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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Aug 09. 2019

맘껏 사랑하고 훌훌 떠나리

모성애,그 벅차지만 버거운 사랑

메니에르입니다.



4년 전, 설날 아침이었다.

시댁에서 아침식사를 하다 이상한 기운을 느낀 나는, 잠시 자리를 옮기려 일어났다가 그대로 엎어졌다. 극심한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로 기어서 화장실까지 갔다. 그러고는 한 시간 내내 변기통을 부여잡고 토해댔다. 조금만 움직여도 세상이 돌아 버리는 통에 머리를 단 1센티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차가운 욕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분수처럼 토해댔다.


죽을 만큼 괴로운 어지러움으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토했다. 3일 만에 4킬로가 빠졌다.

그때가 막내가 2살이었던 해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고 병원을 찾았다.


"메니에르입니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기는 난치병입니다. 완치는 어렵죠, 평생 관리해야 할 겁니다"


심각한 얼굴을 한 남편과는 달리 난

"와, 이름이 이쁘네요"라는 오줄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웃자고 한 소리에 미동조차 없는 남편을 보니 꽤나 심각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름이 참 세련됐어.. 훗..


그렇게 나는 2015년 3월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지병이 생겼다.  



2년간 투병을 했다.

이삼일에 한 번씩은 급성 어지러움으로 하루 종일 누워서 지냈다. 아이들은 거의 방치됐다. 길을 걸으면 항상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땅이 푹신푹신했다. 청력이 감퇴되는 부작용을 겪었다. 막아보고자 고막에 수도 없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고, 급기야는 주사 부작용으로 고막이 녹아버렸다.


막내를 낳으러 가기 전날까지 밤을 새워 번역을 하고, 조리원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노트북을 켤 정도로 통번역사로 왕성히 활동했던 나였지만, 일을 잠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괜찮아져 통역을 나갔다가 의뢰인을 앞에 두고 옆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청력은 점점 떨어졌고, 날고 기던 통역일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난 처음으로 아이들을 두고 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고, 저것들 두고 어미가 어찌 눈을 감누~"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이 대사가 가슴 절절히 다가왔다.


'아... 저 똥강아지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눈을 감지?'



무시무시한 모성애의 힘


내가 처음 모성애라는 것을 진하게 느낀 건 조리원으로 옮긴 후 수유실 창 밖으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이다. 3일 내내 진통에 시달리다 응급 수술로 첫 아이를 낳은 나는 일주일이 지나 조리원에 들어갈 때쯤에야 제대로 아이를 안아볼 수 있는 힘이 생겼더랬다.


"수유하러 오세요~"


수유실 담당 간호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뒤뚱뒤뚱 수유실로 향한 나는, 창 너머 나란히 누워있는 아기들 사이로 내 아들을 발견했다.


"두상 하나는 끝내주는구먼"


어때요, 그림 같은 두상이지요?



자연분만을 못했다는 괜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나는 온전한 상태로 세상 밖으로 나온 아들내미 두상에 감탄하며 스스로를 위안했었더랬다. (자연분만을 하면 산도를 지나면서 아이 머리가 눌려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창문에 머리를 눌러 박고는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이가 응애 울기 시작했고, 난 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경험을 했다. 가슴이 찌릿찌릿하며 팽팽하게 부어오르더니 젖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젖이 도는 거라고 했다)


그 이후로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파블로의 개처럼 가슴이 팽팽이 부어오르며 찌릿찌릿 젖이 돌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난 모성애라는 무시무시한 본능에 조건반사를 하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낳고, 난 간헐적으로 악몽을 꿨다.

아이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 꿈,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 아이가 다치는 꿈..

소스라치게 놀라 자고 있던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콧구멍에 내 귀를 가져다 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둘째를 낳고 나서는 불이 나는 꿈을 그렇게 꿨다.

두 아이를 양쪽에 하나씩 끼고 번개처럼 계단을 뛰어내려 탈출하는 꿈. 꿈에선 계단 10개 정도는 날아가듯 뛰어넘었더랬다.


아이가 셋이 되자 걱정은 태산처럼 많아졌다.


아.. 불나면 어떡하지? 셋을 어떻게 데리고 탈출하지?


