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

03-03 수도원의 노동

by Peregrinante in Spem

수도승의 하루는 단순하다. 기도 아니면 노동이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면 소임이나 활동으로 바꾸어도 좋다.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기도와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노동은 자급자족을 중시하는 수도원에서 생계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강조되었다. 베네딕토 성인은 “자기 손으로 일해서 살아갈 때 진정한 수도승”(RB 48,8)이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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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수도 생활을 위협하는 온갖 유혹을 차단하고 영혼의 순수를 지켜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손노동을 하고 또 다른 정해진 시간에 성독(聖讀)을 해야 한다. (RB 48,1)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라는 표현은 노동의 목적이 생계유지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나태는 수도 생활을 위협하는 강력한 독이다. 모든 악덕이 나태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수도승의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 노동은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영혼을 지켜내는 방패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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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노동’이라는 어휘가 특별히 눈에 띈다. 지나친 육체노동을 경계하라는 의미일까. 수도승 생활에서 노동은 기도의 연장이어야 한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가르침은 기도와 노동의 우선순위로 해석해도 좋다. 기도가 먼저이고, 노동은 나중인 것이다. 즉 기도를 방해할 정도의 노동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러려면 노동의 시간과 강도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선호되어서는 안 된다." (RB 43,3)


손노동은 사막의 수도승들이 모범을 보인 방식이다. 사막 교부들의 일화와 가르침을 전하는 금언집에는 새끼를 꼬거나 돗자리를 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이 이런 손노동을 선호한 이유는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하라”(1테살 5,17)는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다. 기도를 침범하지 않는 일, 늘 기도를 읊조리면서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손노동이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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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는 노동을 곧 은총으로 보았다. 영혼의 건강을 지켜주는 선물로 여겼다. 동료 형제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아름다운 영적 유언을 남겼다. “나는 손수 일하였고 또 일하기를 원하며 다른 모든 형제도 올바른 일에 종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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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전통적으로 손노동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네 손으로 벌어들인 것을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시편 128,2)


몬테 올리베토 수도원은 기도와 함께 노동을 소중한 가치로 실천한다. 수도원이 보유한 큰 농장에서 포도를 키우고 올리브를 재배한다. 이 수도원의 노동은 손노동보다는 더 투박한 농부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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