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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Aug 27. 2023

되풀이만이 삶이다

초급에서 중급을 향해, 그리고 실전으로

문지혁의 ‘한국어 수업’ 시리즈 두 번째 소설 『중급 한국어』가 출간되었다. 소설은 2020년 출간된 『초급 한국어』의 후속작이다. 첫 번째 소설이 미국의 대학에서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청년 ‘문지혁’을 담았다면 두 번째 소설은 한국의 대학에서 소설을 쓰고 글쓰기를 강의하는 ‘문지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 번째 소설 속 주인공의 경험과 상황은 『중급 한국어』로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책을 두 권 냈지만, 아직 등단하지 못했고, 여전히 자신을 ‘작가’라 소개하지 못한다. 더불어 제 작가 또한 미국 유학을 다녀온 강사라는 점, 작가의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은 작가의 이야기가 과연 어디까지 실재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글쓰기에 대한 주인공의 고뇌와 강의하는 삶이 교차되는 소설의 구성은 『중급 한국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여기에 수업 중에 인용하는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찾아낸 사유와 통찰이 강의 및 일상 에피소드와 함께 변주된다. 이는 소설가의 경험이 종종 작품의 모티프가 되는 현상을 반영했다. 미국 현대 소설가이자 20여 년 동안 대학 안팎에서 창작 교사로 활동한 존 가드너(John Gardner, 1933-1982)는 “작가는 자신이 이미 써놓은 것을 다시 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내게 된다”(p.132,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고 서술했다. 존 가드너는 『중급 한국어』에 인용된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스승으로 더 알려져 있다.      


작가의 서술은 ‘이미 써 놓은 것’, 즉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다. 과거의 경험은 실제로 해보거나 겪은 것, 그를 통해 얻은 감정들을 가리킨다. 과거는 ‘기억’의 형태로 현재에 끊임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회상하며 시간을 재구성하는 수고로움이 요구된다. 작가 문지혁도 자신의 여러 경험을 소설에서 다양하게 제시한다. 더불어 독자는 주인공 문지혁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 성장하며 언어를 깨우치는 딸 은채의 에피소드, 아이의 언어를 배워가는 아빠 문지혁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다. 삶과 글쓰기, 그리고 문학을 통한 추체험이야말로 독자가 소설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경험의 총체일 터다.     


소설가의 일상은 매일 읽고, 쓰고, 고치는 일인 것처럼,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는 일상 역시 하루하루 “천천히, 그러나 세금처럼 확실하게”(p.12) 흘러간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쓰기 수련 또한 작품 하나를 쓰고 스승 가드너를 만족시킬 때까지 그 작품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맞닥뜨리는 건 “삶이 결국 고통에 불과하다”(p.219)는 ‘실망스러운 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텨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있다. 바로 “‘뜯어먹기 힘들지만, 맛은 풍부한’ 인생 그 자체”(p.220).      


전작 『초급 한국어』 추천사에서 이장욱 작가는 ‘뛰어난 가독성, 에피소드의 감칠맛, 작가와 주인공의 가까운 거리감에서 비롯한 실감’이 문지혁 소설의 장점이라 해설했다. 소설은 단순한 과거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방황하고 부유하는 ‘초급’ 청춘을 거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중급’ 일상을 엿보게 만든다. 이 단계를 거치고 나면 정답이 없는 경지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바람둥이 구로프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앞에 머뭇거리고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도 초급에서 중급을 향해, 그리고 실전으로 나아간다. “되풀이만이 삶이다.”(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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