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장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공식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될 10편의 글을 네 달에 걸쳐 연재합니다.
‘그리하여 앨범 커버는 이러나저러나 음악의 얼굴이 되어준다.’ 앞 장의 내용을 채에 거르고 걸러 가장 중요한 문장 하나를 골라내자면 이 한 줄이 남는다. 무형의 음악을 눈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실체를 부여한다는 1차 기능과 더불어, 음악 감상의 첫 관문으로서 그 음악의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점을 빼놓고선 앨범 커버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 분야의 매력을 처음 피부로 느끼게 된 것도 음악과 디자인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순간부터였다.
여기서 첫인상을 좌우한다는 점은 많은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 첫인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것의 외형만을 가지고 순간적으로 받게 되는 느낌이다. 사람의 경우, 첫인상은 다른 이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첫 번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인상을 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면접 자리에서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말투를 연습한다든지 소개팅에서 말끔한 인상을 주기 위해 옷매무새를 다듬는다든지 하는 노력은 전부 첫인상이 훗날 끼치게 될 영향을 고려한 행동들이다.
앨범 커버도 마찬가지다. 앨범 커버가 음악보다 먼저 노출되어 첫인상을 남기는 역할을 맡은 만큼, 음악가들은 디자인을 통해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청자가 기대하는 바’를 모두 고려하여 음악의 인상을 설계한다. (정확히는 커버 디자이너의 역할이지만 최종적으로 음악가의 의견을 반영해야만 하므로 음악가라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커다란 줄기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앨범 커버의 디자인을 다양한 양상으로 파생시키게 된다. 이러한 양상의 차이는 장르 별로 조금 더 두드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장르에 따라 달라지는 대중의 기대가 음악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환경에 맞춰 적합한 첫인상을 고려하는 사람’의 경우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그 차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글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뒤에 이어질 챕터를 통해 별도로 다루어볼 것이다. 그 대신 이번 글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내용은 ‘차이점’이 아닌, 그 밑단에 깔린 ‘공통점’에 관한 것이다.
앨범 커버(Cover)는 단어 그대로 ‘덮개’ 혹은 ‘표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음악이라는 상품을 감싸는 포장인 셈이다. 물론 포장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음악에 있어 커버는 ‘보호’ 다음 단계의 기능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이 책에서는 ‘음악’과 ‘음반’을 별개의 대상으로 분리하고 있다). 바로 ‘광고’와 ‘홍보’가 그것이다. 어떤 물건이 상업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일 경우에 내용물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포장의 또 다른 역할이라는 점은 음악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니,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직접 듣기 전까지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음악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앨범 커버는 그 안에 담긴 상품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가치 판단의 유일무이한 도구인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앨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앨범 커버라는 사실은, 우리가 편의점에 가서 새로 나온 라면의 포장지를 보고 호기심에 구매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라면’이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기본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맛과 양(정말 특이한 신상품이 아닌 이상)은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대한 믿음 또한 큰 위험부담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 한 앨범 안에 담긴 곡이 어떤 장르인지, 누구의 곡인지와 같은 차이에 따라 개개인의 취향과 전면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앨범 커버가 최우선으로 충족해야 할 기능은 그 안에 담긴 음악을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며 장르에 따른 디자인적 특징이 구분되는 것도 전부 이러한 기본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를 불문한 대부분의 앨범 커버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는 곡과 창작자에 대한 정보다. 특히 앨범 커버에는 유독 창작자에 대한 부분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음원 차트를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가수의 사진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앨범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은 ‘커버 디자인’이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북 커버 분야와 비교했을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물론 책과 앨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각각의 글과 음악이 사회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역할과 그것들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용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 종이와 활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 - 이 물리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무형의 대상을 시각적으로 붙잡아 둔다는 점에서 앨범 커버와 북 커버는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의 얼굴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고 있는 책은 생각보다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얼굴이 나와 있다 하더라도 홍보용 띠지에 작게 들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사실은 단순히 형태가 없는 대상을 대표한다는 속성만으로 앨범 커버의 ‘인물 위주 디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결국 음악이 가진 고유의 어떤 특성으로 인해 앨범 커버만의 독특한 영역이 만들어진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유의 특성’이란 바로 대중문화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말한다. 참고로 대중문화는 ‘대중매체에 의해 상품으로 대량 생산, 재생산되어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문화’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음악이 대중들 사이에서 향유되는 방식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전파되고 있는 수많은 음악과, 동시대 유행을 선도하는 많은 음악가들은 그 자체로 대중문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비단 지금에 와서야 눈에 띄게 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과는 달리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하지 않았던, 대중문화라는 개념이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하던 음악사의 초창기부터 이어져 온 뿌리 깊은 흐름이다.
그 흐름의 시작은 1939년의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보다 먼저 음반 산업이 뿌리내렸던 미국과 유럽은 그 당시 SP라는 매체를 표준규격으로 삼고 있었는데 1902년부터 레코드 가운데에 인쇄된 종이 레이블을 붙인 것이 음반에 정보를 표기하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이다. 1910년경 레코드 커버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말 그대로 음반을 보호하는 포장지 이상의 역할을 하진 않았으며 표기되는 정보 또한 회사와 연주자 이름이 전부였다. 앨범 커버를 두고 종종 재킷(Jacket)이라고 부르거나 커버 디자인을 위해 촬영하는 사진을 재킷 사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부 단어 그대로 ‘음반 위에 걸치는 옷’이라는 의미의 초창기 표현이 지금까지 굳어져 온 탓이다.
