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들과 바람 Jun 12. 2019

모순과 역설의 삶

   모습과 내용은 다를 지라도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관, 신념, 믿음, 선호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서로 독립된 것들이 아니어서 적지 않은 경우 어떤 단일적이고 통합적인 체계로서 기능합니다. 예컨대, 순수함(purity)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보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연구된 바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늘 품고 있는 사람은 보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선호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요. 심리학의 연구가 더욱 세밀화되면 어쩌면 나중엔 한 사람의 전반적인 가치관이 그가 선호하는 메뉴와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마저 나오려나요(물론 농담입니다).


   하지만 만일 인간이 그렇게 늘 일관되고, 논리적이며, 정합적인 존재였다면 우리 세상이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위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진 만큼이나 동시에 모순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흰색과 검은색, 왼쪽과 오른쪽, 과거와 미래처럼 이항대립적으로 충돌하는 것들을 동시에 승인하곤 합니다. 서로 다른 경우에 자신도 모르게 각기 반대되는 것을 각각 선택하기도 하고,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위선을 보이기도 하며, 애초에 두 가지를 거의 동일한 만큼 사랑하기도 합니다. 뜨거운 커피를 식힐 때나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녹일 때나 모두 '후', '하'하며 같은 입으로 부는 우리는 본디 그럴 수밖에 없는 이들인가 봅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모순과 역설의 천재'라고 불리곤 합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하지 않는 통찰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의 저서들의 내용과 그가 두 발로 걸어온 삶의 길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담은 책 <에밀>로 명성을 쌓은 것과 달리 그 자신은 본인의 다섯 아이를 고아원에 보냈습니다. 그는 평민주의를 주장하고 급진적인 정치사상을 견지하면서도 귀족들의 보호를 받고 그들과 왕성한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예술과 사치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펼쳤던 이지만 잘 재단된 마흔두 벌의 린넨 셔츠의 소유자였으며, 도덕과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선한 마음을 강조하였지만 당장의 현실을 위해 가짜로 음악교사 행색을 한 젊은 시절도 지나온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만일 가까이서 그를 보아 오는 친구였다면 이따금씩 그라는 사람에 대해 깊은 혼란에 빠졌을 것만 같습니다.


   또 한 명의 철학자 중 루소만큼 흥미로운 삶을 산 이가 있는데 그는 칼 맑스입니다. 20세기 세계의 절반을 붉게 물들였던 혁명 사상의 아버지와 같은 그의 삶은 당시의 혁명가들이 알았다면 난처했을 만큼 '부르주아적'이었습니다. 그는 부정기적으로라도 받는 월급과 동료 엥겔스로부터의 긴 후원으로 당시로서도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생애의 적지 않은 시기 동안 돈에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값나가는 가구들을 자주 사들였으며 가족들에게 비싼 의복을 입히고 거대한 저택을 선호하였습니다. 또 자신의 아내가 귀족 혈통임을 자주 자랑하였고, 그의 가장 궁핍하던 때에도 가정부를 고용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 스스로도 비슷하게 말하듯이, 그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삶을 도무지 살 수 없던 것입니다. 물론, 혁명 사상을 가졌던 이라고 해서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지 모르지만 그의 전반적인 생활의 양식에서 어떤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저뿐만이 아닐 거라 짐작해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 중 그 외침이 그저 사유의 숲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이들로 꼽히는 이 두 명의 철학자의 삶이 이토록 반전을 준다는 게 제게는 되려 어떤 고약한 매력처럼 느껴집니다. 끝까지 자신의 그런 삶의 방식에 커다란 돌이킴을 딱히 갖지 않았던 맑스와 달리 루소는 자신의 그런 모순을 책임감 있게 마주하고 성찰과 연민의 시선으로 돌이켜보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 역시 지극히 '인간적인' 그런 시기를 우직함과 고고함만으로 비켜갈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서야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게 조금 비겁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양가적'이라는 말로 덮을 수 없는 모순됨으로 저 역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제 눈과 귀가 증언하는 것들이 꽤 있을뿐더러 아마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지나간 것도 적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다만 제 미래 반려자가 제가 루소와 맑스에게 그랬듯, 흥미롭고 귀엽다는 감각으로 봐주길 바랄 뿐입니다.



[ 이미지 출처 : <Ambivalence> by Seamless ]

매거진의 이전글 사회는 실재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