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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에디씨 Apr 04. 2022

공범

있을 법한 이야기. 그 첫 번째

"진짜 안 들키는 거 맞아요? 걸리면 다 매니저님이 시켰다고 할 거예요."


"실장님, 괜찮아요. 여기 CCTV도 없어요. 예전에 여기 다섯 개 정도 달려고 했는데 안 달았어요. 예산도 그렇지만 식물만 있는 여길 누가 털겠어하면서요."


"제가 농담 삼아 던지긴 했지만, 오밤중에 이러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여튼 빨리 해치우고 나가죠."


매니저라고 불리는 남자는 걸을 때마다 펄럭이는 통 넓은 청바지를 입었다. CCTV가 없으니까 야간 순찰만 조심하면 된다고 여자를 안심시키며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다. 실장은 여자로 상하의 모두 검은색으로 입었다. 팔에는 검은 팔토시를 찼다. 남자를 뒤따라 불 꺼진 공간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앞서간 남자를 세우며,

"제가 나머지 거 챙길 테니까 매니저님은 통에 물 먼저 받아놓으세요."


"그 파란색 큰 통에다가 받으면 되죠?"


"아니 무슨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어요? 작은 통에다 받아서 여러 번 나눠서 해야죠. 평소에는 눈치 빠르더니..." 실장이 손가락 끝으로 작은 파란색 물조리개를 가리켰다.


"실장님 허리 안 좋으니까 큰 통에 받아서 한 번에 하려고 했죠." 남자는 웃어 보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이고... 됐네요." 둘은 어둠 속에서 투닥거리며 각자 할 일을 나눴다.



여자는 먼저 손목까지 오는 얇은 베이지색 고무장갑을 두 손에 꼈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물조리개를 들고 어두운 공간 한 구석에 있는 수전으로 향했다. 먼저 와 물을 채우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창문 앞쪽에 있는 애들부터 시작하라고 이야기한 뒤 손에 든 물조리개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남자는 바깥 전등에서 어슴푸레 빛이 들어오는 창가 앞으로 걸어갔다. 폴딩도어로 된 통유리 앞에는 비파나무와 영춘화, 레몬나무, 아라우카리아를 비롯해 나무 종류나 과실수 말고도 사이즈가 좀 큰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일러준 대로 화분 받침이 찰랑거릴 정도로 물을 준다. 화분 간격이 좁아 앉은 자세로 화분을 두세 개 지나니 다리에 쥐가 날 듯하다. 혹여나 들킬까 하는 마음에 몸을 더 쭈그린다.


여자는 비교적 창문과는 거리가 먼 곳부터 물을 준다. 얘네들 이제 적응 다 했네라며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스킨답서스를 보면서 다른 공간에 데려가겠다고 하겠다는 걸 겨우 막았던 게 생각났다. 사람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여자는 식물에게도 쉽게 정을 주지 않는 편이다. 오죽하면 직업이 가드너임에도 집에는 식물 하나 없다. 당신이 씨앗부터 받아 키운 애들이거나, 추운 겨울을 잘 견뎌줬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식물은 예외지만 말이다. 낮은 자세로 저쪽에서 움직이는 남자를 보며, 잡생각 할 여유가 없다는 걸 다시금 떠올리며 물조리개를 든 손을 빠르게 움직인다.


"실장님, 근데 얘는 흙이 좀 촉촉한 거 같은데 물 주면 과습 되는 거 아니에요?" 남자가 참다못해 허리와 무릎을 펴며 묻자 이번 주 화요일에 주고 안 줘서 그럴 리가 없다며,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남자에게 향했다.


"이거 누가 준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며 남자는 이제껏 본인이 줬던 화분을 살펴보니 몇 개는 윗 흙이 젖어있었다. 누가 준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잘 아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누가 줬을진 모르겠지만 과습 돼서 안될 것 같은데 받침에 물 뺄까요?" 남자가 묻자 여자는 가벼운 화분은 그렇게 하고 큰 화분은 들어서 받침을 뺄 수가 없으니까 수건으로 물을 훔치라고 알려주고는 돌아갔다.


'그래도 아예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었네.' 여자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남자는 수건으로 물을 훔쳐 짜는 식으로 수전을 여러 번 왕복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인초를 지나 필레아 페페가 있는 선반으로 향할 때 어두운 한 곳에 어떤 둥근 상이 맺히는 듯했다. 그 상은 움직이는 것 같더니 점점 또렷해졌다. 그 형체에서 팔이 나오더니 사람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남자는 가만히 그곳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형체가 내뿜는 라이트에 두 눈을 찌푸렸다.


"거기 누구세요!"

순찰을 돌던 경비는 손전등으로 남자를 비췄다. 남자를 비춘 손전등이 꽤나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쪽에서 물을 주던 여자도 그 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멈췄다. 여자는 본인의 귀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 이상한 사람이 아니..." 남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원은 모든 형광등을 켰다. 엉성하게 서있는 남자를 보더니 "매니저님...? 여기서 뭐하세요, 지금 시간이 새벽 다섯 시 반이에요. 그리고 이제 여기 계시면 안 되죠."


"아니 그게 생각해 보니까 저 아니면, 여기 식물에 물 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애들 다 죽을까..." 경비원은 또 남자의 말을 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니,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이제 카드키도 만료돼서 안될 텐데, 아무리 식물 때문이라고 해도 어제 퇴사하신 분이 이렇게 들어오시면 안 되죠. 그리고 뭐 훔치신 거 아니에요?"


경비원이 남자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뒤 쪽에서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경비와 남자가 홱 하니 돌아보자 그제야 뒤에 있던 여자도 나와 멋쩍게 인사했다.


"아무리 그래도 식물에 물을 주러 이 새벽에 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무단 침입이에요... 하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진짜. 그래도 뭐 나쁜 짓을 하러 오신 것도 아니고 하니까 그냥 들어가세요. 여기 CCTV라도 있었으면 진짜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요."


"없는 거 아니까 온 거죠." 남자가 말하자 경비원과 여자는 말대꾸하는 남자를 동시에 째려봤다.


남자와 여자는 걸린 김에 나머지 애들도 빨리 마무리하겠다고, 10분 정도면 마무리한다고 하자 경비원은 포기한 듯 본인이 여기 있을 테니까 빨리 마무리하라고 말했다.


"매니저님, 실장님 정말 다음에도 이러시면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남자와 여자는 문을 열고 나왔다. 하늘은 동이 트기 전이라 새 파란색으로 구름 한 점 없었다.


"아우, 실장님 그래도 우리 물 다 줬죠?"

"마지막에는 정신없어서 제대로 다 줬는지 몰라요. 환기는 시키고 나왔어야 하는데, 누가 할까 모르겠어요. 내일 비 온다 그래서 오늘 꼭 문 열어주고 해야 하는데..."


"하아 이제 여기는 앞으로 못 오겠네요. 아! 차라리 그럼 낮에 올까요? 다른 방문객들 다 있는 주말이면 오히려 물 주기 편할 것 같은데." 남자의 말에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하며 차에나 타라며 조수석을 가리켰다. 공범은 차를 타고 그렇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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