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아이의 일주일 늦은 생일파티를 했다. 생일날 할머니의 칠순 잔치가 겹치면서 아침부터 "내 생일인데"를 되뇌며 불만을 표했다. 생일 전날, 이미 사촌들과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파티를 하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축하를 받았지만 자기 생일날에 할머니가 축하받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결국 일주일 후에 아이만을 위한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원하는 케이크를고르고 셋이 마주 앉아 초를 밝히고 노래 부르며 사진도 찍었다. 생일파티를 하면서 생일 선물을 다시 요구하지 않은 걸 보면 정말 '나만의 생일 축하 파티'를 원했나 보다.
결혼하고 생일을 챙기다 보니 4월이 가장 바쁜 달이다. 음력으로 챙기는 양가 어머니의 생일은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에 10일 간격으로 있다. 며칠 지나면 아가씨 생일이 있고 십여 일 후면 내 생일, 그리고 4일 뒤에 아이의 생일이 있다. 어머니들의 생일은 각각 축하한다 쳐도 아가씨, 나, 아이 셋의 생일은 한꺼번에 몰아서 케이크를 바꿔가며 축하를 하고 있다.
나만의 생일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머릿속을 파헤쳐 보니 2018년이 떠오른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신 덕에 신랑과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한 손에 포크, 한 손에 나이프를 잡는 호사를 누렸다. 아니, 음식점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우리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그 당시 가족 행사와 육아 스트레스로 상당히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고 신랑 역시 많이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외식하는 나를 위해 신랑은 모든 메뉴를 나한테 맞춰줬고 선물로 기쁨을 더해 주었다.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공감하지 않고 서로의 서운함만을 이야기했다. 양손에 창과 칼을 들고 서로를 탐색하며 한방을 노리며 마주 봤다. 결국 내 생일을 이렇게 보내게 하냐며 눈물폭탄을 던지고 사과를 받아냈다.
그날은 솔직히 다른 날과 똑같은 날이었다. 매번 자기 이야기만 하고, 듣고 공감하기보다는 내가 더 서운하다며 맞받아치고, 마지막은 어떻게든 사과를 받아내는 패턴의 연속선상 위 점 하나같은 하루였다. 내 생일은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그럴싸하지만 치졸한 핑계일 뿐이었다. 내 생일을 이렇게 보내게 한 건 신랑이 아니라 나였다. 온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날인데 싸움의 결정타로 만들어 버렸다. 나 스스로 내 생일을 무기로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생일이라는 특별함에 취해 안하무인으로 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신랑도 잘한 건 없다. 신랑 역시 조금은 담대히 넘겼더라면 좋았겠다. 한숨 대신 따뜻한 숨결을 내뱉어주는 평상심이 결여됐었다. 같이 서운하다고 힘듦을 토로하는 대신 빈말이더라도 도닥여줬으면 우리의 끝은 달랐으리라. 마지못해 사과를 하는 대신 고마움을 받는 멋진 신랑의 해피엔딩을 마주했을 거다.
하지만 우린 둘 다 미숙했고 지치고 외로웠다.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똑같이 기분 상한 상태로 손도 잡지 않고 앞뒤로 집을 향해 나란히 걸었을 거다.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적응이 된 건지, 포기가 된 건지 이제는 좀 덜 싸운다. 공감이 안되면 입을 다무는 스킬도 장착했고, 무조건 공격을 날리다 되려 당하면 멈추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변해간다. 이런 우리가 내년 내 생일을 둘만이 보낸다면 6년 전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자기야, 내년 내 생일에 우리 둘이 파티하자."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그냥 즐겁게 보내고 싶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