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될 10편의 글을 네 달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글은 분량이 많아 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가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언급하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대중성과 상업성이다. 작가성과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과 상업성 등으로 구분되는 두 영역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언뜻 보면 완전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쪽만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 엮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지금은 그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기 때문에 양쪽으로 나누어 비교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경계가 흐려진 환경 속에서도 어떤 영역 고유의 특성이 유독 강하게 발현되는 분야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살펴볼 주제의 경우엔 아이돌 시장이 정확히 그러하다. 대중음악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유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아이돌 음악의 앨범 커버는 앞서 다루었던 작가적인 디자인과는 또 다른 방향성을 보여준다. 대중성과 상업성을 전제로 한 캐릭터 중심의 소비자 공략이 바로 그것이다.
앞선 이야기의 배경에서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돌려 2014년으로 건너가 보자. 당시 나는 2학년까지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입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급했던 것처럼 그 시점에 가장 즐겨듣던 음악 장르는 힙합이었는데 그 정도가 일반적인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이렇게 확고한 취향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정체성의 일부를 담당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그러한 취향이 극단적으로 치우쳐 다른 한쪽을 온전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 정도로까지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지 않았던 장르가 바로 아이돌 음악이다. 음악이 가진 작품성이나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문학적 메시지 같은 것들에 집착하던 나는 아이돌 음악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악 대부분을 폄하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음악에 대한 시야가 어느 수준 이상 넓어질 수 없었으니 외골수라는 표현조차 과분할 정도로 좁은 틀 안에 박혀 있던 셈이다.
그랬던 나의 태도가 어쩌면 인생의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사건을 만나 180도 바뀌게 된다. 그 변화는 입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군대 자체보다도 군 복무 시절 접하게 되었던 TV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01명의 아이돌 지망생이 출연하여 갖가지 경쟁을 거치며 최후의 데뷔 조 11명을 가린다는 컨셉의 [프로듀스 101]은 그 규모나 방식 등 모든 부분에서 화제를 낳은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특징은 100% 시청자의 선택으로 데뷔 조가 꾸려진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로부터 3년 뒤인 2019년, 제작진의 비리와 투표 조작 정황이 탄로 나며 유명무실해진 컨셉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적어도 그 당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흔히들 군대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아이돌에 빠지게 된다는 통념도 나에겐 해당하지 않았을 정도로 대쪽 같은 고집을 유지하며 군 생활의 반이 넘는 시간을 지내오고 있었지만 [프로듀스 101]의 파격적인 행보는 그런 사람마저 몰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경쟁 기반의 자극적인 진행에만 초점을 맞추어 감상했다면 이 프로그램을 두고 ‘가치관을 바꿔준 계기’였다고 까지 회상할 수 있었을까? 그 경우, 단순히 ‘재미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정도의 감상으로 그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요소들 너머 내가 보게 된 것은 한 명 한 명 개인으로서의 연습생들이었다.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아이돌만 접해왔던 나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습생들의 적나라한 모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퇴색되었을지언정 연습생들이 마지막에 흘리는 눈물은 한없이 진심이었다. 늘 깎아내리기만 했던 대상의 이면에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땀 흘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한 순간 느껴지는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자연스레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꽤나 감상적인 후기이지만 여기서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이 정도로 몰입하게 된 데에는 연습 과정을 강조하는 편집 방식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시청자의 투표만으로 결과가 나뉘게 된다는 설정의 영향이 컸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시청할 때보다도 출연자들의 당락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달리 가창력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퍼포머(Performer)의 능력을 선보여야 하는 아이돌 그룹 후보라는 점에서 참가자의 개별성은 훨씬 부각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과정을 통해 데뷔하는 그룹의 팬들은 저마다 ‘내가 뽑았다’라는 생각과 함께 각 멤버들에게 조금 더 밀접한 애착을 갖고 응원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관심과 주목은 궁극적으로 그 대상이 ‘누구인가’로 귀결되는 것이다. 즉, 모든 과정 - 비록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내용으로 한정되긴 하지만 - 을 함께 지켜봐 온 팬으로서 본인도 모르게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어떤 노래를 하고 어떤 춤을 추는지와는 별개인, 사람 자체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맹목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아이돌 시장 기저에 깔린 핵심 요소이다. ‘아이돌(idol)’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자체가 ‘우상’을 뜻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분야의 마케팅은 그룹의 멤버가 ‘누구’인가에 방점이 찍혀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판타지 속에서 아이돌은 동경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며 그에 대한 팬들의 감정이 이 시장을 굴러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인 것이다. [프로듀스 101]은 특유의 포맷(시청자 중심의 선정 방식이나 적나라한 연습 과정 공개 등)을 통해 이 감정의 거리를 좁히며 팬과 아이돌 사이의 친밀감을 극대화한 사례이며 굳이 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들의 홍보 방식을 같은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아이돌 그룹의 앨범 커버는 이러한 양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거울과도 같다. 그 안에서 아이돌은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라는 듯 누구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채 팬들을 기다린다. 곧이어 앨범이라는 대상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 사전적 정의 그대로의 ‘우상(idol)’이 된다.
하지만 오직 인물 위주라는 사실만으로 아이돌 앨범 커버를 특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특징을 공유하는 발라드 장르의 경우만 보더라도 오히려 인물을 중심으로 디자인하는 수준을 넘어 인물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가수가 누구인지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 시장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캐릭터’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개인이나 그룹이 갖는 특수성이 곧 시장에서의 경쟁력으로 치환되는 환경 속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은 옛말이 된 것이다.
