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재영 Sep 06. 2023

아파트를 팔아라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자

  아파트를 팔았다. 사발통문의 교통 요지에 자리하고, 주거환경이 최상인 생활권역에 위치한 유명 브랜드의 49평 아파트를 팔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재테크의 가장 좋은 수단이다. 직장을 잡으면 가장 먼저 청약저축에 가입하여 일정 금액 적금을 납입하기 시작한다.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한 주춧돌을 쌓는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 청약의 조건이 충족되면 아파트를 분양받고, 대출금을 변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수월 해진다. 아파트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동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 후에는 아파트를 팔고 사기를 반복하면서 평수를 넓혀 가기 시작하고, 자연스레 재산도 축적이 되어 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재산을 늘려가고 있다. 나도 똑같은 절차를 밟으며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고, 사고팔기를 반복하여 그 지역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아파트를 49평까지 늘리는 데 성공하였다. 한두 번 더 이사를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노후 대책은 아파트로 준비가 될 수 있었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잘 오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다. 남들은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기에 바쁜데 오히려 팔다니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했다. 이유는 하나다. 나만의 집을 짓고 싶었다.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돈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 지을 돈을 마련할 때까지 미룬다는 것은 집을 짓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월급쟁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0대면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므로 돈을 모은다는 것이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릴 적부터 내 손으로 지은 집에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반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어려운 살림살이에 내 집을 짓는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처럼 아예 꿈도 꾸지 못하였다. 더욱이 전원주택은 퇴직을 하고 아이들도 다 분가를 시킨 후에 부부가 노후를 보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한창 돈도 많이 들어가고 재산도 늘려가야 할 시기에 오르고 있는 아파트를 판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택에 산다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으로 재산을 늘릴 수도 없고, 주말도 집을 가꾸는데 반납해야 하고, 도심의 편리함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지은 집에서 살기 위해 아파트를 팔았다. 매도대금의 일부로 전셋집을 구하고 남은 돈으로 대지를 구입하였다.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내 집 짓기의 꿈은 아파트를 팔면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지금은 텃밭과 화단이 있고,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는 ‘자인당’이라는 주택에 살고 있다.


  주택에 사는 즐거움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살아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주택의 좋은 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딱히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월급쟁이가 여유 돈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 아파트를 팔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잘못되어 어렵사리 마련한 아파트까지 날려버리는 것은 아닌 지 하는 불안함도 많았다. 그래도 대지를 구해 집을 짓기 위해서는 큰 자금이 필요했다. 내가 가진 재산 중 가장 값이 나가는 아파트를 파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민 끝에 지금이 아니면 집을 지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박감에 위험을 감수했다. 내가 설계하고 지은 집에 살고 있고,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었다.


  쥔 손으로는 다른 것을 가질 수 없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야만 새로운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지만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놓지 못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내려놓기 싫고, 원하는 것도 가지려 하다 보니 둘 다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다른 것을 얻기도 어렵게 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것을 버려야 한다. 인간은 개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다 잘하기는 어렵다. 좀 더 중요하고 간절한 것을 위해 다른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아내는 잘 다니던 공직을 40대 중반에 퇴직하였다. 공무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시간을 갖길 원했다. 평생 동안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육아와 가사에만 힘쓰며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사는 여성도 많다. 평생 아내로 엄마로 직장인으로 정신없이 살아왔던 아내에게 좀 여유로운 삶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에 의문이 없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나 아내는 많은 고민과 의견을 나눴다. 직장을 그만 두면 당장 수입이 줄어들어 살림살이가 빠듯할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퇴직 후에 막연히 놀기만 할 수도 없으니 무엇을 할지에 대한 준비도 필요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결국 그만두었다.


  개인 사업에 도전도 해보고, 미국에 연수도 다녀오고, 배우고 싶은 분야를 몇 년째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취미생활도 하며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아내는 두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어릴 때 같이 해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마음껏 사랑하며 지워가고 있다. 1년 6개월 동안 제주에서 같이 생활하며 부족했던 부부의 사랑도 채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최근에는 새롭게 뜨고 있는 자격증을 취득하여 인생의 2막을 즐겁게 열어가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으면 감히 생각도 못해 볼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으니 더 큰 행복이 찾아왔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으면 재산은 조금 더 늘었을 것이다. 아내가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면 살림은 조금 더 나아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삶은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 주택이 주는 행복이나 가족 간의 사랑은 잘 모르고 살고 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고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삶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하나를 갖기 위해 하나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여러분도 뭔가 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과감히 내려놓아 보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