참고로 이러한 커버를 ‘앨범 커버’가 아닌 ‘레코드 커버’라고 구분 지어 표기한 이유는 앨범과 낱장 레코드가 별개의 단위이기 때문이다. 앨범은 길어야 5분 남짓이었던 SP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세기 초, 여러 장의 음반을 사진 앨범 형태로 수납하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판매 방식이자 단위이다. 하지만 그 당시 앨범 단위의 경우도 단조로운 표지 디자인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록곡에 대한 정보를 적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앨범을 시각적으로 구분할 방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 들어 조금씩 장식적인 요소가 추가되기도 했는데 각각의 앨범을 위해 맞춤식으로 제작된 아트워크 기반의 ‘앨범 커버 디자인’이 등장한 것은 몇 년 뒤인 1939년이다. 그해 미국 컬럼비아 레코드에 입사한 디자이너 알렉스 스타인와이스(Alex Steinweiss)는 단색의 커버가 구매자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고 커버 디자인을 통해 판매량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인물이다. 물론 기존에 있던 앨범 커버들 또한 전부 디자인이 적용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특정 앨범에 수록된 음악의 주제나 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앨범 커버만 보고도 각각의 앨범을 ‘직관적으로 구별’가능하게 만든 것은 스타인와이스가 처음이었다. 비로소 커버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의 첫 작품을 포함한 스타인와이스의 작업들이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는 얼핏 보았을 때 인물 위주 디자인의 흐름과 무관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디자인을 도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판매량 촉진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대중문화는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소비층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상품을 생산하는데, 이러한 경향을 고려했을 때 그의 디자인 또한 결국 대중문화의 작동 원리와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디자인했던 대부분의 음반이 오케스트라 음악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 격 인물을 선정하기 쉬운 팝 음악 분야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디자인 전략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07년 첫 상업 음반과 함께 등장한 한국의 음반 역사 또한 초창기의 단순 정보 기입 수준에서 시작되었다. 다채로운 모습의 앨범 커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SP에서 LP로의 매체 전환이 이루어진 1960년대 이후인데, 이는 그 당시 다양한 라디오 및 티브이 방송사가 개국하며 본격적으로 대중문화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던 시대 배경과 정확히 맞물린다. 이후 1970년대로 접어들며 FM 라디오가 방송을 시작하고 전국에 걸친 음반 유통 네트워크가 자리 잡으면서 LP를 통한 음악 감상은 대중 사이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이 시대를 풍미하던 대표적인 음악가들의 앨범 커버는 대부분 가수의 얼굴을 중심으로 디자인되었는데 단순히 사진을 소재로 디자인하는 수준을 넘어 과할 정도로 가수의 모습이 부각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컬러 티브이의 보급과 전국 방송을 통해 꽃피우게 된 실질적인 의미의 대중문화를 등에 업고 확실하게 주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른 시각 요소들을 전개한다는 골자는 시대를 막론하고 수많은 앨범 커버 디자인의 뼈대를 이루어 온 암묵적인 공식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공식을 통해 비로소 음악과 대중문화 사이의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한 대중문화의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잘 알려진 스타를 기용하는 ‘스타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이어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상 매체의 힘이 커짐에 따라 대중음악을 향유함에 있어 가수의 비주얼 또한 음악 못지 않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가수의 얼굴은 홍보 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시각 요소였던 것이다. 물론 작업 환경의 디지털화나 사진 기술의 발전과 같은 기술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되어온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밑단에 깔린 ‘공식’이 2020년에 발매되는 많은 앨범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된다는 점은 음악이라는 분야가 대중문화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광고와 홍보로서의 앨범 커버’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물, 즉 음악이라는 분야가 대중문화와 나란히 걸어온 발자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태도와 욕망 등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전략을 세우고 수요를 창출한다는 ‘광고’의 사전적 정의가 앨범 커버의 탄생 계기와 유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대중매체의 발전과 함께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진 광고와 마찬가지로, 앨범 커버 또한 미디어 발전에 따른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수많은 음악을 담아왔다. 그리고 이것은 ‘가수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우는’ 앨범 커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앨범 커버에는 음악을 넘어, 동시대 대중이 음악에게 바라는 욕망과 기대가 전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앨범 커버를 통해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이유도 전부 이 덕분이다.
더 나아가, 많은 앨범 커버들이 아직도 앞 단에서 다루었던 ‘공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은 사람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존재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그 공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앨범 커버가 판촉이라는 단순한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곁가지들을 걷어내고 나면, 앨범 커버가 음악과 함께하기 시작한 이래로 음악은 단 한 순간도 혼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비단 커버뿐만 아니라 이후 등장하는 다양한 시각 콘텐츠들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음악과 어떤 방식으로든 매 순간 연결되어 왔다. 결국,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음악을 음악만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시대는 앨범 커버의 탄생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대와 장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공식이다. 그리하여 앨범 커버는 이러나저러나 음악의 얼굴이 되어준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글 월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