단순히 아이돌의 외모를 내세우는 것만이 아닌, 각 그룹만의 특별한 이미지를 기획하고 그것을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 삼아 저마다의 블루오션을 개척한다.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등장한 ‘~돌’ 같은 다양한 예명들은 이러한 현상의 시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앨범 커버를 통해 전면에 노출되며 공고히 다져진다. 야성적인 매력의 짐승돌 ‘2PM’ 이나 파격적인 컨셉으로 화제를 모았던 성인돌 ‘브라운 아이드 걸스’ 등 명확한 캐릭터를 구축한 그룹의 앨범 커버는 마찬가지로 해당 이미지에 맞춰 일관된 분위기를 풍기게끔 디자인되었다. 이것은 또한 아이돌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파생되는 연예 시장의 사업 구조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잘 자리 잡은 아이돌이 예능이나 CF는 물론이고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은 전부 음악을 통해 완성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앨범 커버는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각 그룹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캐릭터를 포함, 특정 활동 시기의 음악적 색깔을 적극적으로 강조, 대표하는 역할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비주얼 디렉팅’이 음악 시장 안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던 순간이었다. ‘소녀시대’, ‘샤이니’ 등 SM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들이 그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비주얼 디렉팅 분야의 대표 인물인 민희진 디렉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기획의 결과였다.
비주얼 디렉팅은 앨범 커버를 비롯한 모든 시각 콘텐츠 - 의상, 춤, 뮤직비디오 등을 모두 포함한 - 를 통일된 맥락으로 꿰어내며 음악적 컨셉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컨셉이 매번 새롭고 신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반복하는 것은 마치 잘 다져진 땅 위에 차례차례 건물을 세우는 것과 같다. 아이돌 그룹은 이를 통해 이미지와 가능성을 확장하며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생명력을 얻는다. 여기서 비주얼 디렉팅은 각 건물의 튼튼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음악의 얼굴을 자처하던 앨범 커버는 이제 ‘무대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밀접하게 음악 활동의 컨셉을 공유받게 되었다. 특정 컨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장면을 이미지 한 장으로 압축하여 대표하게 되었으니 조금 더 궁극적인 의미의 ‘음악의 얼굴’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돌 시장의 디자인은 계속해서 변화를 꾀한다. 예술의 문법을 차용하여 보는 이의 다양한 해석과 함께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하고(ex. 걸그룹 ‘f(x)’) 브랜딩의 문턱을 넘으며 아이돌 그룹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게끔 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ex. 보이그룹 ‘빅뱅’, ‘엑소’) 이 변화들의 전조는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 흐름이 주도적으로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시기는 2010년대를 반쯤 지나면서부터다. 참고로 이에 대한 내용은 음악 시장의 커다란 변동과 함께 자세한 서술을 필요로 하므로 책의 후반부에서 별도의 장을 통해 다루어 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과 디자인 모두에 도태되지 않기 위한 끊임 없는 시도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비주얼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 비주얼을 통해 이 장르의 방향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이돌 앨범 커버가 진화해온 일련의 과정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특정 대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 속에서 팬들의 소비를 촉진할 방법은 결국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 빠르게 파악하여 상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그들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누구보다 멋진 컨셉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 그룹을 계속해서 좋아할 이유로 충분하다.
더 나아가, 팬들이 무엇을 ‘원할지’를 팬들 스스로보다도 먼저 예측하여 시장을 선도해온 많은 사례는 아이돌 시장이 상업성이라는 1차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항상 첨단의 영역을 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소비의 주체가 품고 있는 ‘누구’에 대한 욕망은 그렇게 진화를 거듭하여 앨범 커버에 투영되어 왔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언제나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매력적이야 하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타고난 운명 탓이다.
음악이 만약 인격을 가진 존재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함께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어.” 라거나 혹은, “너를 위해 이런 것까지 준비해 보았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건네며 청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서로 다른 느낌의 두 문장은 음악과 청자 사이의 대표적인 관계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굳이 음악을 의인화하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충분히 품어볼 수 있는 상반된 감정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혹은 추상적인 개념이든 간에, 어떠한 두 대상 사이의 무게 중심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에 따른 모습은 그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표가 되어준다. 그것은 나(창작자 또는 음악)를 향한 것일 수도, 너(청자)를 향한 것일 수도, 혹은 그사이 어디쯤을 향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홍보와 판촉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을 위해 탄생한 ‘앨범 커버’는 그것을 뼈대 삼아 살을 붙여나가는 과정에서 작가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근간으로 하여 발전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예시로 들었던 몇 가지의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수많은 앨범 커버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그 앨범 커버를 매개로 연결되는 두 대상, 바로 ‘음악’과 ‘청자’ 사이의 관계 또한 두 개의 커다란 줄기를 이루며 잘게 쪼개진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외부(청자)와 내부(창작자 또는 음악)의 욕망이 맞닥뜨리는 지점에서 완성되는 ‘앨범 커버’는 그 자체로 관계의 무게중심을 대변하며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왜 음악을 듣는가? 우리는 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음악을 듣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무수히 많은 회색들처럼 다양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변함없이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회색들이 그처럼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야말로 각자의 수많은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만들어진 덕분이라는 사실이다.
글 월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