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에 온 이상한 수도회

02-06 예수의 작은 자매회

by Peregrinante in Spem

수도회의 갈래와 다양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수도회가 있다. 나는 이 수도회의 존재를 법정 스님의 글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전 딱 한 번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수도자라는 기존의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깊고 치열한 영성을 추구하는 수도회였다.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었던 법정 스님은 종교와 종파를 초월한 열린 마음으로 이웃 종교를 대하신 분이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교분으로 명동대성당에서 강론하기도 했고, 성경이나 가톨릭의 가르침을 스스럼없이 인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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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이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이 책은 스님이 불임암에 머물던 시절에 쓴 아름다운 수필 여러 편을 담고 있다. 그중 「거꾸로 보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느 가톨릭 수도원을 방문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에 갔을 때, 카톨릭 신자인 테레사의 인도로 어떤 수도원을 찾아간 일이 있다. 수도원이라고 하면 번듯한 건물에 담장이 높고 으레 수위실이 있을 것을 연상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그 수도원은 동네 끝 야산 아래 있는 조그만 초가집이었다. 경기도 고양군 중면 일산 9리 밤가시골. 학생들 가슴에 다는 명패만 한 크기의 문패. ‘예수의 작은 자매회’라고 빛이 바랜 나무쪽에 쓰여 있었다. 그 문패처럼 이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작은 수도원일 것이다. 마을 집을 사서 들어왔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여느 민가나 다름이 없었다.


성당은 대청마루, 아무 장식도 없고 벽에 붙인 조그만 감실(龕室,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둔 곳)과 그 아래 켜져 있는 호롱불. 재래식 밥상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제대(祭臺)로 쓰이는 것인가. 프랑스에서 왔다는 수녀님 두 분과 수련 수녀까지 합해서 열 사람도 채 안 되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주인과 나그네가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아 구수한 냉잇국과 김치에 맛있는 공양을 했다. 처음 찾아간 나그네에게도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편안한 집이었다. 이곳 자매들은 마을에 일손이 바빠지면 밭에 나가 일을 거든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는 고맙고 가까운 이웃이 되는 모양이다. 조그마한 초가에서 항상 웃음이 넘치는 걸 보고, 수도회의 이름 그대로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로구나 싶었다. (법정, 『산방한담』)


법정 스님이 찾아간 수녀원의 공식 명칭은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이다. 줄여서 ‘예수의 작은 자매회’로도 부른다. 이 수도회는 프랑스 출신 마들렌 위텡(Magdeleine Hutin) 수녀가 1939년 사하라에서 처음 설립했다. 마들렌 수녀는 '사하라의 은자(隱者)'로도 불렸던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신부의 삶과 영성에 깊이 감명받고, 직접 사하라를 찾아가 가르침을 실천했다. 1964년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인가를 받았다. 한국에는 전쟁 직후인 1955년에 처음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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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도회의 영성과 삶의 방식은 가톨릭 수도회 안에서도 매우 특이하고 색다른 면이 있다. 일단 법정 스님이 마주친 대로 번듯한 수도원을 짓지 않는다. 수도자임을 드러내는 수도복도 잘 입지 않는다.


세상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려는 단체나 기관이나 조직이 참으로 많다. 그들 대부분이 나름의 방식으로 구호와 자선, 선행과 봉사를 실천한다. 그런데 한 번쯤 물어봄 직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도움은 무엇인가. 힘겨운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위로와 용기를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호나 자선, 치료나 봉사는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며 숭고한 선행이다. 절대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의 바탕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바로 베푸는 쪽과 도움을 받는 쪽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구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베풀고 한쪽은 받는다. 이쪽은 여유롭고 저쪽은 부족하다. 우월하고 열등하다. 둘은 절대로 같아질 수 없다. 베푸는 쪽은 여건이 허용되는 범위에서 일정한 도움을 줄 뿐이다.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고는 다시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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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수녀의 방식은 차원이 달랐다. 그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았다.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이웃들과 같은 방법으로 사십시오.” 마들렌 수녀의 가르침이다. 이 수도회의 수녀와 수사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 사이에 스며들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엇을 베풀기보다는 동등한 이웃으로 살려고 한다. 필요한 이웃의 형제자매가 되어 우애를 나누는 것, 이것이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가 지닌 이상이다.


예전에 서울 난지도로 들어간 이 수도회의 수도자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쓸만한 물건을 찾던 이웃들과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런 방식으로 그 시대의 가장 필요한 곳으로 스며 들어가 그들의 편한 이웃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이주노동자의 곁에, 노숙자나 중독자의 곁에 그들이 있다. 식당에서, 공장에서,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일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한곳에 오래 뿌리내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가난한 산동네나 변두리에 자리 잡았다가 재개발에 밀려 이웃을 잃고 옮겨야 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고 좋은 수도원은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 그저 서너 명이 묶을 허름한 주택이면 충분하다. 다세대주택의 방 한 칸이 수도원인 곳도 있다. 결코 수도자의 신분과 소명을 잊지 않겠지만, 신분을 드러내는 수도복을 입고 활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사나 수녀라는 명칭도 쓰지 않고 ‘작은 형제’ ‘작은 자매’를 사용한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글을 맺는다. “일산의 밤가시골 초가집 수도원에서 교회와 사원을 바라보는 ‘눈’을 나는 그날의 선물로 받아 왔다. 가난하고 소탈하고 그러면서도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자매들의 있음이,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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