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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로비 Oct 25. 2020

5. 무형의 날개를 달다

음악이 '목적'이었던 시대를 지나며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될 10편의 글을 네 달에 걸쳐 연재합니다.




2004년, 한국 온라인 음악 시장(2004년 2,014억 원)의 규모가 오프라인 시장(2004년 1,338억 원)을 추월했다. 디지털 매체로의 본격적인 전환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음원 다운로드를 통한 음악 감상은 내가 초등학교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이돌 시장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음반 산업이 소폭 상승하기도 했지만(2008년 +3%) 이미 대세는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이하 MP3P)로 넘어간 뒤였다. 이후, 2009년 아이폰 1세대의 한국 발매와 2010년 갤럭시 S의 발매를 기점으로 인터넷 기반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음원을 다운로드한다는 개념마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버릴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반의 물성을 빌려야만 했던 무형의 음악은 이제 단어 그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0과 1의 세계로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것이다.



아직도 사용 중인 나의 CD 플레이어와 카세트 플레이어 ⓒ2021. Wallo.B


한편, 그러한 와중에도 나는 꿋꿋하게 바로 그 ‘구시대의 유물’을 파헤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8년에 첫 MP3P를 선물 받은 뒤로 나의 음악 감상 매체 1순위는 10년이 넘도록 MP3P 차지였다. 심지어 그마저도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를 멀리하고 직접 음반을 구매해서 하나하나 리핑(Ripping. CD나 DVD에 담겨 있는 디지털 오디오 파일 또는 비디오 파일 등을 PC 하드디스크로 복사하는 작업)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 후엔 CD 플레이어(이하 CDP)를 구매했으며 20살 이후 가지게 된 스마트폰으로는 일절 음악을 듣지 않았고 본가에 잠들어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수리하여 사용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던 셈이다.


일부러 사서 고생해가면서까지 고집을 꺾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을 만큼 복합적이다. 거기에는 가장 기본적으로 실물 음반에 대한 소유욕이 작용했을 것이고 가사집과 함께 음악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즐거움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라 했던 부분은 수록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앨범 채로 감상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CDP로 재생한다고 쳐도 대부분의 기기에 한 곡 반복 기능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꼭 전체를 한 번에 감상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리핑을 통해 MP3P로 감상하는 경우라면 각 수록곡 간의 물리적인 결속이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에 더더욱 납득할 수 있는 다른 이유가 필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가 아닌, 실물 CD로부터 직접 추출된 음원 파일이다. 비록 데이터의 값 자체는 동일할지 몰라도 이것을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으로 대하는 순간 MP3P에서도 충분히 CD로 감상하는 것 같은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앨범 채로 감상하는 것이 해당 음악가가 앨범 전체를 통해 의도한 서사를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반 구매를 비롯한 일련의 과정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감상 방법이다.



피지컬 앨범이 없다는 아쉬움을 남긴 대표적인 작품 (좌 : 화지《EAT》(팬들의 성원으로 2년 후 한정판 발매) / 우 : 라임어택《NAS》)


그러나 시장은 후발주자를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그것이 유행과 기술변화에 민감한 분야라면 더더욱 빠르게 앞서가는 흐름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다. 손꼽아 기다렸던 앨범이 실물 음반 없이 온라인으로만 발매된다는 소식에 실망하거나 아예 정규앨범 발표를 미루고 싱글로만 활동을 이어가는 많은 가수들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음원 다운로드를 이용해야 했다. 가사집을 손에 쥐고 순서대로 음악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그러한 방식이 기본으로 자리잡혀있던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만 일찍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과도기의 끝물에 맛보게 된 즐거움은 과도기 이전의 안정된 시대를 동경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좌 : 토머스 에디슨과 포노그래프 / 우 : 에밀 베를리너와 초기 형태의 음반을 장착한 그라모폰


그런데 이러한 격동의 과도기는 비단 이 시기에만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시장 질서가 재편되는 모습은 역사적으로 아주 빈번하게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찾아가다 보면 형체가 없던 ‘소리’를 붙잡아 영원히 기록하고 싶어 했던 인간의 욕망과 만나게 되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해 19세기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결국,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포노그래프’를 통해 소리의 기록과 재생이 비로소 현실이 되었고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후 1887년 에밀 베를리너가 발명한 편평하고 둥근 최초의 음반과 이를 장착한 ‘그라모폰’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탄생한 SP와 LP 등의 음반 매체는 음악에게 날개를 달아 공연장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대량생산이 기반이 된, 본격적인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등장한 것이다.


