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평화가 넘치는 올리브 동산

03-01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

by Peregrinante in Spem

아름다운 땅! 축복받은 대지! 토스카나의 들판을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부드러운 곡선의 구릉을 따라 푸른 평원이 펼쳐졌다. 릴케가 노래한 남국의 따듯한 햇볕 아래 포도와 올리브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풍요가 가져다주는 여유와 평화가 물결처럼 흐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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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을 찾아갈 때는 자동차를 빌려서 갔다. 저녁기도 시간에 맞추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들녘 풍경을 마음껏 눈에 담는 선물을 받았다. 피렌체에서 시에나를 거쳐 수도원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차를 세웠다. 풍문으로 들었던 토스카나의 풍광이 눈을 유혹해 수시로 차선을 벗어나곤 했다. 대충 아무 방향이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사진이 나온다.


“그대는 아는가, 레몬꽃이 피는 나라를, 그늘진 잎 사이로 금빛 오렌지 익어가고, 푸른 하늘에서 부드러운 바람 불어오는 그곳을.”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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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걸어서 가겠다는 순례 원칙은 지켜야 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수도원을 4.5km쯤 남겨둔 곳에서 성당 표시가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성 나자리오(San Nazario) 수도원’이라고 적혀 있기에 호기심이 생겨 들렀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인적도 없었다. 아마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쓰다가 이미 오랫동안 비워둔 듯했다. 오히려 잘 됐다 싶어 그곳에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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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챙겨 떠나려는데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자세히 살폈지만 역시 사람은 없다. 아마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울리도록 설정된 것 같았다. 텅 빈 수도원에서 홀로 듣는 종소리, 뭔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울림이 잦아들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밀레의 그림 만종(L'Angélus)의 농부라도 된 듯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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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1)은 시에나에서 남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곳이다. 구릉 지대가 점차 숲으로 바뀌면서 고도를 높인다. 수도원은 울창한 수림과 협곡을 끼고 있지만, 여전히 풍요로운 들판과 그리 멀지는 않다. 몬테 올리베토(Monte Oliveto)는 ‘올리브 산’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의 올리브 언덕에서 따온 지명이다. 이 지역에 올리브가 많이 자란다. 수도원까지 걷는 길 좌우에도 올리브 농원이 자주 보인다.


수도원이 들어선 이후 이 지역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원래 야생이었던 땅에 주민이 모여들고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아름다운 전원으로 변해갔다. 수도원이 영적 오아시스 역할을 하면서 은총과 평화가 넘치는 올리브 동산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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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한 시간쯤 걷는다. 뜨거운 햇볕 속이라 두어 시간 걷는 기분이다. 그늘만 보이면 찾아 들어가 땀을 식힌다. 아스팔트의 열기로 발바닥이 화끈거릴 때쯤 오른쪽 협곡 너머로 삐죽 솟은 수도원 건물이 보인다.


수도원 정문에서 수도원까지 비탈진 숲길이 이어진다. 토스카나 지방의 상징과도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빼곡하다. 성당 입구에 닿으면 가장 먼저 조형미가 뛰어난 조각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 베네딕토의 동상이겠거니 했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손에 들고 있는 상징물이 책이 아니라 십자가와 나뭇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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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상의 주인공은 성 베르나르도 톨로메이(San Bernardo Tolomei)이다. 1272년 시에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시에나 대학의 법학 교수를 지냈다. 시력을 잃었다가 되찾은 것을 계기로 마흔한 살이던 1313년 동료 두 명과 함께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의 거룩한 생활이 알려지면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몬테 올리베토에 수도원을 세웠다. 1319년 지역 주교로부터 수도회로 인가를 받았다. 이 수도회는 베네딕토 규칙을 받아들이면서, 초기의 이상대로 기도와 노동, 침묵과 관상을 중시했다. 전통적인 검은 옷 대신 흰 수도복을 입는다.


베르나르도 톨로메이는 페스트가 시에나를 휩쓸던 1348년에 형제들과 함께 도심에서 환자를 돌보다 자신도 감염되어 선종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그는 열매들이 달린 올리브 나무 같고 구름까지 치솟은 송백 같았다.” (집회 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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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의 위상을 이해하려면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다.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받아들이는 수도회라면 일단은 베네딕토회에 속한다. 그런 수도원들은 워낙에 많다. 이 수도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자치수도원이다. 수도 규칙을 공유할 뿐 서로 위계질서로 묶이지 않는다. 중앙집권적 본부나 본원이 없다. 물론 설립 단계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는 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자립 능력이 생기면 더는 간섭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베네딕토회라는 수도회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흩어진 자치수도원이 있을 뿐이다.


이를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고 조직화하려는 시도가 13세기부터 있었다. 영국과 헝가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국가 단위 연합회가 생겨났다. 1893년 교황 레오 13세는 칙서를 통해, 자율성을 유지한 채 서로 연대하는 총연합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13개 연합회를 묶는 총연합이 결성되었다.


지금은 이 총연합회 산하에 모두 19개 연합회가 있다. 21개였다가 부분 통합이 이뤄지면서 19개로 줄었다. 또한 어느 연합회에도 속하지 않는 수도원도 여전히 존재한다. 같은 연합회의 수도원들은 느슨한 유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할 뿐, 자치와 자립이라는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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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자치수도원의 장상을 아빠스(abbas) 또는 원장(prior)이라 부른다. 각 연합회의 대표는 총아빠스(Archiabbas)이고, 총연합회장은 수석 아빠스(Abbas Primas)이다. 교황은 초대 수석 아빠스를 직접 지명하면서, 이후로는 4년마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했다. 수석 아빠스는 임기 동안 로마에 있는 성 안셀모 수도원에서 봉사한다.


그러니까 몬테 올리베토 대수도원은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 가운데 올리베타노 연합회를 대표한다. 이 수도원의 장상은 아빠스인 동시에 연합회를 대표하는 총아빠스이다. 이 연합회에 속하는 수도원은 18세기에 80개가 넘었고, 수도승은 2,000여 명에 이르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에 44개의 남·녀 수도원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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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 올리브 낙원에 왔다. 꼭 머물고 싶었던 수도원이다. 손님의 집을 담당하는 로렌초 수사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손님의 집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정갈한 기품이 느껴지는 2층 벽돌집이었다.



(*1) Abbazia Santa Maria di Monte Oliveto Maggi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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