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잘해야 한다? 아니, 남편은 빠져야 한다.
오늘도 남편 찬스
“여보, 이번 주에 어머님이 우리 왔으면 하시던데.. 자기가 못 간다고 얘기 좀 해주면 안 돼?”
“자기야, 이번 명절에는 당일 날 아침에 내려간다고 어머님한테 말씀 좀 드려줘~”
“여보, 이번 주에는 친정부모님이랑 식사하게 돼서 못 찾아뵙는다고 말씀 좀 드려주면 안 돼?”
“여보, 나 배가 많이 뭉치는데, 이번 여행은 빠지면 안 될까? 말씀 좀 드려줘”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 시댁과의 인연도 어언 14년.
서러운 일도 많았고, 오해도 많았고, 그로 인해 남편과 다툼도 참 많았다.
그 시간들을 겪으면서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고부관계에서 남편이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해요”라고 말하는 그 숱한 부부 전문가들의 말이 다 엉터리라는 것이다.
열이면 열, 남편이 뭔가를 하는 순간 오해는 깊어졌다.
그들이 말하는 "중간 역할 잘하는 이상적인 남편"은 없다고 봐야 하기에..
남편이 잘해야 하는 것이라면 단연코,
“두 여자 사이에서 철저히 빠져줘야 한다”
는 것이다.
사실 직접 대면하기 어색하고 어려운 마음에 우리는 항상 남편을 앞세운다.
하지만, 서로 존중하는 건강한 고부관계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면 나 스스로 직접 대면해야 한다.
남편을 빼라. 고부의 이슈는 '고부'가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
‘중간 역할을 잘하라’ 면서 권하는 방법이라는 게, 아내 앞에서는 아내 편을, 엄마 앞에서는 엄마 편을 들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각자의 장점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남편이 역할을 잘해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단연코 잠깐 평화로울 뿐이다.
같은 문제는 동일한 상황에서 또 발생한다. 남편은 이때 같은 방법으로 또다시 중재를 할 것이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할수록 두 여자가 쏟아놓는 불평불만, 깊어가는 오해와 반목에 지쳐갈 것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중간 역할을 놓아버릴 테고, 관계는 더욱 악화될테다. 셋 모두에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해가 디폴트로 깔려있는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관계 자체가 일단 오해가 유발되는 관계이다.
그래서 한 다리 더 거치는 순간 오해는 증폭된다.
아들이 며느리를 칭찬하면 ‘지 마누라 잘 보이게 하려고 참 애쓰네.’.로 보일 것이며, ‘우리 엄마 좋은 사람이야 네가 이해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는 “그래서 내가 잘못한 거라고?”라고 쏘아붙이게 된다.
어쩔 수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한 남자를 통해 만난 두 여인의 숙명이랄까..
해서 둘은 서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누가 개입해선 안된다.
결혼 초, 나 역시 어머님이 어려웠다.
특히 뭔가를 거절해야 할 일이 있을 때의 난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괜히 얼굴 붉힐까 걱정이기도 했고, 서운해하시는 그 기운을 다 받아낼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던 게 항상 '남편 찬스'였다.
황금 같은 주말에 시댁에 내려오라시는 시어머니의 전화에 선뜻 답을 못했다. 남편 일정을 물어본다는 핑계로 일단 전화를 끊고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머님이 이번 주말에 오라시는데, 그냥 못 간다고 얘기해주면 안 될까? 나 너무 피곤하고, 이번 주는 좀 쉬고 싶은데, 자기는 아들이니까 거절해도 이해해 주시잖아~”
“당신이 그냥 말씀드리지?”
“거절하면 서운해하시잖아, 그러면 한 마디 하실 거고, 난 사실 좀 불편하기도 하고..”
퇴근한 남편은 내 요청에 바로 시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번 주에 못 가요”
“무슨 일 있니?”
“아니, 그냥.. 담에 갈게요”
“왜, 걔가 가기 싫다니?”
여기서부터 오해가 시작됐다. 일은 내 생각보다 훨씬 커졌다.
“그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
“뭘? 못 간다고 하라며?”
“그걸 그냥 못 간다고만 하면 어떻게 해! 어머님 오해하시잖아”
“뭐가 오해야, 쉬고 싶어서 못 간다고 해달라며, 그래서 못 간다고 대신 말해준건데 뭐가 문제야”
“그게 아니잖아”
후회막급이다. 갈등은 또 이렇게 생겨난다.
그렇게 나는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남편을 조종하는 밉상 며느리가 됐다.
남편에게 기대하지 마라.
고부관계에 있어서 그들은 우리만큼 조심해주지도, 배려해주지도 않는다.
안타깝게도 우리 생각만큼 섬세하지도, 자상하지도 않다. 말을 전하는 데 있어서는 더 그렇다.
남편을 중간에 세우는 순간, 고부관계는 결코 내가 의도한 대로,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도대체 뭘 기대하는가.. 내 생각은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다.
그냥 말씀드려라.
내 생각대로, 내가 생각한 의도대로, 그저 정중히 거절하면 된다.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아들 입으로 거절당하면 오히려 더 서운하시고 화가 나실 수도 있다. 뭔가 그동안 작당모의를 한 것 같지 않을까? 안 가고 싶다면, 못 간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진심을 담아 거절해라.
어른들은 당연히 서운해하실 테다. 그렇다고 “피곤함을 무릅쓰고라도 내 집에 꼭 와! 며느리가 오라면 와야지!”라고 억지 부리시는 이상한 부모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서운한 티를 내신다고 해서 불편해하지 마라. 그 생각에 사로잡혀 내 감정을 소비할 필요도 없다. 서운해하시는 마음은 그저 어른들에게 넘겨라, 그것까지 내가 해결해 드릴 수는 없다.
정직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고 그것으로 그 이슈는 마무리하면 된다.
서운해하셨던 그 마음은 다음번 방문으로 충분히 풀린다.
모든 관계는 갈등과 반목, 교착, 이해, 화해라는 과정을 통해 굳건해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 마찬가지이다. 서로 갈등하고 또 화해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간에 제삼자를 세우게 되면 당장은 불편함을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크고 작은 오해들로 인해 그 관계는악화 될 것이다.
한 해 두 해 봐야 할 사이가 아니다. 건강한 고부관계를 원한다면, 중간에 남편을 세우지 마라.
고부관계의 당사자로서 당당히 대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