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의 ‘시’ 자만 들어도 날이 돋는가.. 날 세우지 마라
결혼생활의 복병
여성들에게 있어 결혼생활 최대의 난제는 고부갈등이 아닐까 싶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나,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해결이 참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시어머니는 새로 들어온 젊은 며느리의 당돌함이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연륜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잘 가르쳐보고 싶은 맘과는 달리 다른 가정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남의 집 딸'은 생각보다 고분고분하지 않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행복한 신혼의 단꿈을 꾸던 며느리는 물에 젖은 휴지처럼 슬금슬금 내 결혼생활에 스며들어오는 남편의 어머니가 불편하다.
서로 조심조심 예의를 지키며 간을 보던 시기가 끝이 나면, 시어머니는 궁금해만 하던 아들 며느리의 생활에 본격 관여를 하신다.
“주말에는 집에 와서 밥을 먹는 게 어떻겠니?”
“아침은 뭐 해 먹니? 반찬 좀 해다 주랴?”
“외식 너무 자주 하지 말고 해 먹어라”
생각해보면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다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긴 하다.
결혼하면서 가정을 꾸려나간 아들이 보고 싶으니, 아들이 쉬는 주말을 이용해 밥 한 끼 먹이고 싶은 마음이실 테고, 이제 당신이 아침을 챙겨줄 수 없는데 살림이 처음인 젊은 아이들 둘이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괜스레 걱정이 되실 테고, 아껴서 집도 사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할 텐데 외식을 자주 해 저축을 잘하지 못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마음의 소리가 불쑥 입 밖으로 나오셨을 테다.
사실 친정 엄마가 같은 소리를 하셨다면,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고 안심시켜 드리면서, 유독 우리는 시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민감하고 날이 서 있다.
“왜 자꾸 주말에 오라 신대?”
“당신 아침 굶기는 거 아닌가 걱정이 태산이신가 보네”
“나 참.. 외식을 하는 것도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하나?”
“당신이 어머님한테 말씀 좀 드려~”
“밥 한 끼 먹고 오지 뭐, 엄마가 우리 보고 싶으신가 보네”
“난 우리끼리 보내고 싶다고, 그리고 나 좀 불편해”
“난 지난주에 장인어른 장모님 뵈러 갔었잖아, 나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야”
“불편하면 가지 마~ 누가 억지로 가자 했어?”
“그런 말이 아니잖아!”
자식이 그저 보고 싶으셨던, 새 며느리가 궁금했던, 그래서 어떤 말로 안부를 물어야 할까 고심 고심하시다 우리가 늘 먹는 “밥”으로 대화를 시작하셨던 어머니는, 늘 당신의 의도와 달리 아들 며느리 부부싸움의 단골 소재가 되어 버린다. 안타까운 일이다.
탐색전
사실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되면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소위 간을 본다.
시어머니는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 아이가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어느 정도 우리 집에 융화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요즘 며느리들이 당돌하다던데..’
‘요즘 애들은 시댁의 ‘시’ 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친다던데’
라며 혹시 우리 며느리가 그런 아이는 아닌지, 그렇다면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 하는 건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며느리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은 적절히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착한 며느리 모드로 나가야 할지, 아님 우습게 보이지 않기 위해 할 말 하는 며느리 모드로 나가야 할지, 시어머니 못지않게 철저히 시어른들의 분위기를 살피게 된다.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사실 며느리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
이렇다 보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상하리만큼 행간이 선명히 읽힌다.
“아침은 먹었니?”
(너 우리 아들 아침은 챙겨주고 있지? 우리 아들 매일 아침 먹는 아이다. 꼭 빼먹지 않고 챙겨줘라)
“잘 지내니? 쉬는 날인데 뭐하니?”
(휴일인데 집에 있지? 할 일 없으면 집에 건너와서 같이 밥 먹고 저녁까지 있다 가라, 우리 아들 얼굴 보고 싶구나)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가니?”
