다. 솔직히 가격이 많이 내려가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음료다. 하지만 주문하기가 주저된다. 지금도 예전 여행지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국내 탄산수에 길들여진 내가 여행에서 경험한 산펠레그리노를 못 느낄 거 같은 생각도 든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주문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한다.
아니지, 여행지의 추억이니 새로운 여행을 가서 마셔야겠다.
"자기야! 나 탄산수 마시러 유럽 가고 싶어." "수입 잘되잖아?" "가서 마시고 싶어." "왜?" "그 맛이 그대론지 궁금해." "내가 사 올게." "그건 아니지! 같이 가자." "" "내 말 듣고 있니???" "응" "우리 언제 가지?? 자기야! 자러 들어가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