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 까말돌리 수도원
수도원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곳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적극적인 의사 표현으로 다가가면, 대개 방문과 숙박을 허락한다. 봉쇄 수도원들조차도 누리집을 찾아보면 접촉 창구를 열어놓고 있다. 대개는 외부 방문객을 위한 ‘손님의 집’을 두고 있다. 규모가 더 큰 ‘피정의 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덕분에 방문객은 세속을 떠난 거룩한 수도원에 머물며 잠시라도 수도 생활을 맛보는 행복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수도승과 함께 기도하며 수도원 전례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볼 수도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처럼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까말돌리회는 엄격한 규율과 고독한 수행을 추구하는 관상 수도회이다. 그런데도 일종의 피정의 집인 포레스테리아(Foresteria)를 운영하며 신자들과의 만남을 기꺼이 감당한다. 오히려 다른 수도회보다 훨씬 적극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수도원과 성당, 포레스테리아가 서로 연결된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1934년에 새 건물을 지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홍보물을 보니 1년 내내 강연, 강좌, 피정, 수련, 전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있었다.
방문한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단체 피정을 온 방문객 수십 명이 먼저 와 있었다. 일정표를 보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이 끝나고 또 다른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깊은 산속의 수도원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과 만날 줄은 몰랐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쓸쓸하진 않았다. 수도원이 시대적 소명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까말돌리 수도원은 피렌체에서 동쪽으로 70km쯤 떨어져 있다. 해발 818m 높이의 깊은 산속이다. 성 베네딕토회의 수도승이었던 성 로무알도(San Romualdo)가 개혁을 꿈꾸며 세운 수도원이다. 오늘날 까말돌리회 또는 까말돌리 연합회로 불리는 수도회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 연합회에 속하는 남녀 수도원은 전 세계에 20여 개 정도이다. 한국에는 현재 설립 단계에 있다.
성 로무알도는 우리에게 좀 낯선 분이다. 수도 생활에서 제3의 길을 실천한 그의 역할을 생각하면 좀 아쉬운 감이 있다. 그의 사후에 저술된 전기가 있지만, 국내에 번역되지는 않았다. 그는 스무 살 무렵에 클뤼니 소속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안락한 생활에 실망하여 그곳을 떠났다. 은수생활을 목적으로 여러 곳에서 수도 생활을 체험하고 공부했다. 예순 살이 된 1012년에 피렌체 동쪽 아펜니노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다섯 개의 은수처를 세웠다. 그 땅을 기증한 사람의 이름이 말돌루스(Maldolus)였다. 말돌루스의 땅(Campus Maldoli)으로 불리다가 줄여서 까말돌리(Camaldoli)가 되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이사야 43,19)
로무알도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수도 생활은 은수와 공동생활의 결합이었다. 수도승은 독립된 은수처에서 홀로 수행하면서도 공동체와 유대를 갖는 방식이다. 철저한 고독 속의 관상을 추구하면서도 형제적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구조이다. 이 두 생활의 조화로운 결합을 위해 은수처는 서로 분리되면서도 연결되도록 지었다. 한군데 모여 있지만 서로 담장으로 완전히 분리된다. 담장 안에는 수도승의 독방이 있고, 손노동을 할 수 있는 정원이나 텃밭이 딸려 있다. 육체노동은 그리 강조되지 않았다. 공동 작업장이나 농장을 운영하지는 않았다. 수도승은 기도와 관상에 몰두하면서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일했다.
로무알도는 은수처 외에 수도원도 몇 개 설립했다. 수도승은 대부분 수도원에서 공동생활로 시작한다. 그러다 수도 생활이 깊어지면서 은수생활을 소망할 수 있다. 이때 수도원의 장상이 지혜로운 식별로 수도승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허락 여부를 판단한다. 은수처와 수도원은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영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공동체를 형성했다.
까말돌리회는 유럽의 수도원 전통에 새로운 길을 선보였다. 은수생활과 공동생활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방식은 동방 교회에서는 더 오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로무알도를 첫 인물로 꼽는다. 그는 따로 수도 규칙을 작성하지는 않았다. 후임자들의 활약으로 까말돌리 정신을 따르는 수도원이 늘어났다. 이들은 나중에 까말돌리회로 불리게 된다. 현재 까말돌리회(OSB Cam)는 베네딕토회의 19개 연합회 중 하나이다. 연합회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까말돌리 은수자회(ECMC)도 있다.
까말돌리 수도원은 자연 풍광이 뛰어난 숲속에 있다. 해발 고도가 높았으므로 살짝 추웠다. 두터운 겨울옷을 준비해 갔지만, 숙소에는 난방과 온수가 잘 공급돼 따듯했다. 깊은 산속이다 보니 데이터 통신도 와이파이도 연결되지 않는다. 기도와 산책, 독서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사실 그러려고 온 것 아닌가. 저녁기도 시간에는 스무 명이 넘는 백의의 수도승이 참석했다. 잘 조화된 목소리로 그레고리오 가락을 이어갔다.
오늘날 수도원은 메마른 현대 사회에 풍성한 영성을 공급하는 샘과 같다. 수도원 피정은 침묵 속에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아쉽게도 1박만 하고 떠나왔다. 언젠가 다시 와서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충분히 머무를 수 있기를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