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로비 Oct 13. 2020

4-1. 나란한 두 갈래 길

첫 번째, 작가성의 발현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될 10편의 글을 네 달에 걸쳐 연재합니다.




두 갈래 길이 있다. 이 두 가지 길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며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란한 방향을 향해 같이 뻗어 나가고 있다는 점은, 닿을 수 없는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두 대상의 오묘한 위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작가성과 상업성은 비단 앨범 커버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화, 예술, 디자인 분야의 커다란 축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는 음악 시장에서 작가성과 상업성이 각각 앨범 커버를 통해 구현되는 방식을 특정 장르의 문화를 빌려 살펴본다. 그런데 그 문화라는 것은 음악가와 음악을 포함하여 그 음악을 소비하는 청자의 태도와 욕망이 전부 섞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때문에, 잠시 시선을 돌려 ‘나’라는 개인의 시간 축을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자. 내가 이 장르들을 향유해온 방식에서 본격적인 이야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중고등 학생 시절 즐겨 들었던 힙합 앨범들. 고르기 힘들었다.


불과 몇 년 전, 그러니까 아직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고 있던 2016년 즈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단연 힙합이었다. 심리적인 방황이 극에 달했던 사춘기 시절, 가까스로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준 힙합은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일종의 심리 치료 기능을 겸하고 있었다. 이 장르는 유독 음악가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 같은 내밀한 주제를 다루는 곡들이 많은 편인데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래퍼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듣는 이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가 되어 닿게 되는 것이다. 당시 피부로 느꼈던 음악의 힘은 이후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덕분에, 취향이 달라진 지금도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방점을 둔 채 감상을 시작하는 것은 여전하고도 오래된 습관이다.


20대 초반까지 열심히 들고 다녔던 가사노트 ⓒ2021. Wallo.B


이러한 습관은 창작자로서 음악을 대했던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탄탄히 다져진 결과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래퍼들의 모습에 감명받은 18살의 나는 ‘나도 할 수 있겠다,’ 혹은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음성 채팅용 마이크가 달린 싸구려 헤드폰을 사서 무료 비트에 자작 가사를 녹음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물론 남부끄럽지 않게 ‘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추게 된 것은 작곡까지 따로 공부하며 음악에 매진했던 20살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던 고등학생에게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가사로 쏟아내는 작업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다스리기에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결국 짧은 기간 안에 청자와 창작자 양쪽의 입장을 모두 겪어 볼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음악과 메시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던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나의 첫 믹스테입 《SAVE POINT》


내 이름으로 된 첫 믹스테이프를 제작했을 당시엔 곡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그 곡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나 트랙 순서에 따른 흐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감싸주는 앨범 커버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다. 물론 디자인을 맡길 만한 사람이 마땅히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내 음악의 느낌은 나 스스로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직접 디자인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때문에 그것들이 이미지화되었을 때의 모습을 틈틈이 상상하며 음악 작업을 병행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앨범의 모든 과정이 나의 손을 거쳐 완성될 수 있었다. 최종 커버는 입대를 코앞에 두고 22살까지의 삶을 돌아본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어릴 적 사진을 부분부분 모아 만든 얼굴과 커다란 나무가 연결된 모습을 하고 있다. 비록 디자인적인 완성도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 시절의 ‘나’를 온전히 대표하고 있는 결과물이기에 아직도 애착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경험담으로 그치는 듯이 보일 수 있는 이 짧은 이야기에 사실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핵심의 5할이 담겨있다. 메시지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장르적 특징과 거기서 엿볼 수 있는 작가성의 발현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힙합이라는 장르에 빠져들기 시작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음악이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에 마음이 동했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분야의 음악을 주로 소비하는 청자 층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소비하던 것은 귀로 들리는 일차적인 사운드를 넘어 그 사운드가 가사와 결합하며 탄생하는, 그러한 음악을 통해 전달되는 음악가의 총체적인 메시지였다. 음악가에 따른 선호도 또한 그 사람이 주로 풀어내는 이야기의 내용과 음악적 전달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어떤 음악을 소비함에 있어 가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단순히 ‘누구의 음악인가’를 넘어 ‘어떤 이야기를 하는 누구의 음악인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좌 : 리쌍의 팬이 되게 해준 5집《백아절현》/ 우 : 길의 얼굴을 처음 알게 해준 [무한도전]


