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앞길을 계획하여도

02-03 성 베네딕토의 작은 호수

by Peregrinante in Spem

동굴 수도원은 해발 600m쯤에 있다. 먼저 방문했던 몬테카시노 수도원과 엇비슷한 높이이다. 베네딕토 성인이 특별히 사랑했던 높이일까. 그러고 보니 마을로부터의 거리도 엇비슷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한두 시간 정도의 거리로 떨어져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 이 말속에 수도 생활의 비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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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수도 생활의 본질적 요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금욕적 수행, 신비적 갈망이다. (*1) 이를 하나로 꿰면 결국 세상에서 물러나, 금욕적 수행으로, 초월적 신비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수도 생활로 정의할 수 있겠다. (물론 은수적 전통의 수도회를 말한다. 이런 정의로는 포괄할 수 없는 활동 수도회는 더 나중에 출현했다.)


수도승은 그 첫 단계로 세상으로부터 물러난다. 물러남(Fuga Mundi)은 출가(出家)라는 의미 말고도 온갖 세속적 가치와의 단절을 뜻한다. 고요와 고독 속에 내면을 성찰하고, 온갖 유혹과 싸우며 영혼을 정화한다. 수도승 역사에는 그런 금욕과 고행의 장소로 동굴이 자주 등장한다. 저 사막의 영웅 안토니우스 이후 위대한 수도승들이 동굴을 사랑했다. 성 베네딕토도, 성 프란치스코도, 성 이냐시오도 동굴 수행을 거치며 영적으로 거듭났다.


수도승의 물러남이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일 수는 없다. 그들의 수행이 오직 자신의 영혼만을 위함은 아니다. 언제나 세상의 평화와 인간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세상과 떨어져 있지만, 또한 세상과 함께 있다. 몸은 동굴 속에 있어도, 마음은 늘 세상 속의 인간을 잊지 않았다. 수도승의 은수처는 대개 그런 분리와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조화로운 거리에 있다. 마을이나 도시로부터 아주 멀지도, 아주 가깝지도 않은 거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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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산을 서두를 시간이다. 내려가는 길에 우연히 눈길을 끄는 이정표와 마주쳤다. ‘성 베네딕토의 작은 호수(Laghetto di S. Benedetto)’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호수가 있다고? 사전 조사에서 미처 알아내지 못한 정보였다. 호기심에 이정표의 방향을 따라가니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가 나온다. 3유로의 요금을 받는 걸로 보아 꽤 알려진 장소인 듯했다. 계곡으로 피서를 즐기러 온 듯한 한 무리의 일행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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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시원하고 맑은 물이 쏟아져 나오고 수량도 풍부해서 먼저 넓은 호수에 고여 있다가 후에 강으로 흘러 내려가는 곳이었다.” (『전기』 1,3)


돌아와 베네딕토 전기를 찾아보니 호수에 관한 언급이 있기는 했다. 당시에는 아마 더 큰 호수였나 보다. 천오백 년 전이니, 이 모습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계곡물이 흘러가며 군데군데 작은 못을 이루고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내려 보니 몇 군데 폭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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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기도하던 수도승 베네딕토가 가끔 이 계곡을 찾아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쉬었을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로 여겨졌다. 물은 시리도록 차고 맑았다. 두어 모금 목부터 축이고 시원하게 얼굴을 씻었다. 천오백 년 전 성 베네딕토의 모습을 상상하며 호수에 발을 담갔다.


9월 중순인데 여전히 더웠다. 오솔길을 오르며 땀 좀 흘린 터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다음 일정이 생각났지만 차마 선뜻 일어설 수가 없었다. 맘껏 즐겨라! 이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다음 일이야 또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마라.


모든 일을 계획대로 진행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인생길에는 수많은 변수와 장애가 출몰한다. 미리 헤아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그 성사는 하늘의 몫이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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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려놓아라. 맡겨라. 그분을 믿고 의탁하라. 계획이 틀어진 곳에서 더 좋은 결과를 주실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에게는 바른길로 보여도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잠언 16,25) 계획된 일정이 바뀌고 여정에 차질이 생긴다 해도 그 또한 소중한 체험이다. 그 또한 순례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된다. 불확실성과 우연이 이 순례길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 (시편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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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네딕토 성인이 그 호숫가로 나를 부르셨다고 느꼈다. ‘베네딕토’라고 쓴 이정표를 통해 나를 이끄셨으니, 그 부르심에 충분히 응답하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왔다.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마르 6,31) 그렇게 물가에 한참 앉아 있었다. 결국 하산길에 들리려던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는 다시 가지 못했다. 나중에 한 번 더 오라는 초대로 받아들였다.


그날 그 계곡에서 느낀 기쁨은 달콤한 기억으로 남았다. 성 베네딕토의 오솔길과 성 베네딕토의 작은 호수, 숲과 물이 어우러진 그 아름다운 순례길을 나는 아마 오래도록 그리워할 것 같다.



(*1) 수도 영성의 기원 (허성석 엮음, 2015,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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