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꿈꾼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변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오죽하면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까지 있지 않는가? 그만큼 자신의 나쁜 버릇을 버리고 새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킬 것인가? 계획도 세워보고 체크도 해보고 자기계발서도 읽어보고 강연도 듣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도 변한다는 것,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 혁신을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 스스로 하기 어려우면 그런 환경에 나를 던져보면 어떨까? 의식적이라도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두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떠나는 것이다. 지금의 환경이 아닌 전혀 다른 환경에 있어보게 하는 것이다. 손쉬운 방법은 여행을 가는 것이다.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은 다른 지역에 가서 살아보는 것이다. 완전한 변화는 이주나 이민을 가는 것이다.
후배가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20년이 되어가니 꽤 오래되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부부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홀연히 떠난 계기는 변화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꿈도 이상도 없이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서 직업도 새로 잡고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하여 취업을 하고 잘 살고 있다. 최근엔 시민권도 취득했다. 가끔 한국에 오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그들은 현재 미국 생활에 무척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물론 이주나 이민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변화를 원하면 떠나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20일의 휴가를 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12일 동안 레온에서 산티아고까지 300킬로미터를 걸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심신이 지치고 삶의 의욕이 없어질 무렵 아내가 순례길을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직장 생활과 아이들 학교 생활, 재정적인 문제들로 떠나지 못할 이유만 쌓여갔다. 모두 해결하고 가려면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앞뒤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단 비행기 티켓을 끊자 그다음은 진행이 쉬워졌다. 순례길 정보도 찾아보고, 장비도 준비하고, 매일 체력 훈련을 하였다. 마지막까지 아이들끼리 잘 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맘이 편하지 않았으나, 아이들도 이 기회에 스스로 성장하리라 기대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몽골 하늘을 지나면서 이제는 내가 걱정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직 아내와 건강하게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랐다. 12일 동안 아내와 같이 10킬로그램 무게의 배낭을 메고 새벽부터 하루 종일 걷고 걸었다. 먹고 자는 것 외엔 오직 걷기만 했다. 끝없는 길을 무한 반복 걸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지구 반대편 이국 땅에서 한국의 일상은 완전히 잊은 채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걷는 내내 분노와 짜증, 실망과 절망의 감정들이 솟구치고 분출되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향로미사를 보며 흘렸던 눈물로 나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고요해졌다. 순례길을 통해 내려놓음이 무엇인지 배웠다. 오랫동안 미워했던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많이 힘들고 괴로웠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살았다. 직장에서 제주 근무 공모직이 나와 바로 신청을 했다. 사람들은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했다. 집에서 다니면서 가족과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면 되는데 유별나다고 했다. 퇴직을 앞두고 정리를 해야 할 시점에 새로운 곳에 가서 앞으로 다가올 두 번째 인생을 점검하고 싶었다. 지금의 자리에서는 나와 연결된 많은 일들로 인해 아무것도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걸 끊고 오직 나 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제주도에서 1년 5개월 동안 생활했다. 물론 낯선 지역이라 불편한 점도 있고 힘든 점도 많았다. 그러나 그건 극히 작은 부분이었다.
아이들이 1년 정도 제주에 와서 같이 생활했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고향에서의 익숙함을 버리고 제주에 와서 열심히 미래를 준비했다. 제주를 떠나면서 아빠의 선택으로 자신들이 많이 성장하고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제주생활은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성과도 주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인생에 삶의 근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내는 전주와 제주를 오가며 절반 정도 제주에서 같이 생활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때처럼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걷고 함께 지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제주생활은 오롯이 가족들과 보냈다.
제주에서 올레 26코스 425킬로미터를 걸었다. 온몸으로 제주의 속살을 느끼고 싶었다. 혼자 걸으면서 지나 온 삶의 궤적을 따라 과거의 상처들을 씻어냈다. 아픈 기억이지만 떠올려서 희석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막연한 모습이 아닌 선명하고 구체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여 이를 직시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으면 미래의 모습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가는 과정이 남아 있다. 제주로 떠나지 않았다면 이 모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열 번 정도 근무지 이동을 하였다. 본인의 선택이 아닌 직장 여건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떠남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려 했고, 뭔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찾으려 했고, 생활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떠남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떠남이 주는 새로운 기회와 변화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떠나지 못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는 것을 주저한다. 그래서 과감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위해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