카세트 플레이어(삼성 마이마이) 광고와 아이팟 1세대의 광고. 공통적으로 '휴대성'에 기반한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각각 60, 70년대에 등장하여 80~90년대를 수놓은 카세트테이프와 CD는 음악 시장에 또 한 번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바로 ‘휴대성’의 등장이었다. 손바닥만 한 저장매체와 재생기기의 등장으로 음악은 진정한 의미의 시공간을 초월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등장한 MP3라는 디지털 포맷으로 인해 테이프와 CD의 짧은 전성기는 막을 내린다. 가격과 용량, 편의성 등 모든 면에서 혁신을 가져온 MP3P는 2001년 애플의 아이팟 1세대 발매를 기점으로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에 없던 지각변동 수준의 변화들로 인해 불법 다운로드와 수익 배분 문제 같은 크고 작은 진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금 같은 디지털 기반의 음악 시장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준 다양한 제도와 서비스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제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 속에서 무제한의 음악을 즐긴다. (VIBE 어플리케이션)


결국 기술과 매체의 발전, 잇따른 시장의 무수한 변화들은 최초의 순간부터 시작하여 단 한 번도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말하자면, 모든 순간이 과도기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혁신들도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시대 앞에서는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통신기술을 등에 업은 스마트폰은 음악 소비의 기본 방식을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완전히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MP3P가 가져온 용량 확대라는 편의성은 이제 고려할 필요조차 없어진 구시대의 개념으로 전락해버렸다. 기기의 용량 걱정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된 환경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더는 음악을 소비하는 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어졌다. 음반이나 음원을 구매하기 전 고려해야 했던 다양한 요소들(음악가에 대한 본인의 충성도, 곡과 앨범의 퀄리티, 미디어의 반응 등)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저렴한 가격과 무제한 재생이라는 편의성 앞에서 의미를 잃어갔다. 결국, 들을 것은 넘쳐나는데 이 음악에서 저 음악으로 넘어가는 경제적인 대가 또한 없는 것과 다름없었으니 청자들의 음악 소비 주기가 급속도로 짧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음악 시장 생산자들의 작업 주기도 덩달아 짧아지게 만들었다. 정규앨범의 발매 빈도를 줄이고 EP 또는 싱글을 자주 발표하는 방식이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음원 다운로드 시절부터 시작된 이러한 곡 단위의 생산, 소비 방식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더욱더 깊게 뿌리를 내리며 음악의 유구한 기본 단위였던 ‘앨범’을 전복시키기에 이르렀다.


내가 음악에 흥미를 붙인 시기가 정확히 이때 즈음이다. 아이폰 1세대가 발매된 바로 다음 해에 첫 MP3P를 선물 받았고 CDP 단종 소식이 들려올 무렵부터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러웠던 2000년대 후반부터 과거의 향수를 붙잡으려 애썼으니 앞 단에서 묘사한 어린 날의 푸념이 어느 정도 납득되기도 한다. 물론, 결국에 가서는 발매되는 실물 음반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앨범 단위의 기획 자체가 힘을 잃은 것도 전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소비자의 패턴이 생산자에게 영향을 끼친 것처럼, 반대로 시장 변화에 적응하며 ‘나’라는 개인의 소비 방식 또한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해소되지 않은 아쉬움이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그 당시 앨범 커버 디자인의 흐름이다. 물론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때부터 디자인에 큰 뜻을 품고 앨범 커버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앨범 커버는 처음부터 나의 음악 감상 과정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엄연한 하나의 콘텐츠였다. 때문에, 실물 가사집의 빈자리를 커버 이미지로라도 채우려 했던 당시 나의 시도는 간소화되어가는 당시 디자인 흐름에 가로막히곤 했다.


