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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밍 Jun 09. 2019

스킨십의 미학

우린 모두 애정결핍이다.

"엄마 안아줘요~"


겨드랑이에 털이 날랑말랑 할 정도로 커버린 아들이 나를 보며 안아줘라는 말을 한다.


"익스큐즈 미?"

장난스레 놀란 척을 하며 쳐다보면 본인도 머쓱한지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뽀뽀도 해주랴?"

 한 술 더 떠 입술을 쭉 내밀며 한 마디 더 보탰다.

"아.. 그건 됐고요"


엄마의 부담스러운 뽀뽀는 정중히 거절을 했지만, 남성호르몬 풀풀 풍기며 내 키를 넘어설 듯 커버린 이 사춘기 소년도 문득문득 누군가의 품이 그리운 걸 보면, 살과 살의 부딪힘이 주는 위로가 꽤나 크다는 걸 느낀다.



 

2년 전, 미국에서 1년 남짓 생활하게 된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참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기억은 눈만 마주치면 "Hi~" 하던 사람들과, 남녀 불문 악수나 허그로 인사를 건네는 행위였다.


내가 처음 악수로 낯선 이의 손을 잡은 게 그때였다.

둘째 아이 학교 친구 엄마 AMY 였는데, 학교 교실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손을 내밀었었다.


"Hi! I`m Amy, nice to meet you!"


내민 손을 거절할 수 없어 어색하게 맞잡은 그때가 나의 첫 악수였다.

170은 훌쩍 넘어 보이는 파란 눈의 백인 여성은 생각보다 작은 손을 갖고 있었고, 유난히 따뜻했다.

내 손을 꽉 잡아 주는 그녀의 잠깐의 행동은 이방인인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저 일상처럼 건네는 Nice to meet you! 였겠지만, 나에겐 세상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를 만나 반갑다고 해주다니...


가벼운 인사 후 그렇게 헤어졌지만, 그녀의 따뜻한 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꽉 잡아준 그녀의 손에서 느낀 느낌적인 진심 때문이었을까, 난 그날 이후로 AMY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고, 만날 때마다 가볍게 허그를 해주는 행동은 미국을 미국인을 좋아하게까지 만들어버렸다.  


귀국해 일 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가끔 메일로 그녀에게 관심과 애정을 전하는 중이다.




여행지에서 흔들리는 여객선을 타고 내릴 때 물에 빠질까 손을 잡아주던 이름 모르는 선원 아저씨에게서, 학창 시절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던 옆반 선생님에게서, 혹은 첫 출석한 교회에서 반갑게 맞아주며 가볍게 손을 잡아주던 처음 본 집사님에게서 혹시 괜한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가?


프리허그(Free Hug)


생판 모르는 사람이 그저 말없이 안아주는 프리허그. 아무 말 없이 그저 안아주는 이 행동에 사람들은 큰 위로를 받는다. 어떤 이들은 왈칵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팔을 가득 벌린 그에게 다가가면서 이미 눈물이 터져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 경험이 우리 모두 있을 것이다.  


우린 다 사람의 애정을 갈구한다.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적게, 때론 많게 애정이 결핍되어 있다.


삶에 지쳐있을 때, 고민으로 가득할 때, 말로 할 수 없을 때 그저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에, 한 품 가득 안아주는 포옹에 말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는다.



여보 안아주세요


결혼 후 세월이 지나면서 우린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느라, 일에 집중하느라, 그리고 이젠 조금은 무뎌진 상대방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굳이 간질거리는 표현도, 스킨십도 하지 않게 된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만져주지 않아도 이해해주겠지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애정은 조금씩 결핍되어 간다. 다시 예전처럼 다가가려니 어색하다.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우스게 소리라지만, 많은 부부들이 장난반 진담 반으로 그런 말을 내뱉을 때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불타는 사랑을 하라는 게 아니다. 그저 토닥여주고 안아주라는 거다.


처음 보는 사람의 포옹에도, 악수에도 때론 큰 위로를 받는 게 사람이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화가 나는 순간이 있다. 답답하고 슬픈 순간도 있다.

누구의 조언도, 충고도 소용없는 그런 순간 사랑하는 가족의 따뜻한 포옹에 혹시 가슴 녹아내린 기억은 없는지..


사람 사이의 애정은 만짐(스킨십)에서 나온다.


인간은 따뜻한 신체 접촉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다.


"만짐"은 말로 전할 수 없는 따뜻함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론 말보다 진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스킨십 총량의 법칙이라고 아세요?"
몇 해전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듣게 된 말이다. "사람은 채워져야 할 스킨십의 총량이 있대요, 그게 채워지지 않으면 항상 애정결핍 같은 상태가 된다네요"


가득 채워져야 할 스킨십의 총량을 서로가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품에 안고 있는 아이를 잠시 내려놓고, 남편을 아내를 한번 안아주는 건 어떨까..


어쩜 지금은 어른인 우리가 애착형성이 절실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끼리 이러는 게 아니라니, 가족이니까 이러는 거다.


따뜻한 만짐이 가득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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