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부딪혀 볼수록 열리는 문들
생각해 보면 어학연수도 한번도 안해본 내가 미국 학생들과 같이 수업 듣는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역시 나이가 어릴수록 겁도 없고 다른 생각 없이 무조건 부딪혀 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지금 미국 유학을 간다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행동을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미국애들과 수업을 어떻게 듣나 고민하다가 계속 미국 유학을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때는 ‘한 번 해보지 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많은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공항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혼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탔던 그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설레고, 한편으로는 두려운,정말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느낌이었지만, 그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던 그 때의 나.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도 못했던 내가 맨 땅에 헤딩하듯이 미국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서 제일 열정이 있었던 때는 그 떄였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 제일 용감했던 때였다. 왜 꼭 지나고 나야 이런 생각이 들까?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한국으로 그냥 돌아가고 싶었지만, 여기까지왔는데 졸업은 해야된다는 생각을 갖고 버텨낸 것 같다.
미국 대학을 다니니까 그 동안 정말 내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신기하게도 각 나라마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다. 일본 친구들은 학교 생활할 때 많이 도움을 줬고, 중국 친구들은 뭔가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세다고 느껴졌다. 그 밖에도 인도, 유럽, 태국, 멕시코 등등의 국적을 가진 친구들끼리는 서로 타지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인지 왠지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는 게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얘기할 때, 내가 개떡같이 영어로 말해도 그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어줬다.
신기한 건 되지도 않는 영어로 무작정 말하면서 미국 생활을 하니 그 때 영어가 가장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용감하다고 느끼는 일은, 내가 미국 학교 다닐 때 들고싶었던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학교 수업이 끝나고 그 첫 모임을 무작정 찾아갔던 일이다. 아직도 그 순간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첫 모임에 내가 좀 늦게 갔는데, 첫 모임이 벌써 시작한 강의실의 문을 내가 열고 들어가니까 나를 쳐다보던 그 수많은 미국 학생들의 파란 눈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모임에는 아시아인이 나밖에 없어서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파란 눈동자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나도 그 때의 시간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립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