2000년대 후반 ~ 2010년대 초반 커버. 정보 전달을 염두한 디자인 형식이 눈에 띈다.


2019년 유튜브 채널 ‘김봉현의 REP TV’와의 인터뷰에서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는 “싱글로만 음악을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시장에서 반향이 없을 만한 곡은 싱글로 발매하기 힘들다.”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에서 우리는 싱글로 제작되는 음악이 빠르게 돌아가는 음원 시장을 고려하여 별도로 기획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음원 중심의 음악 시장은 그 콘텐츠 제작과 홍보 모두 짧은 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순식간에 갱신되고 사라지는 음원 차트 위에서 즉각적으로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음원을 대표하는 많은 커버들은 원래 앨범 커버가 가지고 있던 홍보와 판촉이라는 속성이 유독 강하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가수의 이름과 제목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크게 배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프라인 매대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머물게 되는 온라인 음원 차트의 특성상 작은 규모의 간단한 구성으로 발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이라고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다. 하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접하기 힘들었던 학창 시절의 내가 느꼈을 상실감은 지금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목적과 효과, 구성 등을 비교했을 때 유사한 점이 많다. (좌 : 환불원정대  커버 / 우 : 코로나19 관련 정부 제작의 카드뉴스)


그러나 개인의 선호는 둘째치고, 이러한 디자인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많은 곡들 사이를 몇 가지의 주어진 정보만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곡에 대한 핵심 정보가 포함된 앨범 커버는 심미성과는 별개로 곡을 고르는 데에 간편한 기준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으로 이미지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 큼직큼직한 텍스트 위주의 디자인은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싱글 음원의 앨범 커버는 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카드 뉴스’의 제작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핵심 기사를 이미지화하여 가독성을 높이고 정방형으로 디자인되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파되는 카드 뉴스는 언론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이 활용하고 있는 뉴스 포맷이다. 비록 전혀 다른 영역을 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두 분야이지만, 효율적인 정보 전달이라는 목적하에 비슷한 구성으로 디자인된다는 점은 여러 갈래의 앨범 커버 중에서도 카드 뉴스와 같이 정보 전달에 특화된 이 분야의 시각적 특징과 빠른 순환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Vox에서 시작한 카드 스택(Card Stacks) 시리즈. 카드 뉴스의 시초가 되었다.


참고로 이 카드 뉴스 포맷의 시초는 2014년 4월, 미국의 언론사 ‘Vox’에서 제작한 ‘카드 스택(Card Stacks)’ 시리즈이며, 2014년 후반기부터 미국 현지를 비롯한 국내외의 수많은 언론사가 이 방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그 당시 국내 소식이 하나 있다. 바로, 한국 콘텐츠 진흥원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유료 사이트 이용 방식 설문조사(2014 음악산업백서 참고)에서 다운로드를 누르고 스트리밍이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해가 바로 2014년이라는 사실이다. 스트리밍의 강세로 인해 곡 단위의 생산, 소비 방식이 음악 시장의 완전한 기본값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소식은 앞서 소개한 두 분야, 개별 곡 중심의 앨범 커버와 카드 뉴스가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분야에서 우위를 떨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우연히 시기가 겹쳤을 뿐이라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두 분야가 너무나도 유사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러한 시각적 형태 자체가 기술의 발전과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가 불러온, 시대의 요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린 내가 그 당시 커버 디자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음악 시장의 흐름을 보고 느낀 불만은 단지 시대착오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투정에 불과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선,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1차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많은 앨범 커버들은 지금 보더라도 마치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한 허무한 기분을 유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나쁜 디자인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획 의도에 따라 뚜렷한 목적 달성을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니 오히려 그 외의 부분에 대해 가타부타 논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적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요량으로 앨범 커버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던 입장에서 단출한 구성의 디자인을 보고 느낀 아쉬움은 지극히 당연한 감상이었다.


