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3 수도원의 새벽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수도승은 깨어 일어난다. “한밤중에도 당신을 찬송하러 일어납니다.”(시편 119,62)라는 성경 구절에 따라 밤기도를 바치기 위함이다. 밤기도는 보통 자정에서 새벽 두세 시 사이에 바쳤다. 베네딕토 성인은 새벽 2시를 제시하면서도 계절에 따른 융통성을 부여했다. 대부분의 수도원이 이 밤기도의 전통을 지켜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밤기도는 수도 생활의 일과표에서 사라졌다.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밤기도의 명칭을 독서기도로 바꾸고, 하루 중 어느 때나 바쳐도 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많은 수도원이 새벽 5시 무렵의 첫 기도로 독서기도를 배치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밤중의 기도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수도회도 있다. 주로 관상에 치중하는 봉쇄 수도원들이다. 수도원 순례를 앞두고 조사했을 때 카르투시오회가 0시 15분, 시토회는 새벽 4시였다.
봉쇄 수도원의 밤기도는 아름답다.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이다.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전사처럼 수도승이 깨어 일어나 성당으로 모여든다. 촛불만 일렁이는 고요한 성당에서 쿠쿨라(cuculla, 고깔옷)를 덮어쓴 수도승들이 낭랑하게 바치는 기도 소리. 하루의 기도 중 가장 많은 12개 시편을 낭송한다. 밤기도로 초대하는 초대송의 첫마디는 인상적이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
제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 (시편 51,17)
그렇게 수도승은 지난밤 봉인했던 침묵을 풀고, 하루의 첫마디를 '찬미'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이어서 고정으로 시편 95편을 노래한다.
어서 와 하느님께 노래 부르세.
구원의 바위 앞에 목청 돋우세.
송가를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가세.
노랫가락 드높이 주님을 부르세. (시편 95,1-2)
이어서 다른 시편 여섯 편을 낭송하고, 세 개의 독서와 응송, 다시 여섯 개의 시편 낭송이 이어진다. 자정 무렵에 시작한 밤기도가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긴다. 엄격한 전통을 고수하는 수도원들은 여전히 이런 장엄한 밤기도를 보존하고 있다. 어느 수도원의 밤기도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한 수도승의 글이 있다.
필자가 지난 몇 년간 생활하던 미국 뉴멕시코 주에 위치한 사막의 그리스도 수도원 역시 밤중기도 전통을 이어가는 베네딕도회 내에 몇 안 되는 수도원 중 하나이다. 이 수도원에서는 새벽 3시 40분에 일어나 4시부터 시편 열두 편과 두 개의 독서로 이어지는 긴 밤중기도를 시작한다. 필자는 보통 기상 시간보다 십여 분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먼저 성당에 가서 혼자 깜깜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것을 즐기곤 하였다. 그것은 내면 깊이 자리하고 있는 하느님과의 만남, 그 갈망이 어둠의 고요와 침묵 속에서 채워졌기 때문이다. 또 만물이 잠 깨기 전 어둠 속의 고요와 밤의 아름다움을 맛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당 위는 사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밤하늘이 그대로 머리 위로 내려오고 별들과 은하수와 달의 향연이 펼쳐지지는 광경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게다가 겨울철 성당 난로에서 지피는 장작 타는 소리와 그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으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간혹 일찍 잠을 깬 들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적막한 사막을 진동하기도 한다. 이른 새벽, 아직 칠흑같이 깜깜한 밤 세상을 뒤로하고 모여든 바보들(?)의 우렁찬 찬미 소리도 사막의 계곡에 메아리치며 새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허성석 로무알도, 생활성서 2011년 1월호)
자정이 지났는가. 새벽이 오려는가. 그렇다면 그 시각 세상 어딘가의 수도원에서는 어둠을 밀어내는 수도승의 고요한 합창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 기도의 힘이 세상의 밝음과 따스함을 지켜낸다고 믿고 싶다.