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5 수도회의 갈래
수도원은 2000년 역사의 그리스도교를 떠받쳐온 강력한 힘이다. 수도자는 재물과 명예 같은 세속적 가치를 버린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와 사랑, 봉사에 헌신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청빈, 정결, 순명을 실천한다.
가톨릭 안에 수도회가 몇 개인지 교황님도 잘 모른다는 우스개가 있다. 그만큼 수도회가 많고 다양하다. 크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설립자의 이상에 따라 고유한 영성을 추구한다. 그에 따른 생활 방식의 편차도 매우 크다. 흔히 관상 수도회와 활동 수도회로 나누기도 하지만, 그런 기준으로 가를 수 없는 수도회도 많다.
관상 수도회는 영성 생활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관상(觀想)을 추구한다. 외부와 단절된 봉쇄 수도원에서 기도와 노동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신을 봉헌한다. 한 번 입회하면 평생 수도원 안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봉쇄 수도회로도 알려져 있다. 가르멜회, 글라라회, 까말돌리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카르투시오회 등은 대표적인 관상 수도회이다.
활동 수도회는 세상 속에서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수행한다. 의료, 교육, 출판, 청소년, 경로, 빈민, 사회복지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한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수도회로는 ‘마더 테레사’로 불렸던 인도 콜카타의 성녀 테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속으로 스며들어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수도회가 훨씬 더 많다.
유럽의 수도원들은 12세기까지는 대체로 비슷한 형태로 존속했다. 몇 차례 개혁운동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성 베네딕토의 영성과 수도 규칙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13세기 초에 성 프란치스코의 출현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수도회가 탄생했다. 이들은 소유의 완전한 포기를 서약하고, 노동과 때로는 구걸에 의존하는 가난의 영성을 실천했다. 전통적 수도원을 거부하고 작고 소박한 거처에 적당한 규모로 모여 살았다. 세상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복음을 전하고 형제적 사랑을 나누었다. 이로써 교회 안에 탁발 수도회라는 형태가 새롭게 탄생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도미니코회 역시 청빈을 바탕으로 설교와 교육에 치중하는 탁발 수도회였다.
16세기에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가 시대적 소명에 맞게 또 다른 형태의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가 설립한 예수회(Societas Iesu)는 교회를 위한 봉사단 성격이 강했다. 특히 교육과 학문을 통한 봉사와 선교에 초점을 맞췄다. 수도회 명칭에 일반적인 라틴어 Ordo 대신 Societas를 쓴 데서 이 수도회의 특성이 드러난다. 수도복을 입지 않고 사회적 활동을 중시한다. 영화 《미션》은 18세기 남미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국에 천주교를 전파한 마테오리치도 예수회 소속이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의 초기 선교는 대부분 예수회의 헌신에 힘입었다.
수도회의 영성과 생활 방식은 시대적 소명을 반영한다. 전통은 전통대로 소중하지만, 시대는 또 새로운 형태의 사도직 실천을 요구한다. 현대에 들어 수도 영성을 따르는 평신도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평신도로 구성된 재속회 중에는 독신을 지키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봉헌의 삶을 사는 단체도 있다.
어찌 보면 관상과 활동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트라피스트회의 수도승 토마스 머튼은 “활동은 관상의 열매이고, 관상은 활동의 토대”라고 했다. 관상과 활동은 사랑 안에서 하나로 결합한다. 관상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실천으로 나아간다. 사랑 없는 관상은 공허하고, 사랑 없는 활동은 맹목이다. 불교에도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는 불법(佛法)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위한 자비를 실천한다는 뜻이다. 관상은 하느님 사랑이고, 활동은 이웃 사랑이다. 두 사랑은 같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세상과 수도원은 또 무엇이 다르랴. 세상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묵묵히 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도자이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면서 자주 기도와 묵상에 맛들이는 사람은 모두가 수도자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과 자비로 초대받았다. 세상은 좀 더 큰 수도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