60~70년대 음악감상실의 전경


그런데 이러한 디자인 양상을 통해 알 수 있는 음악 시장의 과도기적 변화들은 단순히 '과거의 것이 사라지고 있다' 같은, 표면적인 현상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기엔 놓치고 가는 것이 너무 많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의미를 조금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음악 시장에 아직 ‘휴대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보려 한다. 이 당시 음악은 ‘듣기 위해 들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쉽게 말해, 음악 감상은 멀티 태스킹에 적합하지 않은 행위였다. 물론 음악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고정된 공간에서 고정된 장치로 재생할 수밖에 없다는 물리적 제한으로 인해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60~70년대 한국에서 성행했던 ‘음악 감상실’이 대중음악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한계를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상이 되어버린 스트리밍 서비스(좌측 상단부터 삼성뮤직, 멜론, 지니뮤직, 유튜브뮤직, FLO, VIBE, 벅스뮤직, 네이버뮤직)


하지만 휴대기기의 등장으로 음악은 ‘듣기 위해 들어야 하는’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기 시작했다.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음악은 훨씬 더 다양한 삶의 부분 부분으로 스며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움직임은 디지털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거치며 절정에 이르렀다. 개인이 소비할 수 있는 음악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고, 동시에, 시공간을 무시하는 무제한적인 감상 환경이 마련되면서 빠른 소비와 빠른 생산이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앞에서도 자세히 서술했던 이러한 시장 구조 변화의 결과, 청자는 더 이상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을 듣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보통 어딘가로 이동하거나 무언가를 할 때, 또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자 할 때 음악을 듣곤 한다. 2020년 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다양한 외부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스트리밍 이용률이 감소했다는 분석 결과는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사집을 손에 쥐고 한 줄 한 줄의 내용을 찬찬히 따라 읽으며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정주행하는 일은 이제 특별한 취미 생활로 여겨지곤 한다. 음악이 ‘목적’이었던 시대가 끝나고 그것이 ‘감상의 대상’이라는 오래된 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공들여 만들어진 작품들이 그만큼의 빛을 충분히 보지 못하고 차트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뜻하기도 한다. 여전히 시장 논리와 무관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음악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에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디지털 시대의 변화 또한 마냥 안 좋은 쪽으로만 흘러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지금의 음악은 스트리밍이라는 전에 없던 혁신으로 인해 많은 제약에서 해방되며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 녹아들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한 곡 한 곡이 밀도 있게 조명받을 기회는 전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진 셈이다. 그리하여 음악은 마치 공기처럼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파급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음악가들이 새로운 환경을 고려하여 적용해볼 수 있는 음악적 접근법의 확장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또 한 번의 진화를 위한 발판이 되어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듯이 변화로 인한 상실감과 새로움은 그림자와 빛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 계속해서 공존해왔다.


중요한 것은, 한 발짝 떨어져 양쪽을 모두 바라보는 시선이지 않을까. 이번 장에서, 이다음 장에서,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서까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는 수많은 ‘변화’의 순간들은 전부 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가 차례차례 연쇄되어 넓어지는 그물과도 같다. 만약 무작정 새로운 것을 따라간다거나 지나버린 시간만을 붙잡으려 애쓴다면 변화의 흐름은 한쪽으로만 영원히 뻗어 나가는, 길고 긴 밧줄의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앞 단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묘사했던 ‘듣기 위한 음악’은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시대에 발맞춰 아날로그 음악의 새로운 줄기를 키워가고 있다(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첨단 기술의 빠른 보폭과 무관한 고유의 흐름이다. 이렇듯, 역사는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그물처럼 사방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글 한 부분의 표현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린 날의 나는 ‘후발주자’가 아니라, 단지 남들과 조금 다른 흐름을 타며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동시대 문화’를 향유했던, 그런 아이였다고 말이다.



글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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