이 질문은 결국 창작자가 앨범 커버를 통해 청자에게 다가가는 방식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소비자(청자)가 상품(음악)에 바라는 것이 작품성과 관련된 맥락 안에 놓여있으므로 판매자(창작자)는 그 니즈를 상품(음악)에 적극 반영하여 앨범의 메시지를 대표, 강조, 보완하는 방식으로 앨범 커버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래퍼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팬으로서 궁금한 것이 당연했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음악을 듣는 과정에서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는 요소였다. 이 때문에 내가 그 당시 즐겨들었던 대부분의 앨범은 음악의 뉘앙스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거나 스토리텔링의 연장 선상에서 서사적인 이미지 구조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지금은 해체된 힙합 그룹 ‘리쌍’의 팬이었던 내가 그룹 멤버 ‘길’의 얼굴을 처음으로 정확히 살펴보게 된 것은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서였다. 물론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그만큼 가수의 외모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그들의 음악을 즐겨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예시로 들고 있는 힙합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힙합이라고 전부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힙합을 포함하여, 음악의 메시지나 작품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은 장르 간의 유의미한 공통점인 것은 확실하다. 덧붙여,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힙합을 예시로 들었지만 여기서 말하는 ‘작품성’ 또한 가사에 한정된 대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악기 연주를 통해서도,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다양한 사운드의 결합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음악가의 작가성’은 음악 감상 전반에 걸쳐 스며들어 있으며, 앨범 커버는 그것들을 모두 종합하여 시각 매체로 구현한 결과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닌 ‘음악가의 작가성’이 중요한 동기가 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마냥 청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커버 디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내가 첫 믹스테입을 만들 당시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나’를 위한 작품이어야 한다는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음악가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청자의 니즈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탄생하는 앨범 커버는 은연중에 이루어진 쌍방 합의의 결과물인 셈이다.


나의 첫 믹스테입 커버를 100% 수작업으로 만든 데에는 외주 맡길 돈이 없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2021. Wallo.B


한편, 이러한 앨범 커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요인이 작용하기도 한다. 디자인을 따로 맡길만한 여건이 되지 않거나 번듯한 촬영 환경을 갖추기 힘든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고퀄리티의 인물 사진이 필요 없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간단한 사진 중심의 디자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본인이 직접 디자인하거나 주변 지인을 수소문하여 품앗이에 가까운 제작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디자인은 음악가의 대중성이나 인지도가 낮아 인물을 부각하는 디자인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큰 리스크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이렇듯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결국 자기 작업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모여 탄생한 이미지라는 점에서 작가성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앨범 커버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70, 80년대에 발매된 록, 포크 음악 앨범 커버들


여기까지 언급한 몇 가지 특징으로 인해, 해당 부류의 앨범 커버 디자인은 창작으로의 진입장벽이 여타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동시에 상업 논리에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 힙합이나 포크, 록, 인디 밴드 음악가들의 앨범에 주로 적용된다. 물론 이 또한 과거 70, 80년대 LP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계보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 당시 발표된 포크, 록 음악가들의 적지 않은 앨범 커버에는 단순 홍보 효과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가질 수 있는 예술적인 측면 또한 적극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동시대 대부분의 작품과 확연히 대비되는,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2010년 즈음을 기준으로 홈레코딩 기술과 작곡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개인이 부담 없이 음악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됨에 따라 덩달아 그 영역을 확장해 오고 있다.


여러 분야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앨범 커버들 (글 하단에 명단 기재)


작가성을 강조한 앨범 커버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유독 눈에 띄는 흐름 중 하나는 시각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다른 분야 작가의 참여다. 이 움직임은 회화, 조소, 사진, 팝아트 등으로 거의 모든 시각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음악가가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은 해당 작가의 작품과 결합하여 훨씬 더 예술적이고 은유적인 힘을 확보하게 된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 음악이 음악가 개개인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대중문화와 함께 발전하여 상업 논리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힘든 음악 시장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음악가가 음악을 통해 자아실현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탄생한 앨범 커버들은 소비자로서의 대중도 같은 부분 - 음악가들의 자아실현 - 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이것은 지금껏 언급한 음악 장르를 향유하는 방법이자 목적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덧붙인 것처럼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음악을 직접 만들고 부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성에 대한 욕구’는 ‘음악의 존재 이유’라는 거창한 문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중요한 축을 담당하며 시대를 넘어 지금도 그 경계를 넓혀가고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4-2. 나란한 두 갈래 길 - 두 번째, 그것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마지막 이미지 속 음악가와 아트 워크 담당 작가 명단(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개코《코끼리》/ 조기석

ADOY《VIVID》/ Aokizy(옥승철)

윤석철 트리오《4월의 D플랫》/ 김희수

황소윤《So!YoON!》/ Patricia

혁오《20》/ 노상호

히피는 집시였다《언어》 / Marvin Kim(김도엽)



글 월로비
이전 03화 3.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