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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May 08. 2024

엄마, 그런 꿈꾸지 말고 나랑 오래오래 살자

20240508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아이와 함께 기도를 한다.

"하느님, 굴굴이가 꿈에 나오게 해 주세요. 굴굴이랑 굴굴이 엄마 아빠랑, 나랑 우리 엄마 아빠랑 같이 나와서 즐겁게 놀고 이야기하게 해 주세요."

굴굴이는 아이가 기르던 청개구리로 만난 지 5개월 만에 갑자기 죽었다. 그날부터 아이가 바라는 꿈은 굴굴이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굴굴이 꿈을 꾸지 못해 속상해 울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줘야겠다는 마음에 엄마 꿈에 굴굴이가 나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아이는 어떤 꿈이었는지 물었다.

"엄청 밝고 따뜻하고 맑은 연못에서 많은 개구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 굴굴이는 천국에 간 게 틀림없어."

어떻게 천국인걸 아느냐는 질문에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죽은 사람이 천국에서 편안히 지내면 꿈에서 알 수 있다'는 말을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분명 그곳은 천국이고 굴굴이는 행복해 보인다는 말에 아이는 잠깐 웃더니 자기 꿈이 아님에 더 속상해했다.




외할머니는 5살에 돌아가셨다.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기억이 없지만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로 내가 받은 사랑은 너무 생생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즈음으로 기억한다. 꿈에 할머니가 나오셔서 기도해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꿈에 나타난 할머니는 하얀 옷을 입고 빛나고 계셨다. 외할머니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였던 내 꿈에 나타나 천국에 계시다고 알려주신 거 같아서 기쁜 마음에 엄마한테 말씀드렸다. 그 당시 진짜로 꾼 건지 그런 꿈을 꾸면 좋겠다는 생각에 착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5년 정도의 시간을 연옥에 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좀 슬프긴 하다.

몇 해 전, 어느 신부님의 조카딸이 많이 아팠다는 이야기와 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조카를 위해 기도를 하던 중, 꿈에 돌아가신 모친이 나오셨단다. 신부님은 모친께 "엄마, 엄마가 사랑하는 큰 딸 있잖아. 엄마딸의 딸이 많이 아파. 엄마가 지켜줘"라고 말씀하셨는데 꿈에서 모친께서는 신부님의 눈을 피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결국 그 조카딸은 세상을 먼저 떠났다. 하느님을 믿는 신부님도 꿈에서는 엄마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나 보다.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나는 이야기는 엄마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엄마랑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죽은 사람이 그렇게 꿈에 나타났데"로 시작한 이야기는 엄마의 꿈이야기로 흘러갔다. 몇 년 전, 엄마의 꿈에도 젊은 나이에 죽은 사촌형제 둘이 나왔단다. 둘 다 까만 옷을 입고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엄마가 그 뒤를 따라가고 계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눈앞이 까매지며 눈물이 날 거 같았지만, "엄마 지금 살아있는데 개꿈이네"하며 넘겼다. 그 꿈은 그렇게 끝이 난 게 아니었다.

사촌형제들을 따라서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산길을 가던 엄마가 갑자기 말씀을 하셨단다. "얘들아, 나 우리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돌봐야 해. 먼저 가 있어." 하시고는 그 길로 뒤돌아 내려오셨다고 한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언젠가는 엄마가 고인이 나오는 꿈을 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런 꿈을 꾸면 꼭 알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정말로 꿈의 결과를 믿게 될 거 같아서 입 밖으로 내어놓을 수가 없었다.


엄마,
그런 꿈꾸지 말고 나랑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
사랑해요.
 


#한달매일쓰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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