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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커팅기의 첫 불빛

by 자스민

처음 레이저 커팅기를 가동하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검은 방 안에서 붉은빛이 판재를 가르며 선을 그려나갈 때,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잘려나가는 나무 조각들을 바라보며,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첫 제품을 만들던 시간은 단순히 가구를 조립하는 과정이 아니라, 창업가로서의 첫 훈련이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해결책을 고민하고, 수없이 고쳐나가는 힘.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제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치수가 조금만 어긋나도 다시 자르고, 하루 종일 기계를 돌려야 겨우 몇 개 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MDF 특유의 탄 냄새가 방 안 가득 차 머리가 아플 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려 나온 판재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상자의 형태가 잡힐 때, 설명하기 힘든 성취감이 몰려왔습니다

첫 제품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실패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나오는 물건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실패할수록 제품은 더 좋아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쿠폰함 이후 다른 제품들도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베이블레이드 장식장, 태권도 벨트 보관함 같은 아이템들도 모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출발점은 바로 ‘첫 번째 실패투성이 쿠폰함’이었습니다.

화면상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도면도 실제로 커팅해보면 늘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빡빡해서 끼워지지 않거나, 반대로 헐거워 금세 분리되기도 했습니다. 조립이 잘못돼 균형이 틀어진 채로 삐뚤빼뚤 서 있는 시제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수정하면 완성될 것 같은 기대감이 저를 다시 도면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첫 제품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미완성의 상자가 저에게는 브랜드의 씨앗이었습니다.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경험은 저를 단순한 ‘만드는 사람’에서,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는 사람’으로 바꿔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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