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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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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Apr 22. 2022

사서 고생

나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편이다. 자주 가는 야채가게에 레몬이 바구니 가득 오천 원이면  인건비는 생각도 않고 기분 좋게  가지고 돌아와 레몬차, 레몬 소금을 만든다. 누구누구와 나눠 먹어야겠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딸기 철이 끝나가면 딸기잼을, 생강 철이 돌아오면 생강청을, 곱창김이 나오면 김을 한가득 굽는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살림의 일종인데 나에게는 취미이자 놀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이런  만족을 위한 일을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 하필이면  근처에 싱싱한 과일, 야채를 무진장 싸게 파는 노점이 들어와 버려서 지나갈 때마다 고뇌한다.


토마토가  박스에 만원도  하다니 토마토소스 만들고 남는  선드라이 토마토 만들면 되겠네.

 종아리만  무가    ? 애기 깍두기랑 무말랭이 만들면 좋겠다. 딸기가 2킬로에 육천 !!

딸기잼이랑 딸기청 만들어서 나눠주면 좋아하겠지? 그러다 결국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버린다. 손질한 시간도 없는데냉장고에서 썩어버리겠지. 근미래의 나를 위해 자제심을 발휘한다.


햇빛이 쏟아지는 오후에 거실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단골 가게에서 사 온 딱 이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싱싱한 매실 한 자루를 뽀득뽀득 씻어 커다란 보울에 가득 쏟는다. 뾰족한 이쑤시개로 꼭지를 쏙쏙 따고 방망이로 탕탕 두들겨 매실을 쪼갠 후 설탕을 가득 부어 커다란 병에 차곡차곡 담는다.

나와 남편이 너무 좋아하는 매실장아찌를 만들어 1년 동안 귀하게 아껴가며 먹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완성된 매실 장아찌를 누가 줘도 고추장에 조물조물 묻힐 힘도 없으며 사실은 밥 차리기도 귀찮아 바나나 하나로 끼니를 때운다.


계절이 주는 귀한 열매들을 말도  되는 가격에   있는 절호의 찬스는 아쉽지만 자의로 날려버리고

마트표 기성품에 비싼 돈을 지불하며 마음의 평화 대신 몸의 평화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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