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파트 단지 안을 걷다가 블랙 아이스에 넘어지고 말았다. 밤이었는데 전등이 꺼져 있어서 미처 얼음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불빛이 없는 곳에 얼어 있는 얼음도 블랙 아이스 같았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위험할 수밖에 없는. 넘어지는 순간 앞에서 걸어오던 남자 한 분이 잠시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내가 못 일어날까 봐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론, 이 말은 거짓말이다. 그분은 저 앞쪽에 불빛을 등지고 서 있었고 나는 넘어지느라 경황이 없었다. 다만, 실루엣이 그랬다. 왼쪽 길로 꺾어 들어서려는 자세에서 어정쩡하게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 폼이 분명 나를 도와줄 의인의 실루엣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는 의인이 의인의 의무를 행하기를 재빨리 거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떡 일어선 나는 아픈 엉덩이와 손목도 문지르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물론, 빠르게. 의인은 안심한 표정으로 가던 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검은 실루엣은 나와 어떤 교차점도 만들지 못한 채, 천천히 나와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밝은 대낮에 의인을 마주친다 한들 알아볼 수도 없는. 그런 작지만 소중한 인연들까지 포함시키면 우리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일어나지 못했다면 의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주거나 일어나는데 도움을 주었거나...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넘어졌는데 정신을 잃을 확률 같은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모를 일이 세상일이다.
게임을 하듯 함정을 피하며 한 턴 한 턴 발걸음을 옮기는 상상을 하게 된다. 지뢰를 밟으면 게임 캐릭터는 죽고 새 생명을 얻은 게임 캐릭터는 부활하여 다시 게임 속 세상을 살아가겠지만.
밤에 다시 그 길을 걷는데 그날과 다르게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전등이 일시적으로 고장이 났었거나, 전등 켜는 것을 누군가 잊었거나. 그러고 보니, 그곳이 상습적으로 빙판이 생기는 길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밝은 날 보니, 맞아, 그랬었지, 했던 것이다. 깜깜했던 그날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 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또 한 편으로 의인이 관리실에 얘기해서 이렇게 밝아진 건가, 하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 했다. 상상은 돈이 들지 않으니, 누가 들으면, 에이, 무슨 그런 생각까지 하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상상들이 드라마에서는 종종 에피소드로 사용되는 만큼, 의인이 의인의 의무를 행하지도 않았으나 내 마음속에서 무작정 의인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일만큼이나 유쾌해지는 상상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 아이스는 땅과 떨어진 교각 위에 주로 생긴다고 한다. 지열이 없기 때문에 땅이 있는 곳보다 온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하 동굴 같은 곳에 들어가 보면 냉기 밖에 느끼지 못하는데 그 지열이라는 것이 아주 먼 곳에서부터 지상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아도 신기하기만 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아. 어쩌면, 나는 그런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있어서 대단히 좋아지지는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에 의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블랙 아이스를 밟지 않길 바라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므로 밟으면 부활이 아니라 재활을 생각해야 한다. 미약해 보이는 지열 같은 관계들의 비호를 부지불식간에 받으며 위태로운 허공 위의 줄을 타듯 살아가는 일. 그래서, 매일매일 감사할 수밖에 없는.
잠들기 전 꼭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 기도를 드리려고 노력한다. 감사하는 습관도 유쾌한 상상처럼 번식력이 강해서 부정적이 되려는 마음을 잡아줄 때가 많다. 우리 마음에도 여기저기 블랙아이스가 생길 때가 있다. 따뜻한 녹차 한 잔을 마신다. 차가워진 마음이 스르르 녹으면, 신기하게도 또 다른 마음들이 싹이 튼다. 그런 봄에는 봄의 일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