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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Nov 06. 2019

괜한데 힘 빼다 사람 잡을 뻔 한 시절

소탐대실(小貪大失) 마세요


가슴 시린 모성애로 가득했던 그 시절.

첫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입성한 그날, 기대 가득,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아이의 맘마를 준비하던 그날 아침. 

내 가슴에 가차 없이 메다 꽂혀진 한 마디가 있었다. 


"고만 짜라, 마, 젖도 하나도 안 불었구마는.."


아직도 귓가에 쨍하게 울리는, 내 가슴에 탁 내리 꽂히는 어머님의 그 한마디는 아직도 나를 울컥하게 한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 이틀 만에 뭐 그렇게 모유가 많이 나올 거라고, 아침부터 젖꼭지가 부르트도록 유축기를 돌려댔을까..

한 시간 내내 짜도 조그마한 젖병에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조리원 복도를 걸어 수유실로 향했던 그 시절, 나의 관심사는 오직  "오늘은 몇 cc"였다.




지금도 다를 바는 없겠지만, 내가 첫아이를 낳을 당시인 13년 전엔 "완모" 붐이 일었었다. 


매일 아침  

"몇 cc 짜셨어요?"

로 시작되는 아침인사는 산모들이 얼마나 모유에 집착했는지 보여줬다. 


아침 수유 시간, 가득 찬 젖병을 두 세병씩 들고 의기양양하게 나오는 엄마를 보면, 그렇게 기가 죽었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이쁜 산모도, 똑똑한 산모도, 날씬한 산모도 다 필요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모유량이 많은 산모야 말로 선망의 대상이 됐다. 




사실 난 뱃속에 아이가 생기자마자 육아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샀다. 그러곤 틈날 때마다 봤다. 

아이를 어떻게 씻겨야 하는지, 모유수유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유축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만삭이 되면서는 이미 육아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하지만 내 계획은 진통이 오는 그 순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예정일을 보름이나 지났고, 뱃속의 아이는 이미 3.5킬로를 넘어서고 있었다. 

유도분만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촉진제를 맞았고, 이틀을 꼬박 진통했다. 자궁경부는 닫힐 대로 닫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진통은 더 세져 아이가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난 당황했다. 

라마르 호흡도 이미 시뮬레이션이 끝났고,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도 다 터득했고,  아이가 나오면 배 위에 올려놓은 아이에게 어떻게 인사를 할지도 다 정해놓은 마당에 꼼짝없이 혼수상태로 출산을 하게 된 것이다. 





응급수술로 출산을 하게 된 나는 기대만큼 모유량이 많지 않았다. 책대로,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유보다 눈물이 더 많이 나오던 날도 있었다. 

가뜩이나 안 나와서 죽겠는데 아이를 보러 가끔 들르신 어머니는 툭하면 그러셨다. 


"고마 짜라 마, 나올 것도 없어 뵈는구먼.."




우리 집 세 아이 중 첫째는 1년 반 동안 모유로 키웠고, 둘째와 셋째는 오롯이 집중하기 힘들었던 터라 자의 반, 상황반 분유로 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완모로 키운 첫째는 잔병 그 자체, 나머지 둘은 객관적으로 더 건강하게 자랐다. 

아직 더 키워봐야 알겠지만, 살아보니, 또 키워보니 항상 깨닫는 것이 있다. 


"정답은 없다"


원래 약했던 아이라 모유로 키웠으니 그나마 덜 아파서 잔병치레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태생적으로 건강하니 분유를 먹어도 크게 아프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충분히 나오면 완모하고, 잘 안 나오면 분유를 먹이면 될 일이다. 


그냥 엄마 편한 대로 하면 될 일이었는데, 그렇게 엄마의 행복을 기본 전제로 한 육아를 했어야 했다. 

 

어찌 됐던, 엄마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43kg까지 살이 빠져가며 모유에 집착했던 그 시기는 내 인생 가장 힘에 부쳤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살 쭉쭉 빠져가며 유축기를 내내 돌려대고 있는 며느리에게 


"고마 짜라 마" 

했던 한 마디는 모유에 집착하는 날 편하게 해 주기 위한 경상도 시어머니의 투박한  배려가 아니셨을까..




그렇게 정신없이 응급 수술로 출산한 첫째는 유독 태열이 심했다. 

보습을 해라, 하루 네 번 탕 목욕을 시켜라, 녹차우린 물이 좋다, 루이보스가 좋다. 

참 많은 정보들이 있었다. 

그 당시는 유독 스테로이드 포비아가 심했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들은 약 쓰는 걸 참 많이도 두려워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매일 물을 끓였다. 수돗물을 바로 쓰는 건 좋지 않다고 해서 정수한 물을 받아 매일 솥에다 끓였다. 그리고 녹차를 우려내기도 하고, 루이보스를 우려내기도 했다. 그런 다음 그걸 또 식혔다. 

이미 땀범벅이 되어버린 상태로 어설픈 솜씨로 아이를 안고 물에 담갔다. 이 짓을 매일 네 번씩 했다. 


"그냥 약 바르면 안 돼?"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땀범벅이 되어있는 나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돌아보면, 내 생각해서 해줬을 말일 텐데도 그저 무심하고 무식한 소리로만 들렸다. 

그래서 확 쏘아붙였다. 


"부작용이 얼마나 심한지 알아???"




아이는 손싸개를 한 채로 내내 비벼댔고 깊은 잠도 자지 못하고 내내 보챘다. 난 나대로 잠을 설쳤다. 

아이도 나도 하루 종일 좀비 상태였다. 


그러다 상태가 점점 심해진 아이의 얼굴엔 두꺼운 딱지들이 앉기 시작했다. 짓물렀고, 피도 났다. 난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두 달 만에 난 떨리는 마음으로 소아과를 찾았다. 

간단한 진료가 끝난 뒤 의사 선생님은 작은 연고 하나를 처방해 주셨다. 


"하루 세 번 발라주세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렇게 죄책감 가득 안고, 독약이라도 바르는 심정으로 눈물의 연고를 발랐더랬다. 

한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낮잠을 자고 난 아이의 얼굴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진정되어 있었다. 


허무했다. 내가 뭔 고생을 한 거야? 


처음으로 만난 뽀얀 피부의 아이가 신기해 난 그날 처음으로 아이의 사진을 찍어 싸이월드에 올렸다. 그렇게 아이 엄마들은 다 하는 아이 사진 도배질을 시작했다. 




아이를 처음 키우면서 모르는 것 투성이다 보니, 온갖 것이 두렵고 생소하다. 

책대로 해야 할 것 같고, 책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남들 다 잘하는 완모를 왜 못하는 건가 싶고, 그렇게 죄책감도 들고, 자괴감도 든다. 

우울해지고, 남편에게 짜증내고, 아이가 미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날고 긴다는 전문가들의 말도 정답은 아니다. 

감히 말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정답은 없다. 




몇 년 전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지나친 짜증과 분노로 통제가 안 되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이를 위해 비누까지 만들어 쓰며 쉴 틈이 없었던 그 엄마는, 정작 지쳐버린 몸과 마음으로 인해 본인의 분노와 피로를 아이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냥 편하게 나 좋은 대로, 나 행복한 대로 키우면 그만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진리이다. 

괜한 집착은 과감히 내려놓아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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