(나도 아들 며느리랑 여행 좀 가보자, 누구 집 며느리는 이번에 다 같이 어른들 모시고 제주도 갔다 왔다 더라)
사실 그런 의미로 물으시는 경우도 많긴 하다.
직접적으로 묻기 힘드시니 안부를 묻는 것을 빙자해 이것저것 확인하고 싶으신 마음이실 테고, 새 식구도 들였으니 다 같이 다복하게 시끌 번쩍 여행도 같이 가고 싶으실 테다.
하지만, 굳이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신 그 마음까지 애써 파악하려는 수고는 하지 말기 바란다.
설령 이런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 “밥은 먹었니?” 일지라도..
들리지 않는 행간은 무시해라.
말의 의미를 굳이 확대 해석하고 속뜻을 읽으려 노력하지 마라.
서로 간에 이처럼 피곤한 일이 없다.
이 대화가 남편에게까지 확장되면 우린 또다시 전쟁이다.
날을 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편안하게 답하면 된다.
“아니요, 오늘은 못 먹었어요”
“아이고. 걔는 매일 아침 먹는 앤 데..”
여지없이 드러나는 어머님의 본심.
하지만 발끈할 필요 없다. 그저 편안히 대답하면 된다.
“그죠~ 저도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둘 다 늦잠 자서요, 점심 잘 먹으면 되죠 뭐”
“그래 점심은 잘 챙겨 먹어라”
“네~”
“휴일인데 뭐하니?”
“둘 다 오늘은 집에서 쉬려고요”
“그럼 건너오지 그러니, 같이 밥이라도 먹자꾸나”
“죄송해요 어머니, 이번 주는 너무 피곤해서 좀 쉬고 다음에 들를게요”
그냥 이거면 되지 않을까?
물론 어른들이 서운해하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그분들이 감당할 몫이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서운해하시는 그 마음까지도 불편하긴 하다. 그렇다고 서운한 감정도 내보이시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을까?
모든 인간관계는 좋았다가 서운했다가, 또 풀렸다가 얽혔다가 한다.
너무 하나하나의 감정에 충실히 반응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날을 잔뜩 세우고 남편에게 살 붙여 투덜거릴 필요도 없다.
괜한 부부싸움으로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이다.
우린 사실 시댁에 알레르기가 있다.
뭐든 그쪽에서 나오는 얘기에는 일단 방어벽을 치고 본다.
그렇다 보니,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그저 일상적인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예민하고 방어적으로 나오는 며느리가 서운하고 괘씸하다. 그 싸늘한 기운은 다이렉트로 며느리에게 전달되고, 며느리는 불편해진다. 그렇게 남편에게 또 한마디 던진다.
악순환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그저 편안하고 단순하게 대해라.
무리할 것도, 일부러 무시할 것도 없다. 그저 내 모습 그대로...
그 과정에서 서운해하시면 서운해하시는 데로, 예뻐해 주시면 예뻐해 주시는대로 나를 보여주면 된다.
뼛속까지 '착한 며느리'가 될 자신이 없다면,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하지 마라.
내 가식으로 주변이 힘들어진다.
우린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어 한다. 착하지 않으면서 착한 며느리, 좋은 며느리로 보이고 싶어 한다.
모든 갈등이 여기서 시작된다.
나쁜 며느리는 되고 싶지 않으니 거절은 못하겠고, 그러다 보니 짜증 나고 힘에 부치고, 힘들어지니 남편에게 쏘아대고, 남편과는 오늘도 또 싸우고, 그렇게 매주 주말을 망친다.
모든 것을 만족시켜 드릴 수는 없다. 너무 완벽한 며느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
할 수 있는 만큼 예의를 갖춰 대하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그냥 말씀드리면 된다.
내가 못 하는 건 못 하겠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제발 우리 입으로 차분히 얘기하자. 그러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 알아가고, 이해해가고,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이 관계가 자리를 잡아가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