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월요일
소포가 도착했다.
'뭐 시킨 게 없는데.' 남자는 내용물이 다치지 않도록 커터칼의 칼날을 한 칸만 빼낸 뒤 조심스레 봉투를 직 긋는다. 내용물은 주민등록증 하나. 남자는 책상 위로 성큼 걸어가 지갑을 열어본다. 그곳엔 분명 본인의 주민등록증이 있다. 남자는 오늘 받은 신분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지갑에 있는 민증도 꺼내서 바로 옆에다가 놓았다.
사진이 달랐다. 오늘 받은 것은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이다. 남자가 처음으로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이었다. 소포 수신자를 다시 확인했다. 미국 주소로 되어있다. 처음 본다. 분명 이 신분증은 스무 살 되기 전 겨울에 지갑과 함께 잃어버렸다. 15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갑을 잃어버린 유일한 사건이라 기억은 또렷하다.
'이걸 누가 보낸 거지.' 남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발견되었나..?'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출근이 급했다.
5월 31일 화요일
소포가 도착했다.
이번엔 필통이다. 기억이 거의 없지만, 아무리 봐도 초등학교 때 잃어버린 필통이다. 색이 다 바랜 플라스틱. 그 당시 누가 훔쳐갔다고 특정할 수 있을 만큼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은 없어서 속만 상했던 일로 기억한다.
6월 1일 수요일
큰 박스가 집 문 앞으로 막고 있다. 그 안엔 우산이 수십 개가 촘촘하게 빈틈없이 들어가 있었다. 보내는 주소는 매일 달라진다. 남자는 오전 반차를 내고 경찰서로 향했다. 집에 돌아온 뒤 남자는 잠에 들지 못한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문밖에서 쿵 하는 소리에 현관으로 달려가 귀를 기울였다. 문을 열고 작은 박스 하나를 발견한다. 운송회사 직원은 본인은 배달만 할 뿐 발송자에 대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6월 2일 목요일
새벽 7시 40분. 두꺼운 앨범 하나가 들어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첫 페이지다. 장을 넘길수록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1년 5년 10년 전 사진이 펼쳐졌고,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 되자 아버지 사진만 남는다. 아버지는 계속 젊어지시더니 결국엔 당신 아기 때 사진을 마지막으로 앨범이 끝이 난다. 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잃어버린 물건 취급하는 건가.' 남자는 어제 만났던 경찰서 담당부서로 전화를 건다.
6월 3일 금요일
이번엔 얇고 긴 박스다. 남자는 신경질 적으로 발로 박스 중앙을 힘껏 찬다.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남자는 분이 덜 풀렸는지 칼도 쓰지 않고 손 힘으로 붙어있는 테이프를 찢는다. 전신 거울이다. 발로 차는 바람에 허리 아래쪽만 달려있다. 남자는 쭈그려 앉아 거울 속 자신을 본다.
6월 4일 토요일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