남편이 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면, 난 아기띠를 머리맡에 두고 잤다. 7살, 5살, 1살짜리를 다 옆에 끼고 선잠을 이뤘다. 휴대폰과 지갑은 작은 가방에 넣어 아기띠 옆에 잘 보이게 두었다. 여차하면 둘은 옆에 끼고 막내는 고 그렇게 탈출할 작정이었다.


셋째를 낳을 때까지,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옷을 꽁꽁 숨겨놓으려 한 이유가 있었다. 아기띠가 없는 그 시절, 아이가 셋이었다면 선녀는 꼼짝없이 이 땅에서 살았어야 했을 거다. 나무꾼의 계획대로..


한참 뒤에 안 일이었지만, 남편도 그렇게 악몽을 꿨다고 했다.

꿈이라고는 꿔 본 적이 없던 남편이었지만, 첫 아이가 생기고는 새벽에 한 번씩 헉 소리를 내며 일어났었다고 했다.


이게 다 자식이 주는 기쁨과 행복에 비례해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기 때문이 아닐까..


때때로 뉴스에 가슴 아픈 소식이 등장하면, 난 심장이 내려앉는다. 내 아이와 또래라는 이유만으로 순간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눈물이 쏟아진다.  그 부모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 전해진다.

내 아이라고 상상이라도 시작할라치면 심장은 조여지고, 숨을 쉴 수가 없다.


난 이 감정이 항상 버겁다.

신은 왜 이렇게 자식에 대해 절절하게 만드신 거야..




자식 사랑이 남다르셨던 우리엄마는 다음 생에선 수녀가 될거라셨다.

언제나 따뜻하고 다정하셨다. 많이 안아주셨고 많이 웃어주셨던 우리 엄마.

걱정 근심도 없어 보였고, 참 행복해 보였다.


"엄만 다음 생에도 아빠랑 결혼할 거예요?"

"난 다음 생에는 결혼 안 하고 수녀로 살 거야~"

 

모두가 잠시 뻘쭘해졌던 그날의 기억...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항상 골방에서 그렇게 기도를 하셨다.


습자지 같던 성경책 여백에 빽빽이 써 놓은 기도들, 그 때문에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너덜거리던 엄마의 성경책. 우리 삼 남매의 이름이 군데군데 쓰여 있었다.

그땐 생각했었다. 뭘 그렇게 비시는 걸까.. 저렇게 손 아프게 적어 내려갈 만큼 간절한 걸까.. 걱정도 많으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우리를 사랑하는 만큼 그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셨던 것 같다.  

매일매일 자식 걱정에 맘 편한 날이 없으셨던 거다. 그렇게 신앙에 기대어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빼곡한 기도로 간절히 비셨을 테다.  




아이를 낳기 전엔 그 누구도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감정을 가늠할 수 없다.

아이를 참 좋아하던 나였다. 첫 조카가 태어나고는, 퇴근 후 한 시간 거리의 병원에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었던 나였다.


"애를 낳으면 이런 기분일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아이를 낳고 나니 결코 다른 감정임을 알게 됐다.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신비로운 감정이다.


이 감정이, 이 사랑이 난 참 버겁다.  

그 사랑이 결국은 항상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험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대고 간섭하고 구속하게 된다.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하고 정신력이 약한 나는 가끔 이를 극복해내기가 힘들다.

그렇게 모성애에 잠식되어 나 자체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불안한 마음에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래..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수녀가 될 거라고 하셨나 싶다. (정작 교회를 다니시면서 말이다, 그저 결혼을 안 할 거라는 얘기셨고, 자식을 낳아 사랑하는 건 이 생에서만 원 없이 하시겠다는 얘기 셨을 테다. )


드세요 이승에서의 기억을 지워줍니다.
망각의 차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도깨비를 보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죽음을 맞이한 망자들에게 "망각의 차"를 권하며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드세요, 이승에서의 기억을 지워줍니다."

"안 마시면 어떻게 되나요?

"안 마신 걸 내내 후회하겠지요"


신랑에게 물었다.


"자기는 마실 거야?"

"당연히 안 마시지, 죽어서도 다 기억해야지, 애들도 당신도.. 당신은?"


"난 마실 건데? 다 잊을 거야. 

죽어서까지 저 똥강아지들 걱정하면서 어떻게 살아. 그냥 다 잊고 훌훌 천국 갈 거야"


이기적인 엄마라고 했다.

글세,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려고 한다.  그러곤 날 잠식했던 모성애로부터 벗어날 거다. 그렇게 훌훌 털고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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