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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Nov 17. 2023

I. 멍때리기

- 의식의 도피 혹은 의식의 외면

‘멍때리기’가 명상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멍때리기 대회가 열리기도 하면서 멍때리기가 일종의 정신적인 휴식인 것처럼 알려지며 명상처럼 인식되고 있다. 멍때리기가 명상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면, 명상을 정의하는 두 가지 조건에 합당한지 알아봐야 한다. 「1.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가 2. 쾌락적이지 않은 방법인가?」 하는 것이다.


살펴보면 멍때리기는 괴로움을 전제로 하지도 않고, 방법적인 면에서 쾌락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명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면 멍때리는 행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멍때리는 행위는 일종의 정신적 도피이자 현실의 외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멍때리기를 한다. 우리는 흔히 멍때리는 행위를 아무 생각 없는 그저 멍한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의식의 한편에서 혹은 의식의 이면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멍때리기 속의 생각은 의식의 전면에서 드러나는 생각과 달리, 금세 잊어버리는 의식의 파편 같은 것이다. 그래서 멍때리기가 끝났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의식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식의 파편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현재의식 너머의 잠재의식의 영역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멍때리기는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만, 그 작용은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방식과 어른에게 일어나는 방식이 다르다.      


그 이유는 자아 성립의 진행 여부이다. 청소년기가 자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면 성인은 만들어진 자아를 세상에 적용하는 시기이다. 건물을 예로 들면, 청소년기에는 자아의 기초와 기둥과 지붕을 만들고,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자아의 외벽과 실내장식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는 자아의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 어른이 되면서 점점 자아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만들어진 자아의 구조, 즉 자아의 틀은 평생 바뀌질 않는다. 바뀌는 것은 외부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외벽과 실내장식뿐이다.     


1. 아이들의 멍때리기     


나이가 어릴수록 멍때리는 행위를 쉽게 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릴 때 사람의 의식은 완전히 조합되어 있지 않다. 이 시기의 자아는 완전한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엉성한 상태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 의식이 완전히 자기 방식으로 조합되어 완성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의 자아를 완성하게 된다.


어릴 때의 멍때리기는 형성되는 자아의 엉성한 틈에 의식을 잠시 놔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긍정적인 정신적 도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의 틈에서 아이들은 상상을 주로 하게 된다. 상상 속에서 여러 가지 인물이 되어보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삶을 상상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의식 세계를 만들어 간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상상은 창의력을 성장시킨다. 그리고 성장기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이런 형태의 정신적인 도피는 정신의 휴식을 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멍때리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많은 멍때리기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나아가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수많은 상상을 현실에서 실행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서 행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행력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 적당한 멍때리기는 정신 건강에 좋지만, 지나치게 멍때리기를 하는 것은 실행력이 없는 상상 속의 세상에서만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어른의 멍때리기  

   

어른들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하려고 한다. 생각과 생각 사이의 좁은 틈을 힘들어한다. 무언가를 하고, 이루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야 안심이 된다. 자아를 덧칠해서 완성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살아 나가다 문득 자신의 모습을 자각할 때가 있다. 그러면 덕지덕지 지저분한 자신의 자아를 보기가 두려워 그 위 또 덧칠한다. 평생 알고 있는 방법이 이렇게 의식을 덧칠하는 것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멍때리기의 양태가 좀 다르다. 성인의 의식은 그 틈새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처럼 엉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틈새가 빡빡하기 때문에 멍때리는 것도 쉽지 않고, 억지로 멍때리기를 해보아도 어릴 때처럼 정신적인 휴식을 한 느낌이 들기 어렵다.     


간혹 멍때리기가 일종의 무념(無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멍때리다가 정신이 들어 곰곰이 돌이켜보면 멍때린 와중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소년기의 멍때리기가 ‘의식의 도피’라면 성인의 멍때리기는 ‘의식의 외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외면은 의식의 도피와는 다르다. 의식의 도피는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자기 자기 내면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고, 의식의 외면은 의식을 그대로 놔둔 채 모른 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도피가 지속되면 정신적인 문제들이 발생하여 정신병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의식의 외면이 지속되면 속절없는 세월 뒤에 늙음이 찾아온다. 그렇게 인생의 종착지인 죽음이 찾아오면 그제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식은 그대로라는 것을 알지만 빠져나올 수 없다는 절망만 존재한다.      


그래서 성인의 멍때리기는 정신적 외면일 뿐 무념(無念)이 아닌 것이다. 불멍이니 물멍이니 해서 멍때리는 것이 정신적인 휴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그대로 둔 채 현실을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불멍이나 물멍을 하면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하다. 불멍이나 물멍은 도시의 기계와 미디어로부터 떨어져나와 육체의 신경회로를 강제적으로 휴식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늘 노출된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 찌든 신경세포를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불멍이나 물멍은 뇌의 물리적인 작용을 자연에서 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굳이 불멍이나 물멍이 아니더라도 자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휴식이 되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뇌의 신경세포를 쉬게 하는 것일 뿐,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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