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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컬처 Jul 27. 2022

메신저가 메시지의 삶을 살 때

2022. 7. 25. 

지난 일요일 예배 말씀은 요나 4장이었다.

요나 4장은 다짜고짜 이렇게 시작하더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며 성내며


요나라고 하면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이날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요나서를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고, 읽을 생각을 할만큼 신실한 사람도 아니다.


이날 설교의 핵심은 요나의 불순종이었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로 하고,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전하고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와 부흥을 성공적으로 이끈다. 

명 받은 일이 잘 풀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이방인들의 기도를 받아들여 심판하기로 한 마음을 바꾸자,

재밌게도 요나는 좋아하지 않고 못마땅해한다. 

싫어하며, 성내며.


요나는 니느웨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여전히 그 메시지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여전히 그들이 벌 받기를 원했다. 


이 날 설교의 핵심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삶이 그 복음과 일치하느냐였다.

쉽게 말하자면 말로 복음을 전파하기 그 이전에 내 삶부터 똑바로 살아서 증거하라가 핵심이었다.


요나라는 인물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로서 그 역할을 잘 이행하는 듯 보였으나

실제 그 마음과 행동, 그의 삶은 그가 전하던 메시지와 괴리가 있었다.

니느웨는 요나가 복음을 전하고 부흥하여 회개한 듯 보였으나, 

100년 뒤 다시 타락하여 결국 멸망(하나님의 심판)했다. 


교회에서 여러 번, 흔히들 들을 수 있는 메시지인데

메신저(Messenger)가 메시지(Message)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느냐는 이날의 질문은 

메신저의 역할을 하며 사는 나에게 나는 어떠한지를 상기시킨다.


가장 설득력 있는 메시지 전달채널이 그 어떤 말과 표현보다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소름끼치는 부분이다.


이날의 설교에서 19세기에 아프리카 선교의 길을 열었던 데이빗 리빙스턴의 일화가 언급되었다. 


당대에 리빙스턴은 그는 선교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탐험가로도 굉장히 유명했는데, 

그의 말년에 뉴욕 헤럴드 신문의 헨리 스탠리라는 기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때마침 리빙스턴은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약이 없어 생사를 헤매고 있었는데, 

스탠리는 이 모습을 보고 

'당신에게 내가 가져온 약을 줄테니 당신의 삶을 3개월 동안 취재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다는 리빙스턴에게, 스탠리는 조건을 하나 더 붙인다.

'나는 굉장한 무신론자이며 나의 신념을 바꿀 생각은 없다. 

취재하는 3개월 간 나에게 단 한 마디로도 복음을 전하지 말아달라.'

역시 리빙스턴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스탠리에게서 페니실린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스탠리는 본격적으로 리빙스턴의 삶을 취재하기 시작한다. 


리빙스턴은 복음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스탠리는 1개월이 채 되지 않아 오랜 자신의 신념을 접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후에 스탠리는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리빙스턴의 삶 자체를 보고 감화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에 리빙스턴과 스탠리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차치하고..

처음 들어본 이 일화의 뒷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살면 누군가의 삶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 마땅하겠다고 

인생의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걸까?


조직의 문화와 가치를 계속해서 여러 방법으로 전달하고

이런 변화된 방법을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결국 조직문화란 변화관리를 해내는 일인데,

나부터 우리가 말한 그대로 살고, 변화하고 있었을까? 

내 모습이 좋은 메시지가 되고 있을까?

나를 보고 누군가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팀 동료들과 가끔 이 일의 제 1 역량은 바로 인내라는 이야길하는데, 

이게 비단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나의 숨겨진 본능, 편한 마음과 

그렇게 해야 하는 이성적인 행동은 다른 법이고, 의도적 행동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한 법이니. 


조직문화를 다루는 일은 자신의 일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자신에게 객관적으로 규율을 댈 수 있는 엄격한 정직함, 

고도의 자기 인식 역량이 더더욱 중요한 일임을 새삼 다시 정리한다.

'싫어하며 성내며' 하지 말아야지.


나는 아무래도 먼 것 같다. 

이것은 알 수 있다 ㅎㅎ.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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