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과 수사

02-04 수도자의 갈래

by Peregrinante in Spem

(순례기를 연재하는 중에 지인으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수도승이라는 용어가 적절한가 하는 의견이었다. 조심스레 불만을 표시한 분도 있었다. 수도회의 갈래가 워낙 많다 보니 혼란이 좀 있다. 짧은 해명을 준비했다.)


수도원은 문학 작품의 배경이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시스와 골드문트』가 떠오른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 분야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14세기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조사를 맡은 윌리엄 수도사의 활약을 토대로 종교적 독선과 편견이 지배하던 중세의 어두운 시대상을 흥미진진하게 파헤친다.


이 책에는 수도자, 수사, 수도승이라는 어휘도 몇 번 나오지만, 대체로 ‘수도사’라는 용어를 택하고 있다. 책을 번역한 이윤기 선생의 고심이 담긴 선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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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수도자를 가리키는 용어는 여럿이다. 우리말로는 수도자, 수사, 수녀, 수도승 등이 있다. 수도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말로는 수도원 하나로 두루 쓰지만, 영어로는 Monastery, Abbey, Convent, Priory, House 등 여러 표현이 있다. 각각에 해당하는 라틴어의 변형이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구분해서 쓸 필요가 있다.


우선 수도자라는 말은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다. 라틴어 렐리지오수스(religiosus, 영어 religious)를 보통 수도자로 번역한다. 수도 서원을 하고 수도회에 소속된 사람을 모두 가리킨다. 수사, 수녀, 수도승도 수도자에 포함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용어이다. 수도자에 들어 있는 ‘자(者)’가 극히 못마땅하다.


수도승이라는 말은 불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용어이다. 아마 그쪽에서 먼저 사용한 말을 차용한 것 같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도를 닦는 승려’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 계통의 수도자를 수도승으로 불러도 될까? 그들의 수도 방식과 목표는 불교 승려와는 매우 다르다. 그래도 가톨릭에서 제한적으로 이 단어를 쓴다. 라틴어 모나쿠스(monachus, 영어 monk)를 번역할 때 수도승 말고는 다른 어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 수도승(monacha)을 가리킬 때는 수녀승이라고 한다. 좀 생소하지만, 수도회 누리집 등에서 실제로 쓰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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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은 주로 베네딕토회 계열의 수도자를 가리킨다. 베네딕토회 총연합에 속하는 까말돌리회나 올리베타노회, 베네딕토회로부터 분리된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카르투시오회의 수도자는 수도승이라고 해야 그 특성이 제대로 드러난다. 봉쇄 수도원에서 기도와 노동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수도승의 본질적 의미와 잘 어울린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윌리엄 수도사는 프란치스코회 소속이다. 이윤기 선생은 베네딕토회와 프란치스코회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수도사로 칭했다. 프란치스코회는 탁발 수도회라서, 수도승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들은 형제애를 강조하면서 서로를 형제라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수사로 통용된다. 남녀 수도자를 구분해서 부를 때 수사와 수녀는 소속을 가리지 않고 두루 쓸 수 있다.


수도사는 아마도 수도승이 내포한 불교적인 분위기를 피하려고 찾아낸 말이 아닐까 싶다. ‘선비 사(士)’를 썼으니 나름 경칭의 의미도 담았다. 이 어휘는 어떤 갈래의 수도자를 가리키는지 모호하다는 약점이 있다. 수도승과 수사 사이에서 애매한 어감이다. 가톨릭의 공식 용어에는 없는 표현이다.


수도승과 수사를 가려 쓰려면 결국 그 수도회의 생활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수도회의 설립 목적과 활동 방식에 상당히 큰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 순례기는 초반에 수도승이라는 용어를 쓰다가, 성격이 다른 수도회로 넘어갈 때는 수사나 수도자도 혼용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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