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수업종이 쳤는데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어 책상 밑에 몰래 책을 숨기고 읽었다. 수업시간에 다른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내 고등학생 시절 중 얼마 되지 않는 드문 일이었다. 내용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목 뒤부터 시작해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책이 바로 '7년의 밤'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정유정 작가의 책이라면 주제가 무엇이건, 의심 없이 찾아서 읽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해서, 굳이 내용을 상상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이야기가 펼쳐졌다. 보통은 책을 읽다가 다른 것에 쉽게 집중력을 빼앗기고 마는데, 그의 책을 읽을 때만큼은 책에 깊게 몰두하는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다.
최근에 정유정 작가가 유퀴즈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내용을 보게 됐는데, 책을 쓸 때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도록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작가의 의도가 독자인 나에게 전해진 것이었구나 싶고, 그렇게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싶었다.
이번 신간 <완전한 행복>은 병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물과 그가 주변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역시나 정유정 작가답게 이야기의 서사는 휘몰아치고, 책 속에 푹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기존 책들과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가 떠올랐다는 점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듯, 그 누군가가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던 것은 맞지만, 실제 그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서 실제 인물인 그 사람을 계속 떠올리게 됐고, 뛰어난 묘사와 서사로 인해 실제 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져 마음 한 켠이 서늘해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책을 관통하는 요소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단순히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거나 애착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의미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 있고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 이 특성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 '유나'는 이성에게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 매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홀리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끈다.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냉혹한 본모습을 드러낸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유나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완전한 행복을 위한 노력'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행복한 상태를 떠올리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등을 행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행복을 완전무결한 상태로 생각하는 이 말을 보면서 행복하지 못한 상태를 불행으로 정의하고, 불행해질 가능성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을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행복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접근한 것이 놀랍기도 했다.
요즘 코로나가 다시 심해져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매일 출근할 때는 재택이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니 가끔은 출근이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일이 있어 출근을 하게 되면, 아침에 미어터지는 지하철에서 '그래... 재택이 최고지..'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 그렇다. 늘 좋은 것, 나쁜 것만 있을 수는 없다.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주인공에게 나쁜 기억을 없앨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 상황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트라우마 같은 정말 자신에게 나쁜 기억만 지운다. 그러다 점차 남은 기억들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더 나쁜 기억이 무엇인지 평가하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기억을 지워 영혼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불행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운이 좋지 않은 날도, 잘 풀리지 않는 날도 있기에 좋은 날이 더 좋은 날일 수 있고,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듯이. 모순적이게도 '완전한 행복'이라는 책을 읽으며 완전한 행복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